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경술국치! 잊지맙시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식민통치를 당한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나라 사랑을 드높이기 위해 29일 곳곳에 태극기 조기(弔旗)를 게양했다.
일제는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과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다. 경술국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대사건이다.
1910년, 8월 29일 경술년은 오랜 전통을 가진 조선왕조가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이다.
이 날을 한일병합조약 체결된 날과 경술국치일로 섞어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한일병합조약은 당시의 무능하고 욕심만 많았던 기득권층이 일본에게 우리나라의 권리를 불법으로 박탈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국가적 치욕의 날이라는 뜻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경술국치가 일어나기까지 원인이 되는 사건들이 있었는데 먼저 을사늑약이 시작이었다. 고종황제는 끝내 을사늑약에 옥새 날인을 거부했지만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이 5명의 을사오적이 늑결하게 만들어버린다. 일본은 을사늑약에서 통감부가 외교업무만 대신한다고 했지만, 통감부는 지방에 지청을 설치해서 외교업무를 넘어 더 많은 업무를 대신한다. 즉, 을사늑약 이후부터 통감부는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선의 모든 분야에 간섭하고 조정하기 시작한다.
최근 드라마 '미스터 썬샤인 '에서 그 당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면 알수 있다. 열강들의 각축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1910년에 조선의 끝을 말하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다. 8월 16일, 데라우치 통감이 비밀리에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에게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꺼낸다.
그리고 며칠 후인 8월 22일에 허울뿐인 어전회의를 가지고 회의에서 이완용이 전권위원으로 선정되며, 곧바로 이완용은 데라우치와 한일병합조약을 승인한다.
또 다시 며칠 후 8월 29일에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었음을 발표하고 이때부터 일제 강점기라는 36년의 어두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인됨으로써 한국은 암흑의 일제시대 36년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당시 자료로 상단의 일본의 신문은 한일병합 소개기사이며, 한일병합은 일본여신 이자나미에게 절했다는 그림이다.
하단의 공고는 일본왕이 병합은 알리는 교지이며, 순종이 병합을 알리는 칙유이다.
또한 병합과 관련된 조서이며, 조약집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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