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선거에 잘 참여하지 않는 현상은 비단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 특히 미국은 18~35세의 젊은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비율은 대선의 경우 50퍼센트를 넘기가 어렵고 그 외의 선거에서는 24퍼센트에 불과해 여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미국 젊은이들이 특별히 선거에 무관심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어떤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행위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은 환경문제, 빈곤의 문제,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자원봉사에는 매우 적극적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투표장에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두고 현장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는다.
가장 먼저 젊은이들의 정치적 행위와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변화간에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젊은이들은 2008년에 오바마의 정책방향이 좋아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나 실제로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를 지지한 대다수 젊은이들의 삶에 뚜렷한 흔적을 남길만큼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환멸 혹은 무관심은 이런 곳에서 증폭된다. 그들은 변화가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그래서 그들의 활동이 바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주변의 자원봉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에 반해 투표행위는 젊은이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두번째 이유는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시민참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로버트 푸트남 교수가 주장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시민참여도는 줄곧 하락해왔는데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시민참여라는 것을 노인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미국 젊은이들이 자원봉사에는
여전히 열심인 것을 생각한다면 투표행위를 통한 시민참여라는 모델이 이들의 문화적 감성에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보수진영의 티파티나 진보진영의 “~점령하라” 운동은 들불처럼 번졌다. 여러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운동들은 딱딱한 회의형태를 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떠들고 소리내고 주장할 수 있는 공동의 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즐기고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회관이나 구회관에서 저녁에 모여 토론을 하는 전통적인 시민참여는 정해진 회의규칙을 따라야 하는 등 젊은이들의 정서적 코드에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정치적 행동에 대해선 시큰둥한 것이다.
대선을 앞둔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우리 젊은이들의 문화적 코드는 미국 젊은이들보다 앞선 부분이 많아서 예단하긴 힘드나 적어도 현재 미국의 젊은이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분석한다면 한국에 적용할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위에 첫번째로 든 투표행위와 세상의 변화간에 뚜렷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먼저 눈을 돌려보자. 미국은 물론이고 대다수 한국의 젊은이들도 보수보다는 진보에 속한 숫자가 훨씬 많다. 하지만 그들은 진보진영이 열어보여 주는 미래가 지금까지 MB가 해온 것보다 특별히 더 낫다거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즉, 무늬만 다를 뿐 그다지 내용상으로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경선과정에 보여준 상호비방전은 젊은이들의 이같은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하였다. 여당은 여당대로 미래의 비전을 두고 경쟁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데에 바빴고, 야당후보들은 또 그들대로 여당과 질적으로 다른 정책적 방향을 가지고 얘기하기 보다는 상대의 흠(특히 비문후보들이 문후보를 향한)을 찾아내어 공격하기 바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젊은이들의 정치적 혐오가 싹트는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에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선거유세를 축제처럼 진행하였다. 마치 지금까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그래왔던 것처럼 젊은이들의 호흡을 정확히 짚어내어 그들이 웃고 즐기고 떠들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은 이런 젊은이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것 같다. 우리의 문재인 후보는 너무 점잖다. 젊은이들이 열광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대권후보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만일 젊은이들이 열광하기 시작한다면 설사 점잖은 인상을 다소 구기더라도 그 기세가 다른 세대에게로 번져갈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를 교훈삼아 우리가 변해야 한다. 요약하자. 우리 후보가 열어줄 세상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보여주자. 그리고 그들이 소리지르며 뛸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주자.
첫댓글 젊은이들은 특별한 이슈가 필요 합니다
축제같은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