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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5 사실주의적 인상주의의 걸작들
르누아르는 눈으로 보고 인식한 생활의 모든 요소를 그림으로 그렸다. 즉 그가 화가로서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부유층의 생활이나, 반항적이거나 비극적인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이 속한 중하층 보헤미안들의 일상적인 즐거움을 모두 그림으로 표현했다. 물론 그의 예술이 사회의 모든 부분을 망라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생활의 단면을 조명하기 있기 때문에 사실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그의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생활과 관능성을 새롭게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발견은 오늘날의 삶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르누아르가 관심을 보인 주네는 매우 다양하다. 초상화와 인물화, 무희, 극장, 친구들, 시골 오솔기, 시끌벅적한 대도시, 그리고 풍경 등이 포함된다. 르누아르에게는 초상화나 인물화를 통해 여성의 매력을 아름답게 포착해내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그는 여성이 발산하는 유혹적인 매력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작품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매우 능숙하게 표현했으며, 거기서 느낀 깊은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점에서 르누아르는 인간 존재의 매우 제한된 영역만 그림으로 그렸다고 볼 수 없다. 심각하거나 문제가 있는 인물도 없다. 그리고 남성 역시 부드럽고 유연한 여성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르누아르 이외의 그 어떤 화가도 그처럼 더없이 행복한 기쁨의 미소, 즐거운 삶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다. 로코코 거장의 표현기법을 익힌 르누아르는 인물의 이러한 감정과 자세를 매우 능숙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당시에는 부유한 중산계급 부인들의 취향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숙련된 화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은행가의 부인들을 르네상스 시대의 공작부인이나 매혹적인 정부로 둔갑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또한 값비싼 옷이나 가구를 그려넣고, 넋을 잃은 인물의 표정을 통해 양식화된 만족감이나 병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그림을 그려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르누아르 역시 이러한 표피적인 묘사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짝이는 실크와 부드러운 벨벳의 감촉을 능숙하게 그릴 수 있었음에도 르누아르는 내키지 않을 때는 절대로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타고난 순박함 덕분에 그러한 유행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판에 박은 포즈보다는 실제 생활을 면밀하게 관찰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르누아르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은 주로 그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그린 것이다. 르누아르는 친구인 모네와 그의 부인 카미유를 즐겨 그렸다. 그는 모네의 부인이 소파에 기대어 『르 피가로』지를 읽는 모습을 넓은 붓질로 시원스럽게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밝은 청색의 섬세한 실내복을 입은 모네 부인과 흰색 천으로 씌운 소파를 볼 수 있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눈은 이 화사한 회화의 밝은 여름 분위기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인상주의자들은 가정 내의 친밀한 사적 공간에서 인물들이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결코 내보이지 않는 편안하고 느긋한 자세로 있는 모습을 즐겨 그렸다. 자연스럽고 실제 같은 효과를 보존하기 위해 인상주의자들은 고전주의적 전통의 조화와 대칭의 법칙을 버려야 했다. 대신 그들은 개별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자연스럽고 비대칭적인 구성요소를 사용하여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적인 인상을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르누아르가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제한된 이미지로 그림을 그려햐 있을 때도 분명히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제한된 이미지로 그림을 그려야 했을 때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출판인 샤르팡티에으 부인과 이이들을 그린 그림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당당한 외모의 샤르팡티에 부인은 그림의 모델로 포즈를 취했지만, 매우 자연스럽다. 아이들 역시 모델 노릇을 하느라 인형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었지만, 얼굴과 자세에서는 어린이다운 천진스러움을 볼 수 있다. 세인트버나드종 개와 함께 피라미드형 구도를 이룬 인물들이 방 가운데에 대각선을 이루며 앉아 있어, 고전적인 구성의 법칙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다. 특히 오른쪽 아랫부분의 빈 공간은 그림의 전체 구성에 비대칭적인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으며, 꿩이 그려진 커다란 황금색 병풍은 당시 사람들의 일본풍 취미를 보여주면서 장식적인 효과를 더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이러한 일본풍의 유행에 편승하지는 않았으나, 샤르팡티에 부인 방의 실내장식을 보여주어야 하는 이 그림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번쩍이는 병풍의 색채와 꽃, 커튼, 소파 커버, 아이들의 드레스가 어우러지게 하고 부인의 드레스와 개의 흑백 대조를 강조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독장적이고 고상한 취향의 정물과 같은 인상을 만들어냈다. 르누아르에게 검정과 흰색은 생기 없는 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검은색으로 활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검은색 옷을 즐겨 입었으며, 르누아르는 검은색에 주로 붉은색과 파란색을 섞어서 사용했다. 가장 존경하는 거장으로 틴토레토를 언급하면서,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은 아이들이다. 이 그림을 그린 1878년에 르누아르는 아이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는 아이들의 발그스레한 피부, 꿈꾸는 듯 순수하고 부드러운 눈빛과 여자이이들의 자만심 넘치는 변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모습은 파리 중산계급의 여자이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것이었다.
친구들을 그린 초상화와 고객들이 주문한 초상화 외에도 르누아르는 전문적인 모델을 고용하여 많은 회화와 습작을 남겼다 이러한 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풍속화, 다시 말해 이름 모를 사람들의 초상화 같은 특징을 띤다. 이러한 작품들은 실제 인물들을 그린 르누아르의 초상화와 예술적인 면에서 크게 다리지 않다. 그의 인물화는 대부분 여성을 그린 것이다. 르누아르 자신이 여성을 좋아했으며, 여성을 그린 그림이 팔기에도 수월했기 때문이다. 《책 읽는 여인》은 그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금발으 여인이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다. 밝은 종이에 비친 노란 햇빛이 얼굴에 반사되면서 여인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여러 광원에서 비추는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 그림의 빛은 이전에 유행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빛과 음영은 윤곽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윤곽선과 세부묘사를 해체하여 다채로운 검은색과 노란색, 붉은색의 빛나는 파동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햇빛 속의 사람들, 이것이 인상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토론한 주제였으며, 르누아르는 이 주제를 많은 여성 누드화에 적용했다. 가장 뛰어난 작품은 모델 안나를 그린 것으로, 1875년 르누아르는 코로가에 있는 작업실 정원에서 이 작품을 그려 1876년 제2회 인상주의전에 완성작을 전시했다. 균형 잡히 몸매의 아름다운 소녀가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고 있는 이 그림은 파도에서 솟아오른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연상시킨다. 밤색 머리털은 몸을 따라 흘러내리고, 주변의 나뭇잎에 반사된 햇빛이 얼룩덜룩한 자주색과 녹생으 미묘한 그림자를 그녀의 몸 위에 흩뿌리고 있다. 덤불 사이에서 피아난 여인의 몸은 그 자체로 꽃처럼 보인다. 주변의 덤불은 노란색과 파란색, 녹색의 넓은 붓질로 그렸다. 이전에 그 어떤 화가도 빛과 자연 속에 어우러진 인간의 누드를 이처럼 섬세하게 그린 적은 없었다. 삶과 태양, 야외 공기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각성이 없었다면 이러한 그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그림은 마치 고대의 신화처럼 우리를 감동시킨다. 값비싼 팔지와 반지를 끼고 있는 소녀는 한 인간인 동시에 자연의 여신이다. 즉 이 그림은 고대의 신화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 한 편의 시와 같다. 이 그림이 당시 평론가들을 당혹케 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평론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카유보트는 이 그림을 구입했다.
르누아르는 초상화를 그릴 때 언제나 자세를 취한 인물의 자연스러운 개성과 동시에 지극히 짧은 순간의 우연한 인상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는 실생활의 인상을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했으며, 중산계급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회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당시 미술계를 선도하던 사람들은 예술 작업의 가장 가치 있는 대상은 무엇보다 신화와 역사에서 나온 주제여야 하며, 종교적이고 우화적인 내용을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그림보다는 이탈리아나 동양의 이국적인 정경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더 좋아했다. 살롱전 심사위원들과 전시회 관람객, 그리고 작품의 구매자들은 회화에는 재치 있고 즐거운 사건이나 긴장감, 또는 뭔가 특이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화가는 회화 속에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고 얼굴 표정을 통해 특별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고 행각했다. 반면 쿠르베와 밀레, 그리고 그들을 뒤따랐던 화가들의 사실주의 회화에는 평범한 일상 속에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을 미술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다른 인상주의자들처럼 르누아르도 대도시 파리에 사는 중산계급 사람들의 생활의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사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며, 파리의 현대적인 일상생활이나 일요일을 즐기는 전형적인 파리 사람들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간단하다. 흘긋 본 행인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현대 생활의 단면들을 잡아내 르누아르 자신의 경험 속에 끌어들여 빠른 속도로 그린 것이다. 그의 그림은 극적인 효과나 특이한 사건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매일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어 더 이상 특이하거나 독특하지 않은 것만을 그렸다. 인상주의자들은 매 순간 우연적인 사건에서 각별한 의미를 발견했으며, 모든 것은 부단히 움직인다는 생각을 매우 분명하게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덧없이 흘러가는 순간의 매력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동료 화가 드가와 마찬가지로 르누아르 역시 극장과 서커스를 즐겨 관찰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우아한 발레 무용수와 페르낭도 서커스의 어린 두 소녀를 그린 그림에서 냉소적인 드가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표현을 구사했다. 르누아르는 무엇보다 관람객을 즐겨 관찰했다. 《특별관람석》은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한 쌍의 남녀를 보여준다. 뒤쪽의 신사는 르누아르의 동생 에드몽으로 오페라 망원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으나, 앞쪽의 숙녀는 관람석 난간에 기대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그녀는 매우 단순하고 고전적인 자세로 그려져 있다. 검은 줄무늬 옷은 우리의 시선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얼굴로 이끈다. 머리와 가슴에 꽂은 연분홍빛 동백꽃은 부드럽게 홍조 띤 얼굴과 조화를 이루고, 얼굴은 차가운 가스등 불빛을 받아 연녹색을 띤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니니 로페스를 모델로 한 이 그림은 전적으로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이다. 르누아르는 그녀의 의식적인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했지만, 작품 전체는 매우 생기 있고 꾸밈이 없다.
어째서 이처럼 멋지고 세련된 그림이 그토록 경멸적인 혹평을 받았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르누아르가 이 작품을 제1회 인상주의전에 전시했을 때 관심을 보인 사람은 마르탱 아저씨라고 불린 화상 한 사람뿐이었다. 르누아르는 마르탱에게 이 작품을 단돈 425프랑에 팔아 그 돈으로 밀린 집세를 냈다. 2년 뒤에 르누아르는 이와 비슷한 극장 장면인 《첫 외출》을 그렸다. 이 그림은 처음으로 오페라 구경을 나온 어린 소녀를 그린 것이다. 작은 옆얼굴밖에 볼 수 없지만, 첫 외출의 흥분과 기대가 자세와 표정에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그리고 소녀의 눈앞에는 웅성거리는 관객의 부산한 움직임이 펼쳐져 있다. 이 그림에는 극장에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공연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가득한 분위기가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다.
극장이 문을 닫는 여름이면, 파리 사람들은 시골로 휴가를 떠나 또 다른 즐거움을 누렸다. 이때에는 부유층이든 보헤미안이든 모두 휴가를 즐겼다. 라 그르누예르 연못에서 르누아르는 전체적인 색채의 구도와 변화하는 빛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의 외광 회화는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며 서로 유혹이며 즉기는 사람들이 섬세한 노랑, 파랑, 분홍의 색점처럼 반사되는 주변의 신선한 공기를 즐기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르누아르는 아카데미 회화의 구성과 배열 법칙을 모두 깨뜨렸다. 딱딱한 형식을 벗어던진 그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즐겁고 순수한 모든 것을 강조했다. 마술처럼 사랑스러운 여인의 우아한 움직임, 따뜻하게 빛나는 사슴 같은 눈동자, 그리고 함께 모인 친구들과 연인들의 행복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산책》《그네》는 18세기 로코코 거장들의 화려한 전통을 계승하여 작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들은 다양한 색채의 진동, 그리고 미묘한 그림자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르누아르의 생애에서 가장 왕성한 결실을 보여준 이 시기의 대표작인 걸작으로 《물랭 드 라 갈레트》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전체에 걸쳐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파리 북동쪽에 있는 작은 언덕 몽마르트르에서는 도시 전체의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후에 바르비종 화가들의 선구자로 재평가된 19세기 초의 풍경화가 조르주 미셀은 초목이 듬성듬성 자라나 있고 언덕 위에 충차가 돌아가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 무렵 몽마르트르 언덕은 파리의 근교였으나. 여전히 시골다운 소박함을 간직하고 있어 파리 사람들의 소풍 장조로 인기가 높았다. 야외 식당과 술집들이 들어서면서 유흥거리가 늘어나면서 이곳은 점차 예술가 부락이자 나이트클럽 지역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1870년대에, 풍차를 개조한 물랭 드 갈레트는 소박한 중하층 사람들과 보헤미안들이 즐겨 찾는 무도장이 되었다. 두 개의 풍차 중 하나는 간혹 향수를 만들기 위해 붓꽃 뿌리를 짜는 데 쓰이기도 했으나, 두 개의 풍차는 모두 술집으로 새로 단장하여 야외 정원에 테이블을 두고 가스등을 달았다.
르누아르는 정원으 테이블 사이에 이젤을 세우고, 여름 오후에 술 마시고 춤추며 유흥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친구들이 그를 도와 근처 작업실에서 이젤을 옮겨왔으며, 스스로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화가 라미, 괴뇌트, 조르주 리비에르, 에스텔과 잔 자매, 그리고 다른 몽마르트르 여인들이 당시의 기록으로 남았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쿠바 출신의 멋쟁이 화가 돈 페드로 비달이 역시 인기 있는 모델이었던 여자 친구 마르고와 춤을 추고 있으며, 뒤쪽에는 화가인 제르베, 코르데, 레스트랭게, 로트가 보인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르누아르가 군중 속의 친구들과 일상 속에서 순간적으로 표착한 사물 하나하나에 친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당히 큰 이 작품으 첫인상은 무질서와 혼란이다. 그러한 특징은 1877년 제3회 인상주의전에 전시되었을 때의 평론가들의 반응에 잘 나타나 있다. 무질서와 혼란의 효과는 인물을 임의로 배치하고 전경과 후경을 모두 일관되게 처리한 방법에서 생겨난 것이다, 무엇보다 르누아르는 나뭇잎에 반사된 색채를 통해 배경이 되는 장소의 원래 색채를 해체했다. 나뭇잎은 장면 전체에 햇빛을 분산시켜 밝은 청색의 그림자를 퍼뜨리면서, 녹색 잎들, 노판 밀짚모자와 의자, 사람들의 금빛 머리카락, 남자들의 검은 옷 등과 다양한 모양으로 결합하고 있다. 바닥은 물론 사람들의 옷과 얼굴에 노란색과 분홍색의 얼룩덜룩한 점들, 즉 나뭇잎을 통과하여 반사된 햇빛의 얼룩들이 흩뿌려져 있다. 인물을 둘러싼 반짝이는 빛의 효과는 당시 사람들의 눈에 익숙했던 윤곽선과 뚜렷한 세부묘사를 지워버렸다. 이 그림의 주제는 전체적으로 요동치는 인상이며, 이것은 분명 르누아르가 의도한 것이다.
즐겁게 춤추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흥에 겨운 이 움직임을 어떻게 고전주의의 제한된 자세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르누아르가 의도한 인상은 실제하는 장면의 전체적으로 즉흥적인 상황 그 자체이다. 어떤 인물은 그림 경계선에서 잘려나갔으며, 장면 전체애는 얼룩덜룩한 빛의 반점이 흩뿌려져 있다. 결국 이 장면은 잘라내기 이전이나 이후나 마찬가지로, 잘려나간 부분의 왼쪽과 오른쪽에도 펼쳐져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요소중 어느 것도 이 그림이 아카데미 평론가들이 인정한 고전주의적인 그림보다 구성상 미흡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르누아르는 인물들을 두 개의 원형 구도로 구성했다 즉 오른쪽 아랫부분 테이블 주위에 둘러않은 사람들이 형성하는 작은 원과 춤추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큰 원의 일부를 볼 수 있다. 하단부가 개방된 큰 원의 구성에서는 중심부의 왼편의 인물들을 특히 강조했다. 이러한 구성은 가운데 세 인물에 의해 한층 강화되었다. 중앙의 인물은 고전적인 피라미드 구성을 이룬다. 또한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수직선과 수평선의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수직적인 구성요소는 춤추거나 서 있는 사람들, 나무, 노란 의자 등받이, 위에서 내려오거나 기둥에 매달린 램프들이다. 그리고 모두 같은 키로 그려진 후경의 인물들과 중앙의 또 다른 그룹, 둥근 램프와 하얀 나무 구조물의 밝은 선들이 수평적인 요소이다. 후자의 요소들은 그림 상단 3분의 1부분에 몰려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이 요소들은 전경의 좀더 느슨한 구성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한편 전경의 인물들의 팔과 등은 완만한 수직선을 이루지만 그림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즉 그림 전체는 이러한 상단의 수평적인 구조로 안정되어 보이는 정경을 그렸다.
이 작품의 또 다른 구성 원칙은 색채의 사용에서 살펴볼 수 있다. 르누아르의 색채는 전적으로 햇빛의 작용에 기인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의도적이다. 청색이 드리운 검은색이 강렬한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색채의 조화가 작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주제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여기에 선명한 레몬빛 노란색을 곁들였다. 즉 그림의 왼쪽 아랫부분에 있는 여자아이의 머리카락과 의자의 등받이를 선명한 노란색으로 강조하여 우리의 시선을 오른쪽으로 끌어올린다. 또한 우리의 시선은 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의 줄무늬 옷의 분홍색과 청색에 이끌린다. 두 색상은 왼쪽에서 춤추는 두 여인의 드레스에서 각각 단색으로 분리되었으며, 특히 그림의 왼쪽 부분에 햇빛과 그림자를 나타내는 색점으로 흩어져 있다. 아름답게 빛나는 주홍색이 전체 그림에 드문드문 분산되어 전체적으로 반짝이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더해야 비로소 작품 형식의 분석을 완성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림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금발의 미인의 노란 의자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와 시선을 주고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선은 정확하게 평행을 이룬 두 자매의 자세에 의해 한층 강조되었다. 그리고 두 남녀가 주고받는 시선을 그림 안쪽으로 연장해보면, 파란 옷을 입고 춤추는 여인까지 이어지는 또 다른 사선 구도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 의외로 많은 평행선을 보여준다. 두 남녀의 지배적인 시선은 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잔을 오른쪽에서 바라보는 잘생긴 젊은 남자의 애정이 깃듯 눈빛과 생생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잔의 모든 관심은 시선이 마주치는 다른 남자를 향하고 있다. 이처럼 이들 세 사람은 매우 강렬한 삼각 구도를 형성하며 나머지 사람들과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한편 그림을 보는 관람자를 직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 명의 인물을 볼 수 있다. 춤추는 세 여인의 시선은 분명 그림 밖의 관람자를 보고 있으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인물, 즉 파이프를 물고 있는 남자와 줄무늬 옷을 입은 에스텔은 생각에 잠겨 관람자 저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림 중심부에서 꿈꾸는 듯한 얼굴로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소녀는 그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중심축이다. 소녀의 얼굴, 시선, 모습에서 보이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감정은 그림 전체의 초점이 되어, 그림이 전달하는 분위기 전체를 요약해 보여준다.
사랑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의 기쁨, 모든 사람이 서로 어울려 편안하고 느긋하게 즐기는 파티의 즐거움, 햇빛과 음악, 유쾌하게 떠드는 소리, 부드러운 구애와 사랑스러운 천진함을 통해 자각하는 삶에 대한 확신, 바로 이러한 것들이 르누아르가 자유로운 붓질로 표현하고 있는 정서이다.
이러한 르누아르의 회화는 두 가지 전통에 확고하게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그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확실하게 능가하여 자신의 회화에 완벽하게 통합했다. 무엇보다 르누아르는 장 앙투안 와토, 니콜라 랑크레 같은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 거장들과 그들이 그린 축제 장면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에는 로코코 거장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동경과 구애의 눈빛, 경쾌하고 친숙한 자세, 부유하는 듯한 움직임, 청색과 분홍색의 줄무늬 드레스, 서로 자유롭게 어울리며 느슨하게 이완된 사람들의 무리를 볼 수 있다. 그의 시대는 네오바로크와 네오로코코에 속했으며, 도자기 잔에 로코코 시대의 정경을 그리던 시절 이래로 그는 앙시앵 레짐의 거장들을 계속 존경해왔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그들의 주제와 기법을 역사적인 배경 속에 정확하게 반복하기보다는 자신의 시대에 맞는 예술언어로 바꾸었다.
르누아르가 속한 두 번째 전통은 현대 프랑스의 시각예술 전통이다. 대도시 파리의 중산계급 사람들의 즐거움을 묘사하는 현대 프랑스의 시각예술은 이미 오랜 역사를 형성하고 있었다. 오노레 도미에나 폴 가바르니, 콩스탕탱 기와 다른 많은 예술가들이 수십 년 동안 책과 잡지를 통해 파리의 난봉꾼과 여점원, 보헤미안과 중산계급 사람들의 생활을 삽화로 그렸다. 이러한 작은 드로잉들은 특정 시기의 특별한 사건에 맞춰 그려진 것이기 때문에 곧 일반성을 상실했다. 석판화로 대량 제작해 배포한 이들의 드로잉은 파리 사람들의 일상과 여가는 물론 삶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여 보여주었다. 그러나 야외의 오락은 극장의 유흥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문 주제였다. 하지만 인상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제를 커다란 회화로 묘사했다. 1862년 마네가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런던 내셔널 갤러리》로 그러한 회화를 처음 시도했으며,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는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네는 실제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르누아르는 햇빛과 활기로 가득찬 야외의 개방된 공간 속에 완전히 개인화된 인간들을 그렸다. 더욱이 그는 파리의 일상생활에서 택한 주제를 상당히 큰 회화로 옮기는 예술적 도전을 감행했다.
이 시기의 말에 르누아르는 젊은 친구들을 그린 또 하나의 걸작을 남겼다. 바로 르누아르와 친구들이 여자 친구들을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뱃놀이를 하던, 센 강변의 라 그르누예르 근처 샤투에 있는 알퐁스 푸르테즈의 식당에 모여 있는 모습을 그린 《뱃놀이 일행의 오찬》이다. 이 대형 회화는 매우 세밀하게 구성되었으며, 이러한 주제를 적절하게 그리기 위한 르누아르의 모든 노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 르누아르는 이미 스케치풍으로 《사투의 노 젓는 사람들》이나 또 다른 《뱃놀이 일행의 오찬》을 그렸다 이 그림은 인물들이 그림의 경계선 안쪽에 딱 들어맞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각 요소를 연결하는 많은 선도 두드러진다. 전체 장면은 《물랭 드 라 갈레트》보다 작은 그룹의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느긋하게 흩어져 있는 사람들, 이 말은 르누아르의 예술을 요약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실제 크기로 그려진 인물들은 더욱 개성적이며, 색채는 한결 선명하고 자유롭다. 이러한 특징은 오른쪽 아랫부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카유보트의 모습에 특히 잘 나타나 있다. 카유보트를 묘사하면서 르누아르는 이후의 작품에 나타날 견고하고 강단한 냥식을 미리 보여준다. 반면, 테이블 위의 술병과 유리잔, 과일에는 반짝이는 빛의 효과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르누아르는 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쓴 젊은 여인의 작은 개를 어르는 모습을 매우 사랑스럽게 그리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알린 샤릭로, 후에 르누아르의 아내가 되었다.
인상주의 이전에는 아무도 번잡한 거리나 시장의 군중은 물론 대도시 생활 고유의 아름다움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것이 르누아르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도시 생할의 두 가지 원형, 즉 거리나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군중,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인상을 포착하여 아름다운 걸작으로 그려냈다.
등신대의 《우산》에서 르누아르가 포착하고자 한 것은 후자이다. 이 작품에서는 청색과 회색, 갈색의 미묘한 음영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군데군데 반짝이는 색채가 강조되었다. 중심인물은 화려한 모자를 쓴 아이들과 모자 가게의 여점원이다. 모자 가게 여점원은 커다란 모자 바구니를 들고 고객에게 배달을 가는 길이고, 한 신사가 용감하게 그녀에게 우산을 받쳐주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그림의 매력은 다양한 누산 모양과 사람들의 아름다운 얼굴과 자세, 특히 모자 가게 여점원의 아름다운 얼굴에 있다. 관람자의 시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그녀는 고대 여신처럼 고귀하고 기품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은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서두르는 사람들과 대기 중에 반짝이는 빗방울이 막 쏟아지려는 순간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인위적이고 정적인 느낌이 장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화가를 보고 있는 두 여성 인물의 눈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이들이 그림의 모델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물랭 드 라 갈레트》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남자의 고립된 모습이다. 좌측과 우측의 두 그룹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으며, 평행을 이룬 머리의 위치와 시선의 방향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점원의 시선을 무시하고 있으며, 굴렁쇠를 들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는 놀이 친구인 다른 소녀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주제는 당시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인 모든 연속성의 해체라고 구조적인 원칙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한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통해 변화하는 순간의 모사에서 확고한 질서를 확립하는 쪽으로 옮겨가려 하고 있다. 두 목표가 상충하면서 르누아르의 양식은 이후 몇 년 동안 변화를 겪게 된다.
르누아르는 1870년데에 일생 중 가장 왕성한 결실을 보여주었으며,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그중에서 《여름의 시골 오솔길》은 특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르누아르의 풍경화가 주로 꽃이나 다른 색채의 효과로 구성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그림은 단조롭고 도식적인 구성 때문에 다소 따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인상주의 풍경화가들과 비교할 때, 르누아르는 명확하고 힘찬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다채오룬 태피스트리처럼 구성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이러한 특징은 르누아르가 풍경화에 사람을 등장시키기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그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습, 즉 풀밭과 수풀, 그 위에 비친 햇빛과 반짝이는 공기, 여름날의 온화하고 유쾌한 대기, 활기차고 화려한 색채를 묘사했다. 르누아르는 풍경을 능숙하게 묘사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으 풍경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연성의 신체를 그리기를 더 좋아했으며, 필연적으로 풍경화와 연결되는 외광회화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자연은 예술가를 고독하게 한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남고 싶다.”
물뿌리개를 들고 있는 소녀(A Girl with a Watering-Can, 1876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Le Moulin de la Galette 1876
그네(The Swing 1876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베일을 쓴 여인(Young Woman with a Veil 1876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샹로제의 센 강변(Banks of the Seine at Champrosay 1876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샤투의 노 젓는 사람들(Oarsmen at Chatou 1879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Madame Charpentier and Her Children 187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두 명의 서커스 소녀(Two Little Circus Girls 1879년) 시키고 아트 인스티튜트
아스니에르의 센 강변(Banks of the Seine at Asnieres 1879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렌 카앵 당베르 양(Mlle Irene Gahen d'Anvers 1880년) 취리히, E. G. 뷔를레 컬렉션
뱃놀이 일행의 오찬(The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년) 워싱턴, 필립스 컬렉션
뱃놀이 일행의 오찬(The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79년) 시카고 아트 인스타튜트
복숭아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Peaches 1880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호숫가에서(By the Lake 1880년경)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두 자매(테라스에서) Two Sisters(On the Terrace) 1881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루이스 L. 코번 부부 기념 컬렉션
도제 궁전, 베네치아(Doge's Palace Venice 1881년)
윌리엄주타운(메세추세츠), 스털링 앤드 프랜신 클라크 인스티튜트
자화상(Self Portrait of Pierre-Auguste Renoir 1875년) Courtesy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미국 윌리암스타운의 클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