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참으로 초라하고 약하고 불쌍한 존재임을 지각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웃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웃 또한 불쌍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서 용서와 용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웃도 십자가 은혜가 반드시 필요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나는 더욱 더 악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철저하게 자각해야만 비로소 이웃의 허물보다는 나의 허물이 크게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물론 말로는 쉽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력이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으로는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만 감성과 이성은 여전히 이웃에 대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영혼에서 우러나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온전히 체험한 성도라야 사랑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도의 영을 다스리시는 성령님이 성도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 성령님의 인도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도는 계속해서 기도하며 십자가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가기를 소망해야 한다.
끊임없이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비춰봐야 한다.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나 같은 자를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되고 그들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전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선물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참된 기독교에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