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公 전공간 묘비명(府使公 諱 公侃 墓碑銘)
[1488년-15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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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의 휘(諱)는 공간(公侃)이요. 자(字)는 숙평(叔平)이고 호(號)를 창봉(滄峰)이라 하다. 정선인(旌善人)이요
고(考)의 휘(諱)는 성명(性命)이니 조산대부 행 동몽교관(朝散大夫 行 童蒙敎官)하고 조(祖)의 휘(諱)는 민행(敏行)이니 사헌부 감찰(監察)이고 증조(曾祖)는 휘(諱) 륜(崙)이니 통훈대부 행 구례현감(通訓大夫 行 求禮縣監)이다.
비(妣)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참봉(參奉) 송(悚)의 따님이다
성종 무신(戊申) 7월 16일에 공(公)을 낳으시니 재덕(才德)이 과인(過人)하고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두터웠다. 중종 정축(丁丑)에 별시 문과(別試 文科)에 발탁(拔擢)되어 급제하였으니 처음에 주서(注書)로 근무하였습니다.
6품으로 승진(陞進)하여 호조(戶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등 3조정랑(三曹正郎)을 역임하고 갑신(甲申)에 개성판윤(開城判尹)을 거쳐 경인(庚寅)에 함흥판관(咸興判官)을 배(拜)하고 병신(丙申)에 강동현령(江東縣令)을 거쳐 경자(庚子)에 이조정랑(吏曹正郎)으로 들어왔다가 익년(翌年)에 평산부사(平山府使)를 배(拜)하고 공(公)은 명종 임자(壬子) 9월 15일에 졸(卒)하시니 향년(享年)이 65세라.
공(公)은 강릉 김세좌(金世佐)의 따님을 취(娶)하니 명주군왕(溟州君王) 주원(周元)의 후손(後孫)이다. 연산(燕山) 병진(丙辰) 2월 9일 생(生)이며 명종 경술(庚戌) 10월 13일에 졸(卒)하시다 향년(享年)이 55세라.
1남3여를 두시니 남(男)에 윤(玧,倫)이라 하고 양주훈도(楊州訓導)지냈으며, 강진사(姜進士) 욱(旭)의 여(女)에게 장가들어 2남을 두었습니다.
장(長)에 의민(義民)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관(官)이 이조정랑(吏曹正郎)에 이르렀고 차(次)에 의석(義碩)이었습니다.
여(女)는 승지(承旨) 류춘번(柳春蕃)과 그 다음은 도사(都事) 이공권(李公權),그 다음은 판관(判官) 최인좌(崔仁佐)에게 각각 시집보냈다.
공(公)을 성산 내구산 서록 경좌원(城山 內邱山 西麓 庚坐原)에 장사(葬事)하였다.
공(公)의 자(子) 윤(玧)과 경림(景臨)은 선공(先公)이 교유하신 신잠(申潜)선생 문하(門下)에 같이 수학하였으므로 이경림(李景臨)과는 생사(生死)를 같이 할 수 있는 막역(莫逆)한 사이였습니다. 이제 공(公)의 명(銘)을 청하는데 어찌 감(敢)히 불문(不文)으로 사양(辭讓)하겠는가? 인하여 제(題)를 짓고 명(銘)을 하여 말하기를
높은 훈공(勳功)과 성대(盛大)한 업적(業績)은 /巍勳盛業
노소(老少)가 다투어 전하고/老少爭傳
음덕(蔭德)과 여경(餘慶)은/蔭德餘慶
자손(子孫)에게 서로 어어 졌더라. /子孫相連
푸르고 높은 산과 / 蒼蒼高山
담담한 찬 샘물은/淡淡寒泉
체백(體魄)을 편안하고 /安體魄體
만년(萬年)까지 편안(便安)하게 하리라/萬斯年
통정대부 행 평창군수 이경림 찬(通政大夫 行 平昌郡守 李景臨 撰)
창봉공 비석 복립기(滄峰公 碑石 復立記)
세대가 오래되고 먼 잠속에 분묘전(墳墓前) 비명(碑銘) 표석(標石)이 불행(不幸)하게도 훼손(毁損)된 지 장구(長久)하여 방손(傍孫)과 외손(外孫)이 상의하여 묘비(墓碑) 재원(財源)을 조성 치석 복립(治石 復立)을 계획하고 설치의 감격을 득(得)하였노라
고종 갑오(서기 1894년) 3월 일
방 12세손 병주 병권 병집(榜 12世孫 秉柱 秉權 秉楫)
외 16세손 류규봉(外 16世孫 柳圭鳳)
◎ 전공간(全公侃)
[중종 101권, 38년(1543 계묘 / 명 가정(嘉靖) 22년) 9월 28일(기사) 2번째기사
의정부가 각 고을의 효자·효녀·절부 등에게 복호하여 포장할 것을 아뢰다]
의정부가 아뢰기를,
“효우(孝友)가 가상한 전 목사(牧使) 송희규(宋希奎), 연안(延安)에 사는 효녀(孝女)인 기관(記官) 최귀형(崔貴亨)의 딸 금이(今伊), 평산(平山)에 사는 절부(節婦)인 신수운(申守雲)의 아내 보동(甫仝), 은률(殷栗)에 사는 효자 김영해(金盈海), 서울에 사는 절부 전 현감(縣監) 강희(姜僖)의 아내 김씨(金氏)를 정문(旌門)하고 복호(復戶)하소서.
개성부(開城府)에 사는 효행(孝行)이 뛰어난 모장(毛匠) 김만석(金萬碩), 강릉(江陵)에 사는 절부인 진사(進士) 장진문(張振文)의 아내 김씨와 효자인 사정(司正) 이정필(李貞弼)과 유학(幼學) 박억추(朴億秋), 원추(原州)에 사는 효자 충순위(忠順衛) 안팽년(安彭年), 춘천(春川)에 사는 절부인 양녀(良女) 억금(億今)과 팔월(八月)은 상물(賞物)을 주고 복호하소서.
강릉에 사는 효자인 첨정(僉正) 전공간(全公侃)과 생원(生員) 박공달(朴公達), 평해(平海)에 사는 절부인 정칭(鄭偁)의 첩 자문구(子文球) 등은 복호(주4)하여 포장(褒奬)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하였다.
○議政府啓: “前牧使宋希奎, 孝友可嘉, 延安居孝女記官崔貴亨女今伊、平山居節婦申守雲妻甫仝、殷栗居孝子金盈海、京中居節婦前縣監姜僖妻金氏, 請旌門復戶。 開城府居毛匠金萬碩有孝行, 江陵居節婦進士張振文妻金氏、孝子司正李貞弼ㆍ幼學朴億秋、原州居孝子忠順衛安彭年、春川居節婦良女億今ㆍ八月, 請賞物復戶。 江陵居孝子僉正全公侃ㆍ生員朴公達、平海居節婦鄭偁妾子文球等, 請復戶褒奬。” 依允。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19책 15면
【분류】 *군사-군역(軍役) / *윤리(倫理)
◎ 첨정[僉正]
조선시대 돈녕부·봉상시 등에 소속된 종4품 관직.
[네이버 지식백과] 첨정 [僉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전륜(全崙)
조선왕조실록
성종 1년 경인(1470,성화 6)
1월25일 (갑진)
창원 부사 홍계용·풍기 군수 진극충·구례 현감 전륜이 하직하다
창원 부사(昌原府使) 홍계용(洪繼庸)과 풍기 군수(豐基郡守) 진극충(陳克忠)과 구례 현감(求禮縣監) 전윤(全崙)이 하직하니, 전교(傳敎)하기를,
“내가 인견(引見)하지 못했으니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일에 수령(守令)을 대면(對面)하여 타이른 조건(條件)으로 개유(開諭)하여 보내게 하라.”
하였다. 이로부터 수령(守令)이 배사(拜辭)할 때 인견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이를 개유(開諭)하도록 하였다.
【원전】 8 집 460 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原文]
成宗 2卷, 1年(1470 庚寅 / 명 성화(成化) 6年) 1月 25日(甲辰) 5번째기사
창원 부사 홍계용·풍기 군수 진극충·구례 현감 전륜이 하직하다
○昌原府使洪繼庸、豐基郡守陳克忠、求禮縣監全崙辭。 傳曰: “予未得引見, 承政院其以前日面諭守令條件, 開諭遣之。” 自是, 守令拜辭時不引見者, 必命承政院諭之。
◎ 拜 절 배, 뺄 배
1. 절(남에게 공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혀 하는 인사) 2. 절하다 3. 굽히다 4. 삼가고 공경하다(恭敬--) 5. 벼슬을 주다 6. 받다 7. 방문하다(訪問--) 8. 찾다 9. 빼다 10. 뽑다 11. 발굴하다
◎ 권송
안동권씨 추밀공파조 권행의 19세손이며, 강릉 낙향시조이다. 무공랑(務功郞)으로 선원전(璿源殿) 참봉을 지냈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권륜(權綸)의 아들이며, 형은 권구(權懼)이다. 연산군 때 누이가 후궁 숙의(淑義)로 입궐하자 외척으로 지목될 것을 우려하여 한양에서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부인은 삼척심씨 심산보(沈山甫)의 딸이다. 자식은 3남 4녀를 낳았다. 아들은 권진(權璡), 권수(權璲), 권연(權璉)등 삼형제이고, 딸들은 김세훈(金世勳),전성명(全性命), 이옹(李蓊), 김세경(金世卿) 등에게 시집갔다.
◎ 주서[注書]
정의
조선시대 승정원의 정7품 관직.
내용
정원은 2인이다. 고려시대 중추원의 당후관(堂後官)이 1400년(정종 2)에 승정원 당후관으로 되었다가 뒤에 주서로 개칭된 것이다. 승정원의 기록, 특히『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담당하여 청요직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초기에는 사관(史官)을 겸하지 않았으나 1457년(세조 3) 7월부터 비로소 춘추관기사관을 당연직으로 겸임하게 하여 사초(史草)의 기록이나 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또, 의금부·전옥서(典獄署) 등에 중요형옥이 있을 때에는 그 심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 업무가 과중하게 되자 선조 때부터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1인을 증치하여 비변사와 국옥(鞫獄)에 관한 문서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연산군 때에는 가설주서(假設注書) 2인을 더 두기도 하였으나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이후 폐지하였다. 다만, 주서 2인이 모두 궐원이 되었을 때에는 가주서를 임시로 선임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서 [注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판관
종오품 지방관직(地方官職)으로 국초(國初)에 각도와 대도호부에 두었다가 후에 폐지하였다. 경기도에 두었던 수운판관(水運判官), 충청(忠淸)·전라도(全羅道)의 도사(都事)가 겸직(兼職)하던 해운판관(海運判官), 후기에는 경기·평안도(平安道)를 제외한 각도와 수원(水原)·경성(鏡城)·청주(淸州) 등 특수지역(特殊地域)에 판관을 두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관 [判官] (관직명사전, 2011. 1. 7.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조정랑[吏曹正郞]
이조의 정오품관으로 특히 인사를 담당하는 중요 관직
[네이버 지식백과] 이조정랑 [吏曹正郞]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 부사[府使]
고려·조선시대 지방의 장관직으로, 고려시대에는 개성부(開城府)와 지사부(知事府)의 수령을 가리키는 칭호였고, 조선시대는 정3품의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와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를 가리키는 칭호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사 [府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강욱(姜旭)
[생원] 중종(中宗) 38년(1543)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34위(64/100)
◎ 전의민의 과거급제 기록(국조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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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잠[申潜]
조선조의 문관이며 화가. 자는 원량(元亮), 호는 영천자(靈川子), 아차산인(峨嵯山人), 본관은 고령(高靈). 1519년 문과에 급제하고 태인(泰仁), 간성(刊城), 상주(尙州)의 목사로 치적이 높았다. 문장에 밝고 글씨를 잘 썼으며 대(竹)와 포도를 잘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설중기려도(雪中騎驢圖)』가 있는데 진작(眞作)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잠 [申潜]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 楫 노 즙,노 집
1. 노(배를 젓는 막대기) 2. 배 3. 노를 젓다 4. 모으다, 수집하다(蒐集--) a. 노(배를 젓는 막대기) (집) b. 배 (집) c. 노를 젓다 (집) d. 모으다, 수집하다(蒐集--) (집)
◎ 중종(中宗) 12 년의 문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