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을 때 가장 난처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읽지 않으면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내가 이해할 수 없기에 소위 말하는 은혜도 없다. 큐티를 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적 깨달음으로 찌릿찌릿 감격할 때가 있다. 읽고 생각해서 영적인 그 무엇인가가 내 뇌 세포를 포위하고 있는 신화와 권력과 가치관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맛이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바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성경을 통해서 나를 창조한다. 권위있는 성경의 문자와 그 해석 그리고 해석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연결해서 육적이지 않은 나를 확인받고 싶어한다. 죄인이 아닌 나를 성경에서 꺼내고 싶은 것이다. 두루마리 책에 기록되고 증거된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가 남고 문자가 남는다. 문자에 얼룩진 나의 욕망이 남고 문자는 생존을 더욱 견고히 한다.
내가 살아있어도 괜찮은 이유가 성경이 된다. 결국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분은 내가 되고 만다. 이때부터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수단으로 변한다. 비교의 대상이 되고 해석의 대상이 되어 "나, 매우 성령 충만함!"을 확인하는 도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경 읽고있는 나! 은혜받은 나! 성령 충만한 나! 그래서 복받아야 하는 나! 건강하고 부자되어야 마땅한 나! 죽어서도 천국 갈 자격있는 나! 천국에서도 개털모자가 아닌 금면류관 써야 되는 나! 내가 정말 말이 안되는 것을 알았느이 이제는 조금은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나! 성경 속에는 이런 내가 수두룩하다.
십자가가 나를 죽였다는 것을 안다는 것 자체가 나를 구원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의무를 발생시키는가? 성경읽기는 애초부터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말씀은 인간이라는 독자(讀子)를 염두해 두지 않으셨다. 성경을 읽고 독후감을 쓰지 말라.
그러나 성경은 나의 부고(訃告)장이다. 죽었는데 살았다는 착각속에 있는 나를 말씀으로 공격해 주심으로 날마다 십자가에 넘기움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