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철종임금 시절 양산 통도사에 남봉스님이 살았다. 일찍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 없었던 소년은 민며느리로 살고 있는 누나가 보고 싶어 설날이 되어 언양에 사는 혈육인 누님 집을 가는 길에 배가 고파 통도사에 들어갔다.
그 당신 섣달 그믐날 에는 누구 없이 떡국, 떡, 과일을 절에서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13세 소년 그는 밥상을 받고 아무도 없는 방앗간에 들어가 깨끗하게 청소를하고 밥상을 앞에 놓고 돌아가신 부모에게 절을 하며 "이 음식 이나마 아버님, 어머님께 올리오니 부디 섭섭해 하지 마시고 맛있게 드십시오."
돈이 없어 제사를 준비 못해 죄송하지만 통도사 스님이 저 먹으라고 주시는 것 입니다. 부디 드십시요,라며 울며 절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전스님이 "참 으로 기특한 아이로 구나, 저 아이를 거두어 승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떡국을 먹고 떠나려는 소년을 불러 "얘야,스님이 될 생각이 없느냐? 내가 너를 거두어 주마, 내 밑에서 중노릇 해 보아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승려생활을 시작한 아이가 남봉스님 이다. 15살이 지난 어느 날 탁발을 하여 정성껏 모은 쌀과 돈으로 100일 기도와 부모님을 위한 천도재(遷度齋)를 올렸다.
"아버님,어머님께서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 좋은 나라로 향하여 지이다"라며 간절한 축원을 올렸다.
남봉스님의 꿈에 부모님이 나타나 "우리는 부모가 되어 해 준것이 없는데 네가 그 토록 간절한 기도와 축원을 해준 공덕으로 우리는 좋은 나라로 간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네 덕에 고통의 나라를 벗어나 좋은 나라로 간다. 그러니 앞으로는 걱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우리가 고통의 나라에서 벗어나 좋은 데로 갔다는 증거를 꼭 보고 싶으면 내일 아침에 누나집으로 가 보아라. 아들아, 정말 고맙다."
이튿날인 7월 16일 아침 남봉스님은 언양 삼남골에 있는 누나 집으로 가 보았다. 묘하게도 누나 집에서 십년 이상을 부렸던 건강한 황소가 밤에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일을 잘 하였고 저녁에 쇠죽을 맛있게 먹었다는 그 소가...... 그리고 이웃 마을의 한 집에서도 십 년 이상을 산 암소 한마리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 아버님 어머님이 소가 되어 고통을 받으시다가 이제 좋은 나라로 가셨구나.'
배고픈 거지소년 시절의 섣달 그믐날 통도사 절에서 밥상을 받고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보다는 부모님 제사상을 먼저 차리고 부모님의 천도를 위해 올렸던 스님의 기도는 티끌 한점도 없는 효심이요, 정성 이었다. 이러한 효심과 정성으로 천도를 하면 어떠한 영가 일 지라도 천도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남봉스님이 누나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