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오세영 등 71명의 시인들, 섬을 노래하다
『내가 사랑하는 섬』
사람과 삶에 뿌리를 둔 참다운 예술로써 詩의 가치를 찾고, 그 향기를 이웃에 나누는 <詩앗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는 <좋은 세상>에서 이번에 『내가 사랑하는 섬』이라는 제목의 섬 만을 주제로 한 시집을 펴냈다. 예술문화나눔단체인 <좋은 세상>에서는 그동안 이미 두 번에 걸쳐 『시로 쓴 유언』과 시로 쓴 『키워드』라는 특별한 사화집을 펴낸 바 있다. 이들 발간된 도서는 특히 전국 작은마을도서관, 교정시설, 군부대 및 시민들에게 기증, 배포하는 나눔 활동을 통해 시의 향기를 나누는 일에 활용하고 있어 의미가 깊다.
<섬>은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품은 또 다른 별이며, 외로운 이들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4천여 개의 섬이 있고, 그중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는 3천여 개가 넘는다. 하지만 일부 큰 섬이나 유명한 섬을 제외하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버려진 듯 홀로 바다와 싸우고 있다. 세상에서 소외된 섬들, 어쩌면 우리사회 소외된 이웃과 닮았다. 그런 아프고 아름다운 섬을 노래한 71편의 작품을 한권의 시집에 담았다. 이는 우리 시대 시인 71명이 예술문화 나눔 활동에 동참한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자운영, 장다리꽃 흐드러진 해구海溝에
나비 떼 봄눈처럼 펄 펄 펄 휘날리는
남해 그 아름다운 섬 나로도를 아시나요.
밤에는 별들이 수면 가득 내려앉고
낮에는 물고기 떼 해를 좇아 첨벙이는
먼 바다 가까운 마음 나로도를 아시나요.
뭍을 그리는 섬이라 한다지만
소란한 세상살이 애증의 삶을 피해
살포시 우주를 문 열어 하늘 바라 사는 곳.
칼바람 몰아치는 겨울 추위 괘념않고
섬 내외 춘백春栢, 동백冬柏 다정하게 가꾸어
눈 속에 꽃을 피우는 그 마음을 아시나요. <오세영 시 ‘나로도’ 전문>
나로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동일면과 봉래면에 속한 전남 고흥반도의 끝에 자리한 섬으로 외나로도와 내나로도 두 섬으로 되어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섬으로, 기암괴석과 깨끗한 바다, 소나무 숲, 유자나무, 계단식 논밭과 따뜻한 날씨가 섬의 특징이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서울대명예교수인 오세영 시인은 “섬은 외롭습니다. 그러나 섬이 없는 바다는 더 황막하겠지요. 우리네 인생살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고해라면 따뜻한 인정은 그 바다에 버티고 선 일개 섬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엔 약 4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합니다. 그 섬과 섬이 가슴을 열고 서로를 품을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더 따뜻해질까요. 그래서 시인들은 섬을 노래합니다”라고 말한다.
길은 마을에서도 자주 막히고
막힐 듯 하다가도 자주 뚫렸다
더러는 사람이 살다 떠난 빈집을 지키며
능소화 혼자 피었다 지고
골목길의 수국도 혼자 늙어가고 있었다
길은 또 사람을 데리고 한사코
등성이로 치달아 오른다
없을 것 같은 바다를 슬쩍 보여주고는
물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 사람보다도 일찍
일어난 새소리들은 숲 속에서
또 하나의 숲을 이루고
우리는 한 가지 새소리를 두고
서로 다른 새의 이름이라 우기면서
잠시 두고 온 육지 사람들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나태주 시 ‘외연도’ 전문>
외연도는 중국에서 우는 닭의 울음소리도 들린다는 황해 한 복판에 자리한 섬으로, 푸른 바다와 상록수림이 조화를 이루어 여름철 피서지로 알려져 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연기에 가린 듯 까마득하게 보인다고 해서 외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나태주 시인은 “<섬>이란 말은 한 음절로 된 우리말이다. 그렇지만 <섬>이란 말은 무한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어디라 없이 먼 곳을 그리워하게 하고 아지 못할 미지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섬>에 의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눈이 맑은 한 소년으로 태어난다. 그 또한 은혜다”라고 풀이한다.
섬의 길들은 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유동마을 덕동마을 도동마을 대송마을 돌아오는데
내 마음도 꼬아 샛길 치며 꼬리 감추는 길,
녹음 속 바람 아래 낮은 지붕들을 묶거나
등이 힌 만灣에 내려가 작은 고깃배를 푼다.
혹은 후박나무꽃 향기의 숱한 파도소리로 풀려서
그 노래가 밀어올린 저 절벽 꼭대기에
야생으로 나간 염소들이 몰려 있다.
섬의 길들은 섬 안으로 되돌아 간다.<문인수 시 ‘욕지도’ 전문>
욕지도는 경남 통영군 욕지면에 있는 섬이다. 두미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우도, 연화도 등 9개의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가 있는 욕지면의 주도이며, 경관이 특히 아름답다.
생소한 얼굴로 저녁이 오고
새로 맺은 인연에게 눈 맞추다
저녁 해가 배음으로 깔리는 바다
수박처럼 둥둥 떠 있는 섬들
저 아름다운 간격 앞에 머리 숙이다
한 알의 모래알로 뒹굴며
낮 동안 달구어진 바닷물 힘껏 끌어당긴다<이재무 시 ‘덕적도’ 전문>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딸린 섬이다. 덕적군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덕적도라는 이름은 ‘큰 물섬’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물이 깊은 바다에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개펄이 발달되어 바지락, 굴, 김 등을 양식하며, 한때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연평도 조기어장의 전진기지로 이용되었다.
이수익 시인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섬들이 있다. 그 섬의 절망과 아픔을 끌어내어, 우리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누려보자는 데 이 시집의 고유한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제발, 그런 섬 하나를 가슴으로 만나서 가득 품어 보기를” 권한다.(정리/임윤식)
* 좋은 세상 엮음. 좋은 책터 굿글로벌 펴냄. 정가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