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김진숙 위원님을 못 만나고 돌아 온 희망버스 참가자들.
전화로 연결된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소리가 방송차를 통해서 울려 퍼졌고
참가자 모두는 눈시울을 붉히며 3차 희망버스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더는 이 땅에서 정의를 말 할 일도 , 진실을 드러낼 일도, 연대를 할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먼 길을 걸어온 여러분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고 고맙습니다.
한달간 우리가 만든 일은 기적입니다. 어제 오늘 일은 역사가 될 것입니다.
모두 절망이라고, 아무도 절망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할 때
온 몸으로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우리는 조금씩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라고 왜 이 크레인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2003년 10월 17일 김주익 동지의 시신을 확인 한 후 다시 이 크레인에 오르면서부터
전 이 크레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한진 자본에 대한 분노보다 죄책감이 더 컸습니다.
비바람과 지독한 안개가 끼어있는 이 크레인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조남호에게는 쓰레기 보다 못 한 취급을 받을지라도
제게는 너무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 형제 같은 분들이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버스여러분, 희망버스는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을 향한 새로운 희망입니다.
2011년 7월 9일은 역사가 반드시 기억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합시다."
싸운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분노를 넘어선 동지에 대한 사랑.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합시다!!...
나날이 김진숙위원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분의 무사귀환을 오늘도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3604&CMPT_CD=A0273
2차 희망버스의 과정을 잘 기록한 글입니다.
게시판에 옯기고 싶은데... 컴맹의 설움이여ㅜㅜ
1차, 2차 희망버스에 함께 한 현서아빠가 자세한 기록들 올려주시리라 기대하고.
오늘 아침,
끝내 만나지 못했다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전화로 연결된 말씀을 글로 읽으며 눈시울만 붉히다
희망버스 3차에는 반디불이도 연대하고 나누는 무언가를 기획했으면 하는 소망 담아 카페에 들렀습니다.
소금꽃나무를 읽고 나누는 자리도 좋겠고,
공동육아 어린이집 출신 부모들의 장기를 살려 투쟁하시는 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오색팔찌라도 만들어 희망엽서와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이랑 공간 빌려 아이들과 함께 희망버스 관련 동영상 같이 보고
직접 다녀오신 현서아빠의 생생한 이야기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후원금이라도 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반디불이 운영진이 먼저 이야기 나눠주시고 모임 만들어 주시면 으쌰~~ 해보고 싶은데...
우리만... 너무 조용해요...
첫댓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부쩍드는 요즘입니다. 김진숙, 그녀의 삶과 투쟁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소금꽃 나무>란 책은 우리에게 불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약간의 용기를 낸다면, 김진숙 그녀로부터 정말 흔치않은 아주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숭고한 한 인간을 만날수 있습니다. 야만과 탐욕, 이기와 속물이 판치는 이 자본의 시대에, 김진숙 그녀는 이미 투쟁의 승패를 훌쩍 뛰어넘어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어느 방송국피디는 1차 희망의버스를 다녀와서, "희망이 되기는 어려우나 절망이 되지는 말자"라는 글을 남겼고, 박노자교수는
"행동하지 못하고 체제에 편입된 지식은 그저 악의 도구일뿐입니다.그런의미에서 김진숙선생님을 보면서 저같은 사람들은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합니다"며 행동없는 지식인을 개탄했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35미터 고공 크레인위에 188일째 한점 불꽃이 외롭게 생사를 넘나들고 있습니다.우리가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의 마음을 낸다면 숭고한 한 생명을 살릴수 있고, 자본과권력이 호시탐탐 꺼뜨리려 혈안이 돼있는 희망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