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통신하다 (외 1편)
이원희
창밖을 보고 있으면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는 듯 나는 밖에 있고
저녁이 창문 넓이만큼의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다
낮과 밤의 경계를 창백한 얼굴로 서성거리던 달
23시 창안으로 눈길을 준다 벤자민 잎을 빛내며
거실 깊숙한 지점을 통과하는 저
빛의 입자에 실어 보내는 파동, 달과 접속한
그대 마음의 울림일까 창문을 열어 로그인한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문자들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였다가 낙엽을 태우는 냄새였다가
세상 일을 다 아는 사람의 얼굴 표정 같은
묘한 슬픔을 화면에 주사하는 이 편지를
오도송 같은 이 빛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주파수를 맞추며 암호를 푸는 동안
내 손등을 어루만지며 몸 안으로 들어오는 달
몸속 미세한 광케이블을 따라
허브 잎을 입안에 넣은 것처럼
온몸으로 퍼져 우주 밖으로 빨려간다
능소화
담장 안팎을 끌고 당겨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능소화
금간 담장에 걸터앉아 갈라진 틈을 봉합하고 있다
한때 저 담장의 몸이었던 적 있었다
삶과 소통하지 못하고 벽으로 서서
근심으로 금 그어지던 몸
견딘 것들과 견뎌야할 것들 사이
살아온 방식과 살아갈 방식 사이
바람직한 세계와 나 사이
느끼지 못한 틈새의 거리지만 비애 쪽으로 넘어지다
간절함으로 곧추세우며 놓았다 붙잡은
생사生死 거리만큼의 틈으로 금 그어졌다
나를 꿈꾸게 하는 것은 저 꽃이었다
어슬녘에 걸터앉아 한 송이 피워 열 송이 피워
수백 송이로 담장과 하나 되어 경계를 지우는 능소화
구름도 연연하던 시간을 포용하며
풍경을 아우르고 있다
—시집『달과 통신하다』(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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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전자계산학과 졸업. 2001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사랑, 그 침묵』『달과 통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