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
[Ms. Anscombe 의 사회학 이야기] 첫번째 : 개관 [Ms. Anscombe 의 사회학 이야기] 두번째 : 탄생 - 쌍둥이 혁명
앞선 글에서는 사회학의 역사적 배경이 된 두 가지 사건,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두 사건은 중세에서 근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치-경제적인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으킨 사회적인 변화들을 해명하기 위해 나타난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라는 것이 지난 번(그래봤자 두어 시간 전에 쓴) 글의 핵심 내용입니다.
앞 글의 말미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사회학은 지극히 근대적이며, 과학적이면서, 도덕적"이라고 말이죠.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학은 근대라는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서 과학의 형식을 갖추고, 도덕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이죠. 특히나 사회학의 탄생기를 주도한 고전 사회학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2. 사상적인 배경
1) 이성의 시대
근대적 사상가들이 이전 시대의 사상가들과 다르게 특별히 중시했던 가치가 무엇일까요? 온갖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이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 시대의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근대 사상가들이 바라보는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철학에서는 어려운 말을 써서 이를 '주체'라고 하죠.
근대 철학을 탄생시켰다고 여겨지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인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능력이 어디서 왔느냐는 의문에 대해 그 역시 신이 준 것이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간에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인간들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 이것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했죠. 데카르트에게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념과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정확히 말하자면 '본질'이겠지만)이 일치하느냐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 될 테니까 말이죠. 이러한 데카르트의 기획은 '인식론'이라는 말을 얻고, 근대 철학의 핵심적인 분야가 됩니다.(어떤 글에서 '인식론', '인식론적'이라는 표현을 보신다면, 이를 상기해보시길)
데카르트로 하여금 감히 인간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게 했던 것은 과학, 그 중에서도 수학이었습니다. 데카르트의 경우에는 기하학에 크게 의존했죠. 실제로 데카르트가 과학에 대한 지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수학의 엄밀성은 과학에 대한 믿음을 갖게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피사의 사탑에서의 실험으로 이론을 증명했다고 알려져있는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실험에 대해 그리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계가 수학적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과학을 수학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뉴턴(Issac Newton)이 중력법칙을 제시한 유명한 [프린키피아]의 본 제목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입니다.
자연과학의 성공은 세계를 수학화 해냈다는 점에 있었고, 실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방법이었지만, 최종적인 목적은 수학화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 보면 근대를 특징지은 것 중 하나가 수학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인데, 나중에 독일 철학자인 후설(Edmund Husserl)은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근대 과학의 핵심을 수학화로 규정하고 있죠. 후설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이 단지 방법을 넘어서서 학문을 특정한 틀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모든 사람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수치화하는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향기를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죠. 치밀하고, 엄밀한 수학적 계산은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주지만, 인간을 사물과 같이 대하고,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대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고전 사회학의 한 축인 막스 베버(Max Weber)의 주요한 학문적 관심사가 됩니다.
여하간 뉴턴이 만들어낸 수학 공식은 실제 관측, 실험과 맞아떨어짐으로써 진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저도 자연과학에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만, 뉴턴 물리학의 성공 이후에 물리학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말이 나와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해도 코웃음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전문가가 물리학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전문가의 이야기를 인용할 것입니다. 자연과학적인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의 주장이 '권위'를 얻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광우병 확률론' 운운하는 정부측 인사들이 '과학적' 이라는 수사를 수십차례 사용하지만, 정작 그들의 주장에 '과학적인' 논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과학'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권위에 기대고 있을 뿐이죠.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고전 사회학의 핵심적인 인물인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은 사회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후기 저작인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이러한 형태의 '과학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죠.
그 시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근대로의 전환이기에 과학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었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이 갖는 무게감은 상당했습니다. 연금술은 자취를 감췄고, 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과학이란 어디까지나 '자연과학'을 뜻했죠. 어떤 학문이 정말 과학적이려면 자연과학적이어야 했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봅시다. 사회학의 등장배경에는 새로이 등장한 사회현상들과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 동기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근대 사회학, 사회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믿음, '과학이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인간들을 둘러싼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죠.
'앎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것이 이들의 캐치 프레이즈였던 셈이죠.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고, 인간은 그에 순응하여 따라갈 수 밖에 없다고 여겼던 중세적인 세계관과 달리, 근대적 사고에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당연시 여겨지던 질서들이 의심스러워지면서, 인간 생활을 합리적으로 재편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게 되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흔히들 사회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은 인간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사회를 개선시켜야 한다. 사회를 목적에 맞게 적절히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하며, 그 ‘안다’는 것은 기본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법칙의 존재는 한편 인간행동의 한계를 설정하지만 다른 한편 그 구속성들을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더욱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사회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따라야 했고, 뉴턴의 주장이 일련의 법칙의 서술로 구성되듯이, 사회를 움직이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사회학이 할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인간과 달의 움직임이 똑같지는 않지만, 개별 인간들의 집합은 달의 움직임이 그러한 것 만큼이나 규칙적인 성격을 보였죠. 특정한 개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더라도, 개인'들'의 행동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고, 여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오늘날 콩트의 실질적인 주장들은 거의 다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회, 사회의 작동을 지배하는 보편법칙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전히 사회학의 시조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2) 계몽주의와 개인주의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너무 멀리 돌아간 감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근대적 의미의 학문은 자연과학의 형태를 갖고 있어야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고, 이는 자연과학의 놀라운 성공에 기인합니다. 자연과학의 형태란 현상에 존재하는 법칙을 발견하여 정식화하는데 있었고, 초창기의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의 과학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얼마나 과학적이냐를 떠나서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정말로 과학적임을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과학적인 것이냐는 의문이 나오는 게 당연한데, 이것은 ‘설명과 이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둘러싼 방법론적 논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지금 다룰 내용은 아닌 것 같군요. 다만, 초창기 사회학이 닮고 싶어한 과학의 모델은 ‘예측 가능성’ 개념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만 기억하고 넘어갑시다.
자, 사회학은 이제 과학이라는 하나의 무기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학적인 무기를 사회학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험난한 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유닛들의 사정거리, 유닛간의 상성관계와 같은 요소들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스타를 더 잘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사회를 움직이는 법칙들을 잘 알게 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점에서 사회학의 지향은 분명 도덕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당시의 사회 사상인 계몽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계몽(Enlightenment)이란 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억압에서 해방시키고자 합니다. 과학적 지식이란 해방의 도구일 뿐이죠. 앞서 살펴 본 지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근대 과학의 모토와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콩트와 맑스도 이러한 점에서 계몽주의를 계승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둘 모두 과학을 통해 역사 법칙을 밝혀내고 그 법칙을 빌려 올바른 사회적 규범과 원칙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둘의 정치적 지향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진보’를 강조했다는 점은 둘 사이에 계몽주의라는 공통 분모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계몽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장의 근본을 이성적 개인에 대한 믿음에 놓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그들 자신 진리를 알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설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데카르트가 이성에, 로크가 경험에 근거를 두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둘의 전제는 똑같습니다. 논의의 출발점은 이성적인 개인에 있습니다.
사회학이 계몽주의와 같은 길을 걷다가 결정적으로 결별하는 것이 이 지점입니다. 사회학은 계몽주의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적 전제를 거부합니다. 모든 개인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질서에 의해 틀지워지고 영향받으며 제약받기 때문에, 개인이 사회분석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사회학적 기획의 핵심에 자리합니다. 사회학자들은 개인이 아닌 다른 것들에서 출발했고, 이 덕분에 기존의 사회사상들과 자신들을 차별화 할 수 있게 됩니다.
휴, 별 것 아닌 글인데 힘드네요. 여하간 이제 사회학자들은 자연과학적인 방법이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방법론적 차원), 사회학이 연구하는 독자적인 대상이 무엇인지(연구 대상의 차원)를 보여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는데,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회학자들이 이 글을 통해 수 차례 언급된 3인방,
칼 맑스(Karl Marx) 막스 베버(Max Weber)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입니다. 이들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한 명을 다루는 것도 너무 벅차죠. 뭐, 그래도 대강 이렇다, 저렇다, 말이라도 늘어놓을 수 있는 소양을 쌓는 게 목적이니깐..
이번 글에 사용된 참고 문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이스 코저, 사회사상사 존 휴즈(외), 고전 사회학의 이해 앤서니 기든스, 비판 사회학 스티븐 사이드먼, 지식 논쟁 피터 버거 & 한스프리트 켈너, 사회학의 사명과 방법
현실적인 예들과 엮으면서 다분히 이론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것은 지양하고 싶은데, 딱딱한 얘기가 된 것 같아서 아쉽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