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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시 제목 |
1.자유시 :
시인 명 : |
2.지정시 :
시인 명 : |
※ 지정 시는 아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빨래 너는 여자
강은교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고 있다,
런닝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그 여자가 웃는다
그 여자의 웃음이 허공을 건너 햇빛을 건너
빨래통에 담겨 있는 우리의 살에 스며든다
어물거리는 바람
어물거리는 구름들
그 여자는 이제 아기 원피스를 넌다
무용수처럼 발끝을 곧추세워 서서
허공에 탁탁 털어 빨랫줄에 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 여자의 무용은 끝났다
그 여자는 뛰어간다
구름을 들고.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행복
유치환
사랑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서시
고정희
제 삶의 무게 지고 산을 오른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봉우리에 주저앉아
철철 샘솟는 땀을 씻으면, 거기
내 삶의 무게 받아
능선에 푸르게 걸어 주네, 산
이승의 서러움 지고 산을 오르다
열두 봉이 솟아 있는 서러움에 기대어
제 키만한 서러움 벗으면, 거기
내 서러움 짐 받아
열두 계곡 맑은 물로 흩어 주네, 산산
쓸쓸한 나날들 지고 산에 오르다
산꽃 들꽃 어지러운 능선과 마주쳐
네 생애만한 쓸쓸함 묻으면, 거기
내 쓸쓸한 짐 받아
부드럽고 융융한 품 만들어 주네, 산산산
저 역사의 물레에 혁명의 길을 찾듯
사람은 손잡아 서로 사랑의 길을 찾는 것일까
다시 넘어가야 할 산길에 서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대 생각에 울면, 거기
내 사랑의 눈물 받아
눈부신 철쭉꽃밭 열어주네, 산, 산, 산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정일근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섞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 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 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하나 있으니" 하며
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찬성하여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물 긷는 사람
이기철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오늘 하루 빛나는 삶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내를 건너는 바람소리 포플러 잎에 시릴 때
아미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손으로 걷어 올리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땅의 더운 피를 길어 제 삶의 정수리에
퍼붓는 사람이다
풀잎들의 귀가 아직 우레를 예감하지 못할 때
산의 더운 혈맥에서 솟아나는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흰 살이 눈부신 아침 쟁반에 제 하루를 담아
저녁의 편안함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나무들도 아직 이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옷섶이 터질 듯 부푼 가슴을 여미며
새벽에 물 긷는 사람은
목화송이 같은 아이들과 들판 같은 남편의
하루를 예비하는 사람이다
물 긷는 사람이여, 그대 영혼에 물을 길어
마른 나뭇잎처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나의 가슴에 부어 다오
나는 소낙비를 맞고
가시 끝에 꽃을 다는 아카시아처럼
그대 영혼에 물을 받고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되련다
고풍 의상(古風衣裳)
조지훈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줏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살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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