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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 의 사회학 이야기] 첫번째 : 개관
어떤 대상을 연구하건, 그것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한 개인이든, 사상이든. 사회학의 역사는 200여년으로 상당히 짧죠. 저,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가야 하는 철학이나 정치학과 비교해보면 초라할 정도입니다. 최근 20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변화들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르주아지는 백 년 남짓한(즉,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자신의 지배기간 동안 이전의 모든 세대들이 이루어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하고 엄청난 생산력을 창출했다.
칼 맑스(Karl Marx) - [공산당 선언] 중에서
[공산당 선언]은 1848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났죠. 그 15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들 알고 계실 겁니다. 자동차가 생겼고, 컴퓨터가 만들어졌으며, 2mb가 대통령이 되었죠..--;; 맑스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다면 이 엄청난 변화를 보며 뭐라 말할지 궁금합니다.
이처럼, 최근 200년은 시간의 길이만 놓고 별 것 아니라고 넘길만큼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엄청난 역사를 갖고 있는 여러 학문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신인 학문으로서 사회학이 당한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흔히들 고전 사회학의 3대 사상가라 불리는(토스 3대 천왕, 3대 기타리스트처럼) 맑스, 베버(Max Weber), 뒤르켕(Emile Durkheim)은 '사회적인 것'이 학문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특히 뒤르켕은 최초의 사회학 교수인데, 사회학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사회학이 정식 학문으로 인정되는 건 100여년에 불과합니다.
이 짧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학 200년의 시작은 18세기, 근대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중세 봉건주의 시대에서 근대 민주주의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전환기입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건은 모두가 익히 아시는 두 가지 혁명입니다. 이들은 당대의 변화를 결정지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학의 태동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 그것이죠.
사회학은 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화 속에서 탄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상이고, 학문인만큼, 학문적인 언어의 형태를 갖추어야 했죠. 따라서 사회학의 탄생에는 사회적 배경과 더불어 사상적인 배경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회학 탄생의 배경인 사회적 요소와 사상적 요소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사회적 요소부터 보도록 합시다.
1. 사회적인 배경
영국의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사회학의 형성 과정, 이것이 오늘날 갖고 있는 관심사는 근대 세계를 만들어 낸 변동들의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변동은 서구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전 지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죠. 이는 인류가 갖고 있던 사회 조직의 형태들을 완전히 해체시켰습니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이러한 변동의 핵심은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입니다.
기든스에 따르면, 대혁명은 이전의 '반란'들과는 달리, 순전히 세속적인 이상(보편적 자유, 평등)을 지배적 이념으로 하는 운동에 의해 기존 사회 질서를 완전히 해체시킨 역사상 최초의 혁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어떤 정치 집단이든, 자신의 정치 체계가 '민주주의'라고 말하게 된 건 대혁명의 결과입니다. 물론 민주주의적 형태는 과거 그리스나 로마 공화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실제로 시민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매우 소수였고, 나머지는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았죠. 대혁명은 사회를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체계로 재편하는데 큰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전에도 민주주의가 있지 않았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민주주의의 적용 범위를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내리면 되겠죠.
두번째의 큰 변동인 산업혁명은 보통 일련의 기술 혁신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는 더 넓은 범위의 사회 경제적 변동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든스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대규모의 노동력이 토지로부터 분리되어, 한참 확대 중이던 산업 노동 부문으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농업 생산에 광범위한 기계화를 초래했고, 역사상 유례없는 도시화를 촉진시켰죠.
여러분들 모두 세계사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은 노동력을 이동시켜 도시화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방적기의 발달로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양을 키우는 것이 더 이득이 되자 토지 소유자들은 농지를 목초로 바꾸었죠. 이를 가리켜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이라는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곳이 없어진 사람들은 공장이 생겨나고 있는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러한 노동력 이동 현상이 도시화를 가속화시키게 됩니다.
사실, 우리들은 도시라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산업혁명으로 인한 이러한 결과를 피부로 느끼기가 어려운데, 도시, 특히 현대적 의미의 대도시의 발생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19세기 이전에는 가장 도시화된 사회에서조차도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를 밑돌았습니다. 농업 국가에서는 이보다 적었죠. 14세기 런던의 인구는 3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들면서 90만에 육박하게 되죠. 1800년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인구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세기 후에는 거의 40%의 인구가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에 거주하게 되었고, 거의 60%에 가까운 인구가 2만 이상의 도시에 살게 되었죠.(기든스의 [비판 사회학] 18~20쪽을 참고하세요) 급격한 도시화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을 낳게 되는데, 인구의 폭증으로 주택문제가 발생했고, 부랑자들도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집단인 임금 노동자들을 낳았는데, 이들은 자본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한 축이 됩니다.
[ 참고) 삼국지에서 낙양 인구는 100만이지 않느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뭐, 그거야 게임이고, 설사 그렇다치더라도 이건 서구, 특히 유럽의 이야기라는 점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사회학은 여하튼 간에 서구에서 발생한 학문이니까요. 서구 중심적이라는 점은 고전 사회학자들이 갖는 한계(솔까말로, 그 사람들이 그 한계를 넘어설 이유 같은 건 없죠)이기도 한데, 저는 그 한계 '내'에 있습니다.]
대혁명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민주주의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민주주의란 (국가를 예로 든다면) 일정한 규칙(법)에 따라 사람들의 행위와 제도들을 구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구속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죠. 민주주의가 이전의 지배체제와 다른 점은 자신을 구속하는 규칙을 구속받는 당사자들이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근대 시민이 자율적인 이유이죠. '자기입법에 따른 자기지배'라는 칸트의 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규칙이라는 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에서는 법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전에는 통치의 수단에 불과했던 법이 이제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 것이죠.
[ 참고) '자기입법에 따른 자기지배'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의 예를 들어 근대적 주체의 자기 억압성을 드러낸다고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아도르노(Theodor Adorno)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근대 시민의 탄생을 이와 같이 묘사하고 있죠. 이들까지 다루려면 시간 깨나 걸리겠군요.]
그런데 위에 참고로 적어둔 '자기입법에 따른 자기지배'가 갖는 자유의 역설적 성격이 실제로 드러나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통한 자유의 제도화는 자기 몸을 묶을 수 밖에 없었던 오디세우스처럼 구조적으로 자유의 박탈을 내재한다는 문제점이 제기됩니다.(이는 이후 미셸 푸코의 미시 권력 분석을 통해 드러나게 되죠)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그의 저서인 [리바이어던]에서 자연상태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모두가 완전히 자유롭지만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기보존에의 위협은 자유를 빼앗아가게 되죠. 뭐든 할 수 있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회를 결코 자유롭다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홉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간의 제1 목적인) 자기보존을 안정적으로 달성하기위해 법을 만들고, 계약을 맺었으며, 개인의 폭력권을 국가에 이양했습니다. 그 엄청난 권력들을 손아귀에 쥔 것이 바로 괴물 '리바이어던'인 셈이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안정적인 자기보존을 획득했지만, 자유는 일정 부분 박탈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근대 민주주의 운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이러한 딜레마입니다.
한 가지 더, 민주주의 사상에 크게 기여한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존 로크(John Locke) 등은 참정권, 즉, '자기입법'을 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재산과 교양을 제시하였습니다. 부르주아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 권력으로서의 재산과 정치적 해방운동의 원동력으로서의 비판능력을 발생시킨 교양이 부르주아의 정치적 해방운동을 지지하는 논리로 사용된 셈이죠. 분명 고대 그리스와 비교하면 시민의 범위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만민은 평등하다며 생색을 내기에는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양한 사회 운동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재산이 없는 사람들이나 여성들, (미국같은 곳이라면) 흑인들 같은 집단들이 시민이 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을 펼치게 되죠.
산업혁명은 도시화를 낳았고, 앞서 살펴본대로 임금 노동자라는 새로운 사회 집단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에서 자본주의를 이끈 주된 집단, 즉 자본가와 노동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모순이 있었는데, 바로 '노동력'의 문제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맺은 계약 관계에서는 노동력을 하나의 상품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력 또한 일반적인 상품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죠. 즉,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팝니다'. 난점은 노동력 상품이 갖는 특수한 성격에 있습니다. 일반 상품은 계약을 통해 소유권이 명확히 이전되지만, 노동력 상품의 경우엔 팔려간 노동력의 소유권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노동력은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법적으로 노동력의 소유자는 자본가입니다. 그러나 자연적 소유자는 노동자이죠. 하나의 상품에 대해 두 명의 소유자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여기에서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노동력 상품이 다른 일반 상품과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뭐, 이 뿐 아니라 노동력만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일반 상품은 단지 가치를 이전할 뿐이라는 것, 등등이 있겠지만, 걍 넘깁시다) 이는 이후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주제가 됩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시민이라는 새로운 집단의 등장과 함께 시민권의 범위와 관련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고,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새로운 계급 간의 갈등을 발생시켰습니다. 급격한 도시화는 주거형태, 인구분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죠. 이러한 변화는 이전 시대에서 일찌기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죠. 사회학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점에서 사회학은 지극히 근대적이며, 과학적이면서,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사회학을 형성한 사상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도록 하죠. 피곤하군요..
출처 : www.pgr21.com
글쓴이 : Ms. Anscom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