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이 ‘아니요’ 할 때 ‘예’ 했다.
내가 중국 유학을 결정할 당시만 해도 중국어에 대한 비전과 신뢰도가 상당히 낮았다. 대학 졸업을 앞 둔 4학년. 취업에 대한 공포는 점점 엄습해오고 일명 ‘SKY’를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에 걱정은 태산같이 쌓여만 갔다. 4학년이 되자 나를 비롯한 많은 동기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정신을 가장 늦게 차린 거 같은데 늦게나마 차렸으니 다행이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동기들이 자리에 모였다. 앞으로의 진로와 계획들을 논하는 것이 우리도 모르게 술안주가 돼 있었던 터라 술자리는 길어졌다. 사실 우리가 대학을 4년이나 다니면서 이렇게 진지하고 인생적인 테마로 얘기를 나눴던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보니 하나 둘 씩 현실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가장 큰 이슈가 연애사였고 그 다음이 술, 그리고 대출(대리출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으니 그랬던 우리가 지금 어느 조직의 한 자리를 꿰차고 가정도 이루고 아이도 낳고 진정한 사회인이 되었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다들 모인 술자리에서 누가 지정도 하지 않았건만 자연스레 돌아가며 계획을 얘기하게 됐다.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대부분이 어학연수와 같은 유학이었고 취업으로의 직진은 거의 없었다. 사립 대학교 지방 캠퍼스 출신인 우리가 지금의 지극히 기본적인 스펙으로 취업은 힘들다고 낙담하면서 빈 술병은 늘어만 갔다. 대부분이 미국, 캐나다, 호주를 얘기하는 와중에 내가 중국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이것들이 술이 깼는지 중국? 짱깨? 거길 왜? 라는 질문을 연발했다. 마치 영어권을 안가는 죄인이라도 된 듯. 하지만 난 중국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꿋꿋하게 얘기했다. 중국의 비전과 중국어를 해두면 다가올 기회들에 대한 선견지명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세뇌 당하듯 들었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넘쳤기에 내 결심도 확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기들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중국이라는 나라는 택했다.
내가 중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동기들은 비관적이었다. 영어는 남들 다하는 대세인데 그걸 하지 않고서야 되겠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들이 높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영어가 남들 다하는 거라면 이미 단물이 빠질 대로 빠졌다. 남들이 아직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며 많은 회의론에 대해 자위하며 뜻을 굳혔다. 사실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어도 물론 중요한 언어이고 필수적인 언어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단기 어학연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단칼 승부이다. 2년이라는 계획을 잡고 떠나는데 날고 긴다는 영어 실력자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의문과 독창적이지 않고 대세를 따르는 것에 대한 반항심도 적잖게 가미되어 있었다. 게다가 비용도 중국이 단연 매력적이라는 것 역시 한 몫 거들었다. 그리고 출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그래, 너희는 미국, 캐나다로 떠나라. 나는 너희들이 짱깨라고 놀렸던 중국으로 간다. 2년 뒤에는 서로 어디로 가게 되는지 보자!
1~2년이 지나자 그때 술자리에 있었던 동기들이 하나 둘 씩 귀국하기 시작했다. 2년 이라는 시간 동안 취업이라는 벽을 뽀개기 위해 각자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돌아왔을 것이라 짐작했다. 서로 전화하며 요즘 뭐하냐? 라는 질문이 첫 인사가 돼 있었다. 누가 어느 기업에 취업하기라도 하면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우리는 출발선 상에서 누가 먼저 나갈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육상 선수와 같았다.
영어를 배우고 왔던 동기들의 취업은 쉽지 않아보였다. 다들 다시 도서관이다 학원이다 하며 토익에 목을 매고 있었다. 어떤 동기는 면접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며 전화만 하면 개탄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땠는가. 얄밉게 들리겠지만 취업의 문턱이 높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가 잘나서 라기 보다는 그만큼 자신 있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했을 때 귀국을 했다. 2년이라는 계획을 잡았지만 6개월을 앞당길 수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실력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와 같은 취업 준비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유학생은 짧으면 짧을수록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었다. 사실 6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있고 싶었지만 박수칠 때 떠났다. 귀국하자마자 이력서를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빨리 취직이라는 것을 해내고 깔끔한 정장을 빼입고 한 손에 그럴싸한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고 싶다는 의욕이 넘쳤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 시기였고 나 역시 중국어에 대한 자신은 있었지만 대학 간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감 반, 의구심 반으로 취업에 도전했지만 의외로 면접 콜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거라 확신한다. 왜냐면 내가 이력서를 넣은 기업은 모두 중국어 우대 혹은 중국관련 업무였기 때문이다. 중국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뭐하고 있을까? 라는 아찔한 생각도 한다. 대학의 간판은 경험과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고독과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고 하나를 완벽히 소화해 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배울 만큼 배웠다. 배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배움이 부족할 뿐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의 간판을 차버리지 말자. 그 비싼 등록금 들여가면서 사들인 간판을 왜 차버리는가. 그 간판을 마음먹고 보기 좋고 눈에 확 들어오게 만들어보라. 도색하고 윤내고 그것도 안 되면 네온사인이라도 달아라. 대학까지 나온 당신은 이미 고급 인력이다. 고급 인력은 이미 넘친다. 이제 특급 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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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가 되셨다니 그 분도 대단하십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순간에 선택이평생을 좌우 했네요^^ 선견지명이 있었네요!! 남들이 다하는것을 과감히 쳐버리고, 홀로 선택한것이
멋진 인생에 전환점을 맞으 셨네요, 암튼 추카혀요!!
님도 하얼빈을 통해 분명 더 좋은 결과를 얻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네요.. ^^ 저도 좀 꾸준히 해볼 걸 하는 후회가 요즘들어서 많네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시 시작해보세요!
애쓰셨네요. 이제는 진정한 행복, 기쁨을 누리세요.
전 아직 더 고생하고 달려야할 것 같습니다. 행복만 느낄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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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현재 가진 것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던 증거들이니까요..^^
긍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실천 ~~ 행복하시겠어요.
실천 과정에서는 고통도 많았답니다..ㅋ
집념의 사나이라는 느낌이 팍팍듭니다...^^
배움은 끝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