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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14.7 km
소요 시간 8h 16m 8s
이동 시간 6h 52m 54s
휴식 시간 1h 23m 14s
평균 속도 2.1 km/h
최고점 958 m
총 획득고도 747 m
난이도 힘듦
백두대간 (白頭大幹) 16 – 대야산
양산박
높이 올라야 먼곳을 본다
두 눈이 미치는 먼 산마루
하늘과 맞닿아 아른거린다
더이상 높이 오를 수는 없다
대야산 큰산에 올랐다
주변의 산들이 엎드려 있다
대야산에 가을이 익어간다
프로로그
태풍 콩레이가 금요일 밤부터 남부지방에 꽤 많은 비를 뿌리고 일본쪽으로 물러났다. 토요일 오전까지 서울 경기에도 비가 내렸으나 오후에는 개이고 맑고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일요일 대간길 산행이 영향을 받을까 우려되었지만 다행히 바람만 조금 강하게 불고 기온이 떨어졌지만 오히려 산행하기에는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
비법정 탐방로라는 것은 탐방로이지만 국립공원 관리에 관한 법으로 탐방을 제한하는 길을 말한다. 대한민국 안에 위치하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위법이다.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이런 비법정 탐방로는 전국 국립공원에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특히, 유명한 국립공원일수록 금지된 구역이 더 넓다.
탐방을 금지하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다. 하나는 희귀 생물자원 보호요 다른 하나는 사고 위험지역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국립공원에서 내세우는 이유는 그중에서도 희귀한 식물자원 보호라는 명목인 것 같다. 산꾼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다니면서 희귀한 식물들을 무작위로 채취하는데다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식물자원 서식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비탐방 구간은 풍경이 아름답고 산행하는 묘미도 있는데다 가지 말라고 하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본연의 호기심까지 가세하여 그런 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전과자들이 별 하나 더 달았을 때의 무용담처럼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실제로 그런 비탐방 구간을 ‘몰래’ 들어가 보면 일반 등산로 못지 않게 등로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슴을 알게 된다. 그만큼 많은 산꾼들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개인적으로 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세상에는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 많이 있다. 특히, 외교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국가에는 탐방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제한된 곳이 많은데, 우리나라 안에서조차 갈 수 없는 구간을 설정해 놓고 수 많은 사람들을 공공연히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에서 국민이 낸 세금을 허투로 쓰지 말고 적어도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만큼이라도 작은 안전장치를 설치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좋은 자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버리미기재에서 출발하여 촛대봉 – 대야산 구간을 ‘훔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우리는 마침내 백두대간 줄기에서 작지만 처음으로 “끊어진 고리”를 남기게 되었다.
산행기
오전 9시 15분경 제수리재에 도착했다. 산행 준비를 갖추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버리미기재에 도착하면 평소 비탐지역을 걸을 때 하듯이 재빨리 버스에서 내려 산대장의 안내에 따라 숲길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모두 차에서 내려 배낭을 꾸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 약 5분여 거리에 있는 버리미기재에 도착했으나 곧바로 국립공원 관리인이 나타나자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더 가다가 완장리에 있는 불한티 계곡입구에 차를 세우고 불란치고개로 가는 길을 모색했으나 또 다시 국공이 감시하는 것을 눈치로 알아차리고는 한 발 물러서야 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오던 길을 되돌아서 아까 지나왔던 버리미기재를 지나서 한참을 내려가 마침내 상관평리 농촌마을 앞에 버스를 세웠다. 먼저 한문희 총대장님이 마을 안쪽으로 얼만큼 가더니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눈 듯 돌아와서는 모두 버스에서 내려 부지런히 따라오라 한다.
결국 산행 들머리를 찾아 국공과 한시간동안 숨바꼭질을 하고선 10시 5분경 마침내 불란치골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햇볕이 따사로운 가을날이다. 농로길 옆으로 이어진 들판에는 추수 후에 남겨진 오미자 송이가 빨갛게 익어 있고, 들깨 밭에는 마지막 가을 햇볕을 쬐며 들깨가 익어간다.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댄 곡식이 풍성한 가을을 맞았다.
오미자 - 다섯가지 맛을 내는 열매다. 최근 농촌에서 오미자 발효액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많이 늘어났다.
쑥부쟁이가 길가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큰닭의덩굴
30여명의 긴 대열은 빠른 걸음으로 들길을 벗어나 숲의 초입에 도착하여 잠깐동안의 숨고르기를 한 후 본격적인 대간길 산행을 시작했다. 물론 대간길에 이르기 위한 접근로이지만 어쨌든 들판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산길을 걷는 것이니 본격적인 산행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길은 짙은 녹음이 우거진 원시림 같다. 처음에는 오래 전에 만들어 놓았으나 사용하지 않은 채 버려진 임도를 걸었고 길은 점차 깊은 숲속으로 이어져 작은 개울을 지나면서 조릿대가 키보다 높이 자란 습지를 지났다.
일본잎갈나무 (낙엽송) 숲
마침내 산비탈로 길이 어어지더니 산꾼들이 다니는 능선길과 만나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드디어 촛대봉과 대야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길 촛대재에 올라 섰다. 오전 11시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자란초 - 봄에 보라색 꽃을 피웠던 풀이다.
지난 6월 10일 석교산 산행중에 만났던 자란초 꽃
계곡에는 아직 단풍이 들기 전이다
촛대봉 ( 661 m)
몇몇 산대장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이 대야산 구간을 처음 걷는 사람들이다. 한문희 총대장님이 산행 반대방향에 위치한 촛대봉에 다녀올 사람은 자발적으로 갔다오라 한다. 왕복 한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 배낭을 벗어 두고 너도 나도 촛대봉으로 향했다. 산봉우리가 촛대처럼 생겨서 촛대봉이라 부르나. 누구의 상상력이 발휘되어 이런 멋진 산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고심을 한 것 같다. 촛대봉에 오르는 중간 너머쯤에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바위 낭떨어지가 있다. 이 절벽을 올라 조금 더 올라가니 촛불 형상을 딴 정상석에 한글 흘림체로 산이름을 새겨 놓았다. 그 반대 방향은 가보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산봉우리를 바위절벽이 둘러 싸고 그 위에 흙이 얹혀져 있는 모양이라면 그게 촛대봉이라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두들 로프를 잡고 다리에 힘을 쓰며 오르내린 촛대봉 왕복 산행으로 가라 앉았던 분위기가 일시에 업되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청화산 – 조항산 산행구간과 마찬가지로 산구절초와 개쑥부쟁이가 산길을 밝게 한다. 연한 자주색으로 장신구처럼 생긴 산부추꽃도 산길 곳곳에 피어 있다.
산구절초
개쑥부쟁이
산부추꽃
촛대봉 쪽에서 마주 보이는 대야산은 중간에 바위절벽이 받치고 있는 펑퍼짐한 흙산이었다. 이제 막 단풍이 물드는 숲위로 우똑 솟은 대야산의 모습이 멋지다.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그런 멋진 산에 접근하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대야산의 웅장한 모습
대야산 ( 930.7 m )
약 30분간의 촛대봉 탐방을 마치고 다시 능선길로 원점회귀하여 대야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능선으로 오르던 길이 잡목을 헤치며 걷던 원시림이었고 촛대봉에 오가던 길이 바위 낭떨어지 길이었던데 비해 대야봉으로 오르는 길 초입은 나무계단으로 잘 닦여져 있어 우리는 갑자기 편해진 산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숲속 단풍나무는 빨갛게 물들고 참나무 잎도 노랑빛이 비친다. 공기는 선선하고 맑아 기분마처 쾌청하다.
당단풍나무
산길에 난 산부추 꽃이 연한 자주색으로 하늘거린다. 병조희풀은 꽃이 진 자리에 머리를 풀어헤친 씨앗이 여물어간다. 산앵도나무 열매는 새빨간 색으로 드문 드문 매달려 있다. 이미 당분이 넘치는 사과나 배 등 재배과일에 입맛이 적응된 내 혀는 산앵도가 품고 있는 단맛을 옳게 평가하지 못한다. 어쩌면 너무 작아 어떤 맛을 갖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고추나물 열매가 아직도 파란 색으로 줄기 끝에 매달려 있다. 이제 좀 있으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서둘러 씨앗을 땅에 떨어뜨리고 한 해를 마무리할 것이다. 분취도 연한 자주색꽃이 신선하다. 이 모든 것들이 제각각 앉은 자리에서 바야흐로 가을로 달려가는 계절을 연주한다.
산앵도 열매가 앙증맞게 달려 있다
병조희풀 씨앗 - 으아리과에 속하는 다년생 나무다.
고추나물 - 열매의 모양이 고추를 닮아 고추나물이라 부른다
미역취
산길이 점점 경사가 급해지더니 앞서 가던 대열이 멈춰 섰다. 뒤에서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대열 맨 앞쪽에서 울린다. 그리고 ‘밧줄이 없어’ 라고 외치는 총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맨 앞에 가던 여성회원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현장상황을 알려 준다. 직각으로 곧게 서 있는 약 5 ~ 6 미터 바위벽이 우리를 밀쳐내려 한다. 뒤쪽에 서서 선두행렬이 올라 가기를 기다려도 좀처럼 진척이 없다.
부상으로 빠진 이현구 별동대장을 대신하여 이번에 후미쪽 안내를 맡은 김용호 대장이 주변을 살피다가 왼쪽에 늘어져 있는 로프를 발견했다. 뒤에 남아 있는 남자 회원들에게 왼쪽 로프를 타고 올라가라 한다. 모두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았던 몸인데 저 정도 로프를 타고 바위를 오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며 의기충천이다. 그러나 막상 젖은 로프를 손에 쥐고 팽팽하게 당겨본 후 발을 딛자 사정이 다르다. 바위가 물에 젖어 미끄럽다. 마음은 오른발로 딛고 왼발을 굽혀 올려야 하는데 그 오른발이 잘 버텨주질 못하고 자꾸만 미끄러진다. 역시 세월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백두대간을 것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동네 산악회에서 나름 산길을 잘 다닌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선두에서 여성회원들이 하나 둘 올라가고 이어서 왼쪽의 줄을 타고 오르는 회원들도 팔 다리 힘을 안배하여 거뜬히 안부에 올라 선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힘든 과정을 겪고 올라 선 곳에는 평탄한 흙길이고 그 왼쪽 끝에는 멋진 암릉이 펼쳐졌다.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산줄기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는다. 태풍 콩레이가 흘리고 간 구름이 파란 하늘에 점점이 묻어 있고 그 하늘과 맞닿은 산줄기가 잉크가 번지듯이 경계가 흐릿하다. 발 아래 양탄자처럼 펼쳐진 숲에는 가을빛이 퍼져간다.
다음 회차에 걸을 희양산 방향
머리를 들어 진행방향을 보니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앞서 간 회원들은 이미 정상에 올라 가 있다. 앞서 간 회원들이 카메라 있는 곳을 우회하여 왼쪽으로 내려오라는 말에 따라 조금 돌아 가니 마침내 대야산 정상이다. 대야산 (큰大 어조사耶 뫼山) 즉 큰 산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 이름이 그렇지만 처음 지은 이름과 현재 우리가 한자나 한글로 표현하는 뜻과는 괴리가 많은 것 같다. 처음에 누가 무슨 뜻으로 이름을 지었든, 그 뒤로 또 누군가가 달리 부르길 반복하다 보니 지금 우리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산이름은 처음의 뜻과 많이 다를 수 있고, 또한 그 뜻을 헤아려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대야산, 그냥 큰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 하다. 누군가는 대홍수 때 주변이 모두 물에 잠겼음에도 이 산꼭데기만 남아 있는 모습이 꼭 대야를 엎어 놓은 모습을 닮아서 그리 불렀다고 하고 또 누구는 야(耶)자가 큰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라 하여 큰아버지산이라고도 말하는데 모두 근거 없는 말이다.
대야산 정상에 서면 이 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멀리 속리산 주능선부터 우리가 지나온 청화산과 조항산이 뚜렷하게 보이고 또 앞으로 가야 할 장성봉과 희양산 백화산 주흘산 등이 멀리 또 가까이 조망된다. 이처럼 주변에서 우뚝 솟아 보이는 이 대야산이야 말로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는 쉽게 오르기는 힘들어도 한 번 오르면 가슴속까지 파고 드는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 그저 ‘큰산’이라는 표현 말고 달리 어떤 수식어가 필요했으랴. 우리도 정상석을 앞에 앉혀 놓고 각자 익숙한 포즈로 인증 사진을 찍고 나니 하루 일정을 다 마친 기분이다. 이제 내리막길을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내려가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눈이 닿을 수 있는 먼 곳까지 주변을 둘러 보고 나서 정상 아래 한적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로프에 매달려 힘들게 올라 온 대야산의 노스페이스 암릉에 대한 흥분을 밥숟가락에 얹어 점심을 먹는다. 이 청명한 가을날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맛있는 물을 마시며 음식을 먹으면 도대체 무엇인들 맛이 없으랴. 무겁게 지고 올라온 온수를 부어 컵라면을 나눔하신 님의 손맛이 실핏줄까지 번진다. 아직은 그늘이 편한 계절이나 이제 곧 따뜻한 양지를 찾아 다녀야 할 만큼 계절의 무게추가 한 해의 끄트머리로 달린다. 술과 과일과 맛있는 음식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우리는 가을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으로 짧은 휴식을 마쳤다.
가까이 조항산과 청화산 그리고 그 너머 흐릿하게 속리산 주능선이 조망된다
대야산 정상에 핀 산구절초
그늘을 찾아 점심준비
속리산을 대표로 하는 주변 산군(山群)에는 여러가지 모양을 한 멋진 바위들이 즐비하다. 아니, 속리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바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대야산을 떠나 얼마 안 가서 집채만한 바위가 앞에 서 있다. 커다란 바위 두개가 떨어져 있는 틈이 큰 대문처럼 생겼다 하여 대문바위라 부르는 곳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앞서 가던 회원분이 옆으로 기울어진 바위를 온 힘을 쏟아 떠 받치고 있다. 그 큰 바위는 작은 부분만 땅에 닿아 있어 보기만 해도 옆으로 쓸어질 듯 위태해 보인다. 지나는 사람들이 작은 나뭇가지를 꺽어 이 바위를 받쳐 놓았다.
대문바위 아래 작은 나뭇가지가 바위를 떠 받친다.
밀재(蜜峙)
앞으로 남은 여정은 밀재를 지나 지난번 날머리로 삼았던 고모재까지 가는 것이다. 어려운 구간을 이미 다 지나갔으니 쉬운 길만 남았다. 회원들의 축지법이 다시 작동한다. 축지법을 못쓰는 몇몇 회원들만 꽁무니에 남아 어슬렁 어슬렁 주변을 둘러 보면서 가고 앞서 간 회원들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분취
삽주 - 뿌리를 창출 또는 백출이라 하고 한약재로 쓰인다
여기는 밀재입니다. - 벌고개
밀재(蜜재)는 달리 ‘벌고개’라 부른다. 옛날 벌치는 사람들이 꿀을 채취하던 곳이라 한다. 대야산 정상에서 조항산쪽으로 1 km 떨어져 있으며 남쪽진행방향으로 오른쪽에는 화양계곡을 지나 충청북도 괴산군 삼송리 농바위마을과 그리고 왼쪽으로는 용추계곡을 지나 경상북도 문경시 완장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주변의 숲이 울창하여 나무그늘이 시원하고 빛이 많이 들지 않아 주위가 어둡다. 이정표 관리를 문경시에서 하는 듯 이 밀재의 이정표에는 월영대와 대야산으로 가는 방향만 표시되어 있다. 삼송리 화양골로 내려가는 방향에는 탐방을 금지한다는 팻말만 서 있다.
이고들빼기
노송
맑은대쑥
대사초
금방 나타날 줄 알았던 고모재에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힘들다기 보다는 시간이 꽤 걸리는 거리였다. 밀재에서 고모재까지 1.8 km 거리인데 그 중간에 높직한 봉우리 세 개를 넘어야 한다. 산길은 나이 든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지나면서 대야산 특유의 암봉을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굴참나무와 소나무들이 눈에 띈다. 경사가 제법 있지만 오르는데 힘이 드는 편은 아니다.
산기름나물 - 꽃이 지고 맺은 열매의 모양이 기름방울처럼 생겼다 하여 기름나물이라 부른다.
구실사리
오르막길이 지루하다고 느낄 즈음 등로는 능선길로 접어 들고 다시 따사로운 햇살에 노출된다. 이어서 굴바위라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아직도 우리가 속리산군안에 있슴을 일깨워준다.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높다란 바위아래 여러 사람이 들어가 비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다.
굴바위
산길은 다시 한 번 올라가는데 고도는 그리 높지 않다. 산정까지 오르지 않고 등로는 왼쪽으로 조금 빗겨간다. 생강나무와 당단풍이 제일 먼저 가을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생강나무는 이른 봄 봄의 전령사처럼 노란 꽃을 피우더니 다시 가을이 왔다고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어두운 숲길을 밝혀준다. 저 잎을 떨구면 나무들은 한 동안 눈덮힌 숲속에서 또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준비에 들어간다.
생강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세 번째 봉우리를 돌아서 시야가 좀 트이는 곳에 이르자 한참 앞서 간 줄 알았던 선두팀이 멈춰 서 있다. 한문희 대장과 함께 3명의 회원이 도중에 행렬에서 이탈하여 지름길로 하산한다고 한다. 송이버섯을 따 오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고 나머지 대원들의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또 남은 여정을 향해 걸어 간다.
마귀할멈통시바위를 거쳐 둔덕산으로 가는 길과 고모재를 거쳐 조항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는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 다만, 마귀할멈통시바위로 가는 길은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보면 사방을 훤히 조망할 수 있어 우리가 가야 할 길에서 조금 벗어났슴을 확인할 수 있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그리 촉박하지 않다. 지난 회차에 지나온 조항산과 청화산 방향 그리고 대간길에서 벗어난 마귀할멈통시바위와 둔덕산 등 눈앞에 펼쳐진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고모재로 향한다.
조항산이 코앞에 다가서 보인다
마귀할멈퉁시바위와 둔덕산 방향
오후 4시 30분 고모재에 도착하여 맛있는 약수를 통에 담고 지난번에 걸었던 계곡을 따라 농바우로 향했다. 일주일새 나뭇잎에 묻어 있는 가을색이 더욱 진해진 것 같다. 전 날 늦게까지 내린 비로 평소 모래만 차 있던 계곡에 물소리가 가득 넘쳐난다. 한 번 다녀간 길이라 망설임 없이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계곡에 크고 작은 폭포가 형성되어 흐르는 물줄기가 볼 만 하다.
추색이 짙어가는 숲길
계곡물에 몸을 씻고 개운한 기분으로 마을로 내려서자 먼 산 너머로 뉘엇뉘엇 넘어가는 석양이 구름과 조화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추분이 지나고 낮의 길이가 짧아짐을 느낀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주변에는 저녁 어스름이 내려 앉아 있고 마을의 개들은 이방인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번갈아 가며 짖어 댄다. 지난 회차에 날머리로 삼았던 농바우 마을에 다시 왔다.
산박하
청천면 삼송리 농바우 마을의 해넘이 풍경
농바위라는 마을의 이름은 이 마을 뒤편 산에 장롱같은 네모 형태의 바위에서 유래한다. 전국적으로 농바우라는 이름의 바위가 많이 있으며 그에 따른 전설도 다양하다. 우리가 날머리로 삼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농바우 마을에서 고모재를 넘어가면 문경시 농암(籠岩)면이 있는데 이는 농바위를 한자로 쓴 것이다.
이 농암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옥황상제의 딸과 몰래 연애를 하다 들킨 구호라는 청년이 벌을 받아 지상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지상에 내려온 구호는 아버지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진 아비라는 소녀를 만났는데, 아비는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잃고 통곡하고 있었다. 구호는 아비의 아버지를 잡아 먹은 호랑이를 잡아 아비를 위로해 주고 그 인연으로 아비와 사랑에 빠졌다. 아비가 뱃속에 아기를 임신했을 즈음 구호에게 내려졌던 옥황상제의 유배가 풀려 구호는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자신이 지상의 소녀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임신시킨 것으로 공주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웠으나 구호는 아미를 데리고 천마를 타고 천상으로 돌아갔다. 옥황상제는 그런 구호를 괘씸하게 여긴 나머지 구호와 아미를 다시 지상으로 내쳤는데 그 둘이 떨어져 바위가 되었다. 그리고 천마에 실었던 장롱 2개가 땅에 떨어지면서 각기 다른 곳에 떨여져 두 개의 다른 농바위가 되었고 천마는 천마산이 되었다. 그 뒤 구호와 아미가 변한 바위 중 하나가 갈라지면서 아기가 태어 났는데 그가 바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라는 얘기다.
농바위에 얽힌 이런 유사한 이야기가 각기 다른 버전으로 전해지는데 대부분 농바위를 통해 어떤 힘센 장수가 태어나길 염원하는 내용이다. 이 농안에는 장수가 입을 갑옷과 투구 그리고 무기가 함께 들어 있다. 삼송리의 농바우에는 어떤 전설이 숨어 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문경 농암면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언급된 두개의 농 중 하나가 이 삼송리 농바위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6시 20분경 산행을 마치고 어둑해진 농바우 마을로 내려오자 앞서 온 회원들이 모두 이 마을 이장님댁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하산주를 마시고 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고향마을로 돌아와서 갖가지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는 박종호 이장님은 우리에게 비닐하우스 안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본인과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였다. 도회지와 농촌을 이어주는 농산물 직거래장이 열리고 몇몇 회원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간단한 뒤풀이를 마쳤다.
뚱딴지 - 돼지감자라고도 부르는 구황작물이다. 요즘 당뇨에 좋다고 하여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짧아진 해는 이미 서쪽으로 지나가고 깜깜한 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빈자리를 차지하고 오돌오돌 떨고 있다. 가을이 익어간다. 그리고 우리 자유인 백두대간 22기는 또 하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7시 30분 버스가 삼송리를 출발하여 2시간 여만인 9시 반경 양재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