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인 포르미스(로마)에 있는 모자이코
모자이크로 된 이 로마 이콘은
우리 사부 마따의 성 요한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값진 유산이다.
또한 이는 우리 카리스마의 표현이다.
마따의 요한은 이콘이 전달하는 예술적 작품으로,
그리고 그것을 걸어 놓은 중앙이라는 위치를 통해
그것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
대가 코스마토(Cosmato)는 1209년에서 1213년에 걸쳐 이 로마 이콘 완성하였다.
이것은 종교적 특성을 정확하게 재현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주려고 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우리의 상징에 주목해 보자.
원형으로 된 메달 둘레에 라틴어로
Signum Ordinis Sanctae Trinitatis et captivorum이라 새겨져 있다.
SIGNUM '상징'
이 말이 의미하는 여러 가능성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다음과 같다.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이미지, 수도회의 인장
이것은 언제나 수도회 인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ORDINIS
12세기 말엽 이 말은 같은 목적과 지향 그리고 같은 사명으로 묶인
남자나 여자 단체들이 서원한 삶, 봉헌한 삶의 규율, 예식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우리의 경우,
구속 사업에 자신을 바친
남자 수도자들, 여자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로 구성된
수도 가족을 말한다.
창설자 마따의 요한이 쓴 고유 규칙서에 따라 사는 하나의 가족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중심에 있는 것은
이 가족의 뚜렷한 그리스도론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SANCTAE TRINITAE '삼위일체의'
복음적 삶의 계획 안에서,
삼위일체는 기원이고 영감이며, 모범이고 궁극적인 목적이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친교의 신비와 구속적 애덕의 신비로 드러난다.
구속자이신 삼위일체는 모든 사명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의미를 부여해 준다.
이콘 전체는 이미 삼위일체의 형상이다.
전능하신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는
나누임이 없고 일체이신 삼위일체의 유일한 얼굴이시다.
그리스도의 이콘은 삼위일체의 현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애의 상징이며 성부의 구세주, 예수를 파견하신 아버지를 뵙게 된다.
그리스도에게서 성령으로 충만한 아버지의 권능과 영광을 보게 된다.
노예들을 해방하려 오시는 성령,
가난한 이들에게 새 희망을 안겨 주시려 오시는 성령으로 인해
예수는 ‘기름부음 받은 이’ 이시다.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나라: 사랑, 자유, 형제애 를 건설하려고 오신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나라는
형상 전체를 감싸고 있는 황금색 바탕으로 이콘에 재현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대성당 정면에 있는 심판관이신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
우리 모자이코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숭고한 기품과 평화로 가득 차 있다.
그 얼굴은 신뢰를 불러 일으키고
힘과 생동감을 주며 젊다는 인상을 준다 : 검은 머리와 잘 자란 수염.
위로 향한 입술은 인정 많은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우리 사명의 자비와 동정심은 노예들을 되찾는 그의 행동으로 나타나 있다.
천상 면류관은 같은 크기의 세 개의 가지로 되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영광의 상징을 쉽게 볼 수 있다.
십자 모양의 각 가지 중심에는 다섯 개의 자그마한 녹색 돌들이 'X'형으로 되어있다.
그것은 수난, 구속자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오상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두드러진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삼위일체의 영광의 상징으로 이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이 형상의 높이는 133,5 Cm이다.
75Cm인 노예들의 높이에 거의 두 배에 해당된다.
만약 예수가 서 있다면 그 높이는 노예들보다 세 배나 높을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더없이 크심 앞에 작은 인간의 모습을 암시한다.
또한 왕좌는 그리스도의 권능과 왕권의 상징이다.
그리스도의 옷과 망토의 색인
붉은 색과 파란 색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상징이다.
그의 긴 옷 위로 어깨에서 발까지 오는 황금색의 영대가 보인다.
황금색은 신성과 영광의 상징이다.
그리스도의 장옷은 흰색이다. 이것은 소매에서만 보여진다.
흰색은 창조되지 않은 빛의 상징이다.
이 이콘을 묵상하는 것은 마치 우리의 거룩하신 사부, 창설자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의 계획에 그리고 갇힌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충실한지,
우리의 소명에 충실한지 살펴보도록
마치 거울에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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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수도회의 유산 Espigando en el patrimonio trinitario]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