2019년 5월 5일 일요일 날씨 맑음
동행자 : 아내와 둘
구간개요: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도상거리 17,22km 백두대간 남진.
성삼재출발 노고단 반야봉입구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연하천 형제봉 벽소령으로 가는 지리산구간으로서 지리산 절반을 가로지르는 육산구간.
벼르고 벼르던 지리산 산행을 감행했다. 용산역에서 5월 4일 9시 45분에 출발하는 여수행 무궁화호를 타고 익일인 5월5일 어린이날 새벽 3시 20분에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1인당 1만원 성삼재까지 합승을 한다고 하는기사분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 역앞에 기다리는 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에 10여분만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성삼재까지의 표를 다시 끊은 뒤 20분 후인 3시 50분에 출발한다. 45인승 버스가 등산객과 배낭으로 만원이다. 어둠을 헤치고 출발하여 화엄사에 몇 분을 하차시킨다. 이 중에는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의 종주)를 하시는 분들이 하차하는 곳이다.
차가 구불 구불2차선 산길을 헤치고 4시 10분에 성삼재 휴게소에 산객을 토해낸다. 산객들 틈 사이로 우리 부부도 떠밀리 듯 차밖으로 밀려나니 어둠이 깔린 성삼재에 많은 차들과 관광버스가 만원이다.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미리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하지만 아마도 산행 중 체력과 인내의 한계점에 이를 때쯤이면 "내가 이 짓을 왜 하지" 라고 후회할 것이 뻔한데도 며칠만 지나면 산이 부르는 매력에 다시 까맣게 잊고 다시 배낭를 꾸릴게 뻔한다. 이게 바로 산이 들려주는 매력 아니겠는가?
오늘은 벽소령(碧霄嶺) 대피소까지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1박을 한 후 내일 다시 천왕봉까지의 산행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흥분된다.
"지혜를 얻고 이치를 깨닫는 산"이라는 이름처럼 지리산(智理山)은 그저 평범한 산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산이라고 뭐 특별한가 했지만, 그리고 백두대간의 많은 산군들을 한뼘 한땀 한 발자국씩 묵묵하게 밟고 내려 와서, 경험했던 수 많은 산 중의 하나인 줄 알았다. 그리고 벽소령까지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리산을 가는 줄 알았지만, 천왕봉에 오르고서야 그리고 지리산의 넉넉함이 누리를 품어 주는 것을 깨닫고서야 지혜와 이치의 산임을 알았다. 아래 뽀쪽 솟은 봉이 천왕봉 .
성삼재(姓三재 1,102m) 마한 때 성이 각각 다른 세 분의 장군이 이곳을 지켰다는 데서 유래된 고개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피곤하지만 산행에 대한 설렘으로 배낭을 정비하고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어두운 길을 나선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노고단 휴게소 까지 천천히 걸었는데... 이뿔사!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성삼재에서 종석대를 거치는 산행이 진짜 대간 길이었는데 그만 정보를 몰라 깜박했다. 육십령에서 성삼재 구간이 남았느니 그때 다시 종석대 구간을 밟아 보리라.
코재에 이르러 대간길에 합쳐진다. 어린이 날이라 아이들과 함께 노고단을 방문한 가족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은 길이다.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무넹기 근처까지는 산길 대신 계속 포장로를 걸어도 좋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날이 밝아온다. 많은 분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우리는 준비한 김밥으로 잠시 배를 달래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단(老姑壇 1,507m)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으로 ‘할미’는 도교(道敎)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통일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노고단 위치에서 서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종석대(鍾石臺, 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
노고단의 아름다운 진달래 군락이 탄성을 자아낸다. 봄의 색깔답게 눈을 호강하게 한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에덴동산의 끝자락에 동산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붙들려는 애처러움 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노고단 꼭데기에서 본 앞 능선을 따라 계속가면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심원마을로 가는 길이다.
다시 내려와 노고단고개(1,440m)에서 반야봉 방향으로..
돼지령(1,370m).
부근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는 돼지평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돼지 평전에는 멧돼지들이 좋아한다는 둥굴레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돼지령을 "비목령"이라고도 부르는데 바로 무명용사를 기리는 가곡 비목(碑木)의 주인공은 아니고 1970년 산행을 하다 동사한 고교생 3명을 기리는 비목이 세워져 있던 곳이라 한다. 노고단에서는 멀지 않지만 천왕봉 쪽에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산행을 하는 경우 이곳이 탈진 조난 사고가 빈번한 고비이기 때문이다. 돼지평전에서 전경.
피아골로 올라오는 피아골삼거리.
피아골이라는 영화에서 각인된 효과 때문인지 과거 피아골에서 죽은 이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다는 까닭에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으나, 본래는 이곳의 직전마을에서 오곡 가운데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한 데에서 불리는 이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피밭골이 피아골로 변한 것이다. 개화하는 진달래.
임걸령(1320m)
지리산엔 국립공원이라 관리가 잘 되어서인지, 등산인의 안내 띠지가 없고 대신 곳곳에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다. 임걸령은 반야봉을 비롯한 주위의 봉우리들이 바람을 막아주는 천혜의 요충지로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사철 샘이 나오는 곳이다. 주능선(노고단 천왕봉)의 노고단(1,502m)과 삼도봉(1,499m) 사이에 있다. 조선 선조 때의 좀도둑 임걸년은 화개장터에서 넘어오는 보부상을 털거나 사찰을 털었다. 임걸년이 임걸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이 따뜻해서 요새로 삼았다.
임걸령에는 피아골 방면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임걸령에 핀 꽃.
노루목 (1,480m)
반야봉으로 가는 길과, 삼도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가는 종주 코스로 갈라지는 노루목.
노루목이라는 이름은 노루가 다니던 길목이라는 의미와 이곳 지형이 노루의 목을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대간길은 삼도봉 방향이다. 반야봉을 찍고 갈까를 고민하다 이내 접었다. 노루목의 고사목.
반야봉(般若峰1,732m)
천왕봉을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제석봉(帝釋峰 1,802m)이 더 높지만 독립된 봉우리로 인정 받지 못하는 관계로 지리산 제2봉으로 여겨진다. 어린아이의 궁둥이를 쳐든 모습이라 사방 어디에서도 보인다. 지리산에 있는 대부분의 봉우리가 주릉에 있는 것과 달리 주릉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삼도봉(三道峯 1,500.97m)
전북 전남 경남의 3도의 경계다. 반야봉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외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반야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 볼 수 있어 좋은 경관을 제공하고 동쪽으로 촛대봉에서 연하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릉을 조망할 수 있으며, 동남쪽으로 남부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대간의 삼도봉중 마지막 3도봉으로 원래는 날나리봉이라 불리웠다.
본 이름이 날선 낫처럼 생겼다 하여 낫날봉, 그러다가 날나리봉으로 다시 닐니리봉으로 되었다가 관이 개입하여 삼도봉이라 명했다. 실제로 심도봉에 가보니 남진기준 왼편으로의 능선이 낫처럼 날카롭다.
데크형 계단을 수백개를 넘으니 화개재다.
화개재에 만난 안전 쉼터. 배낭 걸이와 벤치까지 쉬어가기에는 너무 좋은 공간이다. 화개재는 뱀사골 코스와 이어지는 장소로 예전에는 뱀사골 쪽의 남원 산내 장터의 상인들과 하동 쪽의 화개장터 상인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고개였다. 노고단 고개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화개재에서 상당시간 낑낑거리며 오른다. 한참 용을 쓰다가 어느덧 보니 토끼봉(1,534m)이다.
넓은 헬기장과 함께 공터가 있다
짐승인 토끼가 많아서가 아니라. 주봉인 반야봉의 정동(丁東) 쪽에 있는 봉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기반으로 24방위를 나타내는데 자(子)방이 정북이고 묘(卯)방이 정동이라서 토끼봉이다. 마치 대관령 구간의 곤신봉(坤申峰)처럼...
명선봉(明善峰1,586m )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지리산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1,500m이상 높이여서 대접 받았을텐데 근처 사진만 찍었다. 이 명선봉 일대의 울창한 수림은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어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 당시 은신처였다고 한다. 삼각고지에는 군사용 벙커 흔적이 남아 있는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빗점골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연하천 산장에서 조금가면 도착하는 삼각고지를 포함하여 벽소령까지를 일원을 피의 능선이라 부른다.
연하천 (烟霞泉1,475m)산장,
노을 속을 연기 같이 솟아난 물이여(煙霞泉)... 그 물이 마당에서 콸콸 쏟아져 나온다. 다음에 우리가 묵게 될 벽소령에는 물이 없어 산장아래로 길어야 하는데... 사진 좌측에 연하천이다.
여러 펜션이 자리한 음정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삼각고지(1,480m). 산불관리초소가 있다. 무박산행에 하신길은 대부분 음정 쪽이다.
벽소령대피소를 지척에 둔 형제봉(1,453m) 직전 바위. 이곳에서 화대 종주하는 두분을 만나 담소 한다. 이분 들도 벽소령에서 1박을 하신다 한다. 바위에 맺힌 수많은 세월의 이야기가 전해 지는듯 하다. 특히 빨치산의 금산 출산 이현상 이하 그 부대원들의 고생과, 토벌하는 군인의 역사를 고스란이 담은 채 침묵하는 바위를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듣는 듯하다.
이현상(李鉉相)이 이 바위 앞에서 지었다는 한시가 남아 있다.
智異風雲當鴻動 지리산에 풍운 일어 기러기 떼 흩어지니
伏劍千里南走越 남쪽으로 천 리 길, 검을 품고 달려왔네
一念何時非祖國 오직 한 뜻,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 없고
胸有萬甲心有血 가슴에는 철의 각오, 마음속엔 끓는 피 있네
벽소령(碧宵嶺1350m) 대피소
벽소령이라는 이름을 순 우리말로 풀어 쓸 경우 '푸른하늘재'가 된다. 여기서 벽소(碧宵)라는 이름은 벽소한월(碧宵寒月)에서 유래하였는데 의미는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라는 의미이다.
벽소라는 단어는 이중환선생의 택리지에서도 나오는데 지리산 북쪽은 모두 함양 땅이며 영원동, 군자사, 유점촌이, 벽소운동(碧霄雲洞)과 추성동은 다 같이 경치 좋은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벽소운동(碧霄雲洞)은 벽소령골짜기를를 표현한 것이다.
벽소령에서 하동 의신마을 방면. 정말 아름답다.
또한 19세기에 지리산 유람했다고 알려진 하익범 유두류록(遊頭流錄)이라는 책을 통해 "벽소령 냉천점(冷泉岾) 70리에 이르러서부터 비로소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바뀌었다."라고 하여 벽소령의 존재를 표현했다.
또 "영남지도"와 "광여도" 등의 지도에서는 벽수령(碧愁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처럼 벽소령에서 바라보는 달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이를 벽소명월(碧霄明月)이라고 하며 지리산 10경 중 제4경에 해당한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하동 의신마을과 음정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구간지도(펌)
도상거리 17,22km
40,818보
순수산행시간 7시간 56분 3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