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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과 2장, 그리고 3장에 나타난 선악과에 관한 성경적 견해
창세기 1장 26~28절 말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9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장 15~17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게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 1~15절 말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의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원리와 그 목적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원리를 창조의 역사적 순서대로 기록하면서 창조의 원인과 목적을 1장 끝에 와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사람을 위해서 너무도 상상조차 할수 없는 엄청난 창조를 실현하였습니다 그 한사람은 단지 아담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첫번째 사랑의 표현이 바로 천지창조라는 대역사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느낄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명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과 땅, 바다, 산과 들, 그리고 우리가 밟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은 바로 그러한 창조의 목적으로 탄생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방법과 축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창조물들과 동일하게 지음받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에게 주어진 혜택과 권한과 축복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이며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조건과 단서가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선악과 한그루가 있었을뿐 그 무엇도 사람의 삶을 훼방할 것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탁월한 삶의 영원한 진원지였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함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늘 언제나 아담과 하와곁에 계시며 동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한그루가 아니라 수천그루의 숲으로 되어 있어도 무가치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이 아주 짧은 한순간의 사건으로 죄를 받아들이는 장면과 그것에 대한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과 동일한 권한과 능력을 갖고 싶은 욕망이 사람에게 들어오는 과정과 그 후의 삶에 대하여 3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기 까지 그것을 시간으로 표현할 만한 가치있는 시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천지창조가 일어나고 에덴동산을 다 밟아보기도 전에 사람은 하나님을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것이었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 보다 훨씬더 어렵고 힘든 것 같은데 사람은 그와같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회개의 기회마져 놓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 같은 위험한 생각과 행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3장부터 수많은 시간과 세월동안 사람들은 범죄하고 하나님과 분리되기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죄의 생활이 윤회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뼈아픈 교훈으로 살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성경은 여전히 교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그 교훈의 책을 우리 모두가 덮어 둔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으려고도, 교훈하거나 회개의 회복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아담과 하와의 반복된 삶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선악과에 관한 견해와 설교는 너무나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가장 중요한것은 선악과 나무의 실재와 존재에 관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곳에서 일어나는 사람의 태도"라 할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죄라는 세상을 만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이처럼 우리와 철저히 구별되어 있었지만 사람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으로 가져와 절대적 가치와 철학적 이념과 주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과실과 열매들 가운데 선악과는 단지 한그루에 지나지 않고 그것도 다른 모든 것과 확연히 구별되어, 동산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고의로 먹지 않는 한 절대로 먹을 수 없는 과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것을 취한 연유는 뱀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 그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 외모와 형질에 관한 것에 국한하여 조성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고 복종하게 끔 지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지침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다른 존재의 발언에 귀 기울이며 동의하게 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와 범죄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형질은 정말로 보잘것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밟고 다니는 땅이 바로 우리의 형질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형질을 매일매일 밟고 다니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토록 아주 쉽게 짓밟히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형질이자 재료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사람되게 하고 복되게 하신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잃어버리고 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신뢰의 손을 내민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뱀의 이야기는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참으로 엄청난 비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한 그루 보잘 것 없는 그 나무가 바로 하나님과 동일한 능력과 권력을 손에 쥐는 핵심 키워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때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고 그것을 신뢰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바로 실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고 모든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과 자유를 가지고도 목마름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을 쟁취하려는 욕망을 가졌을까요? 이것은 오늘날 우리라는 거울을 통하여 바라볼 수 있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사람이 두세사람 이상 되었을때 우리는 반드시 순위를 정하려 합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지배하는 계층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권한과 능력과 재물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본질적으로 높아지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내면적 욕구가 이미 사람에게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또한 그렇게 될 수 만 있다면 위험한 모험도 때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욕망과 저주의 출발선엔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고 의식하고 있었다면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그러한 오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가 가져오는 비참과 죄악이 얼마나 길고 큰 지 한치 앞을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먼저 손에 잡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선악과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이익과 삶의 고통과 문제들에 집착하고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러한 것들로 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성경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초보적 사건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렸을 때 풍랑을 만날 수 밖에 없었던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렸을 때 만나는 선악과는 뱀의 말처럼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있어서 소돔성과 고모라성은 천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줄 좋은 환경과 시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이 하나님께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악과는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렸을때 만나는 모든 것의 엑스파일과 같은 것입니다 반대로 에덴동산가운데 한그루만 먹을 수 있고 다른 모든 과실과 열매는 먹을 수 없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선악과를 보고 있는가 이 작은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지 창세기 1장에서 3장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그들이 들려주는 스토리처럼 하나님의 이름과 금기사항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보다 강한 죄의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다른 것은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말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바로 그 위험한 순간에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뱀의 말에 더욱 더 귀를 기울이고 급기야는 그의 말대로 실행에 옮겨버린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지만 뱀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고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들렸다는 것입니다 잘만 된다면 하나님과 동일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에서 강한 유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과 너무도 닮은 광경인 것입니다 우리도 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때로는 새벽마다, 그리고 수요일밤과 금요일 밤에도 말씀과 인접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 동일한 죄를 습관처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아담과 하와에 국한된 사건과 범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모든 인류의 멸망이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인류의 멸망과 관련한 사건이 두번에 걸쳐 나와 있습니다 그 첫번째 사건이 바로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에덴동산에 거주하는 모든 인류가 바로 이 죄로 인하여 세상으로 쫒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 후에 나타나는 두번 째 사건인 노아의 방주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여덟명의 가족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머지 모든 사람이 세상이라는 선악과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재앙과 비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 사건과 마찬가지로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고 지구상에는 단지 여덟명의 한가정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바라 보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두려울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않 계시길 바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우리의 세상에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과실보다 우리가 먹어서는 않되는 선악과가 훨씬더 많은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세상이라는 곳으로 포장되어 버린 선악과 나무숲에서 생활하며 산지가 너무도 오래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매일매일 선악과를 먹고 있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먹어라는 과실만 먹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과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먹을 수 없는 선악과만 가득하고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조차 극소수가 됨으로서 종말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자유의지와 하나님과 사람의 구별됨을 나타내는 기준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면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먹을수도 먹지 않을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또한 선악과에 대한 금지조항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사람이 다스리고 먹고 마실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 만큼은 예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신앙하는 구별된 조항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선악과는 자유의지나 기준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는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때, 또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위험성, 즉,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하는 상징적인 모델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순간에서는 선악과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곳에서 우리가 세상에 눈을 돌리고 소돔성에 두고온 추억과 재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눈맞추고 있지 않는 어떤 곳에서든지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악과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불순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극한 명령보다 마귀의 낮은 한마디에 더욱 순종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뱀의 속삭임처럼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결정적인 오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를 가져온 첫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것인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이웃들의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도 쉽게 관찰되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수많은 종교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의 캐릭터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모양은 하고 있지만 "불순종"에 있어서는 세상과 전혀 다른 차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즉,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앞에서는 신자나 불신자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을 끌어 들임으로서 생긴 가장 위험한 부작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람들은 불순종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회개도 정직하게 하지 않습니다 핵심을 찾지 못하고 또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회개를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모든 죄의 결과를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창3:12) 모든 원인 제공자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복잡한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이러한 사건의 과정과 결말을 보고도 우리는 여전히 느끼고 깨닫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영적으로 이미 훼파되어 이것을 귀로 들어도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도 선악과는 곳곳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목사님을 바라보고, 성도들을 바라보고, 연약한 교회와 지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계획은 가만히 두어도 안팎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창세기의 선악과는 수천그루가 있어도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선악과가 없어도 사람들은 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선악과 나무 한그루를 심고야 말것입니다
최초의 인류는 다섯가지 중요한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은 축복의 인간이 만족과 감사를 모르고 스스로 창조된 가치라고 생각한 오류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둘째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하고 있는 삶의 현재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고 그 대신에 뱀과 선악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 삶이 어떤것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와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그들이 범죄와 관련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금기사항을 알고 있었슴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먹지말라고 하였다고 뱀에게 이야기 하면서도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금기사항을 뱀에게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느슨하게 완충력을 가지는 진리의 훼손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넷째는 그들이 범죄한 연유에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벗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찾았을때 숨고 변명하면서 까지도 정확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에게 관용을 베풀며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들이 죄로 인하여 무감각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섯째, 그들은 그들의 구차한 변명과 책임전가로 말미암아 회개의 기회마져 상실한 것입니다 회복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그들을 찾았을때 그들은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마지막 회복의 기회마져 내 던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으며 모든 마음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이 있는가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과 나는 지금 극한 위험에 쳐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이토록 위험하고 말세의 지류를 느끼는 세상에서 곡예와 같은 투명하고 정직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선악과를 먹고도 먹지 않은 것 처럼 옷을벗고 살아가는 회칠한 사람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생활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눈 맞추려는 의지와 노력을 끊임없이 갈급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작은 노력조차 기피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이 추악한 선악과 나무숲으로 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과 절차를 교회로 부터 내 던져야 합니다 세상의 굴절된 방식을 교회로 가져오는 것도 중단해야만 합니다 먹고 마심에만 치중해 가는 교회의 비뚤어진 코이노니아에 경종을 울려야만 합니다 교회안으로 스포츠와 이벤트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막아야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교회를 절대로 건강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교회의 건강성과 안전성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와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때에만 우리는 에덴동산이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지켜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도 살고 기관도 살고 우리의 가정도 살아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선택해야 합니다 선악과를 심고 볼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볼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두가지 가운데 한가지만 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이상의 선악과가 번식되지 않도록 태워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후대를 위한 바른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지금 우리 세대에서 진리를 향한 바른 가르침과 교훈이 없다면 후대에는 절망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뒤섞여있는 성경과 메세지속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 이름만 남아 사람들에게 무가치한 신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과감한 회개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언젠가 뿌리채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복음에 앞장서야 할 기독교가 세상의 종말과 재림을 가장 빠르게 부르는 사탄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앞에서의 정직함입니다 바로 그 정직함과 바른 회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아는 회복의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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