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유학생이 되기까지
베이징에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됐다. 시쳇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부터 겪는 실수와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유학생 카페에 연재를 했다. 이 방법이 내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였다. 가진 재주라고는 그나마 글 쓰는 재주가 전부여서 지금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상당히 좋았다. 유학일기의 조회 수가 점점 오르더니 다음 회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팬들이 생기고 팬레터도 받고 팬 미팅까지 가졌었다. 이 경험은 20대에 생겼던 수많은 일 중에 베스트에 남아있다. 이런 영광도 내가 중국을 선택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런 결과를 바라고 일기의 연재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요즘의 독자들은 날카롭고 수준이 높아 함부로 어설픈 글을 올렸다가는 악플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내가 이런 연재를 시작했던 것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내 유학 생활의 흔적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남겨두면서 혼자 꺼내보기 보다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지침서가 되어 내 전처를 밟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 노파심이 강했다. 일기를 보면 상당히 재밌어 보이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황당하고 난감했던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들을 그냥 추억이려니 덮어두고 넘어갔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운 일들조차도 기억하고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귀중한 자료로 가치가 올라가고 나는 작가의 대우까지 받을 수 있었다.
조회 수는 하늘을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이젠 베이징의 한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내 일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되고 내 일기를 얘기하는 것이 안주거리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까진 아직 내 존재를 알리지 않은 터라 많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내 주변의 친구들조차도 작가인 나를 두고도 내가 누구일까 추리를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이렇게 미스터리 적인 존재의 재미를 느끼는 것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 왔다. 한인 잡지사에서 날 화제의 유학생으로 선정하고 취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은폐는 민폐가 될 것 같아 흔쾌히 수락했고 난 잡지 모델 겸 기사까지 대문짝만하게 실리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리고 또 다른 생활이 열렸다.
매스컴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잡지가 나간 뒤로는 정말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달려온다. 그리고 내가 맞는지 확인하고는 악수를 청하고 환하게 웃으며 기뻐한다. 내 존재 자체만으로 이렇게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 일이 부모님 말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유명세를 타면서 내 유학생활을 더 윤기가 흘렀다. 잡지사에서 칼럼 연재 요청이 들어오고 베이징 NHN에서도 인터넷 해외 토픽 연재 요청이 들어와 적게나마 용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일거리들을 통해 내 유학생활과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날개를 달았다.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더 많은 곳을 가게 되고 유심히 관찰하게 되면서 내 지식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인맥도 넓어졌다. 베이징에 여행 오는 사람, 막 도착한 유학생, 앞으로 올 유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만나기를 원했다. 난 이것이야말로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만났다. 많은 초행의 여행자들의 가이드를 해주면서 만리장성은 아마 1년 반을 살면서 대 여섯 번은 오른 것 같고 천안문과 고궁은 열 번은 넘게 가본 것 같다. 그리고 중국과 관련된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기의 인용을 부탁했다. 내 일기가 애초부터 경제적 생산의 목적이 아니고 내 경험의 공유가 목적이었기에 난 웬만한 인용은 모두 허락했다. 그래서 또 많은 카페의 회원들과 사이버 인맥을 다졌다. 카페에서는 지금도 날 특별회원 등급으로 대우해준다. 전에는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언젠가 카페 모임에 불쑥 나타나 내 일기 얘기만 해도 반겨줄 것이니 이보다 더 귀한 재산이 어디 있을까.
유학을 하거나 여행을 하다보면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집 떠나면 고생한다는 말이 더 절실히 느껴질 때가 집 떠나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교차하는 만감들과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당신의 재산이요 정보가 된다. 정보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꼼꼼히 기록하여 남겨두는 것이 정보화의 시작이다. 유학 생활의 하루 속에는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언제 쓰이게 될지 모르는 귀중한 것들이 시시각각 도사리고 있으니 꼭 모아두길 바란다. 나 역시 이런 경험들을 정보화하여 특별한 이력서도 만들어 볼 수 있었고 내 자신을 좀 더 보기 좋게 포장할 수 있었다.
내 일기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아직까지도 리플이 종종 달리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난 내 경험이 이렇게 정보가 되어 수명을 연장하고 있음에 자랑스러움과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기록들로 인해 내 유학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자각한다.
첫댓글 짧은 시간에 많은것을 이루셨네여.....노력의 결과이겠지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유명해 지셨군요. "꼼꼼히 기록하여 남겨둔다"--> 함게 나누어 좋은 정보 활용이 되는 거 같습니다.
제 경험들이 도움이 되신다면 다행입니다.^^
글솜씨만큼이나 포스도 멋있구먼요. 폼생폼사!
스포츠도 폼이 중요하잖습니까!^^;;
5월초에 얼떨결에 싱가폴 다녀왔습니다^^ 정말 깨끗하고 좋더군요. 특별히 치안이 잘돼있고 법이 엄격해서 여성들이 살기좋다는말에 더욱 급호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센토사섬에 머물렀구요, 마리나 베이 센즈에 올라가봤는데 투숙객만 수영장 입장이 허락된다길래 야경만 구경했는데....와~정말 멋있더라구요.
한국기업 쌍용에서 지은 건물이라서 더 자랑스럽고 정이 가더군요^^
제이지님은 어디서 근무하는지 몰라서 밥도 못사드리고 왔네요. 어디서든 중국어가 통해서 더
편하게 다녀왔구요, 싱가폴에 대해 좋은인상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__^
좋은 걸 느끼고 좋은 걸 보고 가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싱가폴 국민은 아니지만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안도가 되는군요.^^
囊中之锥라~~ 제이지님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신게 아닐걸요?ㅎㅎㅎ~~아무리 꽁꽁 숨어 있어도 범상치 않은 재주와 슬기는 어디로든 나타나게 되있다고요~~ㅎㅎㅎ
다 독자님들 덕분이죠.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알아주는 분들이 없다면 불가능하니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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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실행으로 옮기는게 힘들죠~ 천천히 습관화 되면 금방 하실 수 있으실거에요^^
잘 읽고 있습니다..ㅎㅎ
저랑 닉넴이 비슷하시군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선입니다. 정말 잘 한거에요. 읽은 분들 중 유학가는 분이 있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겁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늘 한결같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