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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상주선원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대구 동화사 "진제 큰스님과 폴니터 교수의 대담"을 다녀와서....
一休 추천 0 조회 98 11.01.03 14:29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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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11 18:19

    첫댓글 얼마 만에 열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열어보고 폴니터 교수님에 대한 글이 있기에 한 말씀 올립니다.
    폴니터 교수님은 가톨릭 신자이면서 타종교인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조그만 나라, 구석진 사찰에 와서 ‘불교를 몰랐더라면 참다운 가톨릭 신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할 때 이것이 화쟁이요,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열린 마음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그분을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도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우리 불교는 역사적으로 타 나라, 타 종교를 침범하고 핍박하는 역사를 가진 적이 없는 평화로운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깊은 연관이 있고 저도 그러한 불교의 역사

  • 11.05.11 18:21

    저도 그러한 불교의 역사를 너무나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교인이 자칫 세계가 다른 타 종교의 가르침이나 그 종교의 우수성을 폄하하고, 불교보다 한 수 아래라는 우월주의 의식으로 그들을 보면서 손을 내밀고, 또한 그들에게는 별반 배울 것이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교만심이요, 하심하는 마음이 결여된 그들의 폐쇄된 배타의식과 다름없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폴니터 교수는 불교를 존경하고, 불교의 우수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가톨릭을 버리지 않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분은 가톨릭의 무엇이 좋은지, 그날도 폴니터 교수님에게 가톨릭의 우수성을 묻는 질문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자리가 폴니터 교수가 큰

  • 11.05.11 18:22

    물론 그 자리가 폴니터 교수가 큰스님에게 배우는 자리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오늘날 한국 불교는 평화라는 단어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생각이 듭니다. 말이 평화롭지 못하고, 큰 소리가 나고, 걸핏하면 화를 내고, 위압감을 느끼고, 조금만 잘못하면 살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칫 그러한 자세가 무애자재하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더욱 선지식답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자유이자 해탈이며 종교의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안거철이 되면 많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고 있으며, 그날도 큰 스님께서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면서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저의 소견으로는

  • 11.05.11 18:23

    그러나 저의 소견으로는 만일 한국불교에서 수행의 생명인 평화가 결여되었다면 수천명이 철마다 수행정진하더라도 그것은 수행이 아니며 이미 종교로서 가치를 상실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행자가 평화와 하심이 없다면, 말과 마음과 행동이 평화롭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수행을 하지 않는다든지, 수행방법에 문제가 있다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날 진제큰스님의 가르침의 말씀도 훌륭하지만 앉아서 배우기를 갈망하는 폴니터교수님의 자세에서 종교간의 평화를 이루려는 종교인의 미래의 방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물론 이것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제가 잘못 오해가

  • 11.05.11 18:24

    다만 한 가지(물론 이것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제가 잘못 오해가 있다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 폴니터교수님의 말씀에 ‘타 종교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지침이 있었다고 하는데 즉 본인의 순수한 의지와 행위가 교회 내에서의 지침보다 더 상위에 있는가 아니면 교회내의 지침이 상위에 있어서 본인의 순수한 자유의지를 제약하는가가 다소 염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짧은 소견에 두서없이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는 점이나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조금도 주저 마시고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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