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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념처경 주석서 1
대념처경 주석서 1(도서출판 행복한 숲 발행)을 연재하겠습니다.
< 붓다께서 45년 동안 설하신 법문은 이렇게 수행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이 대념처경입니다. 붓다께서는 이것은 내가 경험한 유일한 길이니 모두 이 길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왜곡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가르침에 대한 주석서에 의지해서 가르침의 뜻을 지켜왔습니다. 처음에 붓다고사가 쓴 청정도론을 시작으로 많은 주석서가 가르침의 뜻을 계승하였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가르침의 뜻에 동참하고자 미천한 경험을 살려 대념처경 주석서 1권, 2권, 3권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출판된 대념처경 주석서 중에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습니다. 이제 대념처경 주석서 3권을 모든 수행자들이 보실 수 있도록 조금씩 옮겨 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수행에 도움이 되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묘원합장 >
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다시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럼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감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안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이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설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신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눈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눈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라고 한다.
4)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다시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道이니, 즉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견인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사유인가?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사유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어인가?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업인가?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업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명인가?
성스러운 제자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살아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명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이 일어나도록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계발하기 위해서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정진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념인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림으로써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히고, 내적으로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로 지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더 이상 없으며, 마음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뿐만 아니라, 희열까지 사라져서 평온하게 머물며,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몸과 마음에서 행복을 경험하며 지낸다. 성자들이 평온하게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세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도 없앴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알아차림이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라고 한다.
첫댓글 귀한법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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