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광복회장이 된 장철씨의 ‘친일청산 중단’이라는 망언으로 생존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은 물론이고 역사 정의의 실현을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내가 장철씨를 대신해서 사과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이미문제는 그 정도 선에서 끝날 성싶지 않다. 오직 장철씨가 먼저 가신 선열들과 그 유족들에게 백배 사죄하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다른 언론 매체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장철씨는 국민들의 존경도 받지 못하게 된 광복회장 자리에 연연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깨끗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길 바란다.
박정희가 급조한 조직‘광복회’
나는 이전부터 광복회가 언제나 친일청산운동에 앞장서는 단체로 거듭나길 바라고 또 기다려왔다. 광복회의 사정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나보고 이야기하기를“당신은 입만 열면 친일청산을 부르짖으면서 왜 광복회와 함께 하지 않느냐”라고 묻곤 한다. 나라고 왜 명색이 생존 독립운동가와 유족들의 최대 단체인 광복회와 함께 살아 생전의 소원인 친일청산 운동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구조로는 광복회는 친일청산은커녕 민족정기와 역사 정의를 세우기도 불가능하다. 세세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현재 광복회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만 이야기해보자.
먼저 광복회는 약 3백여 명의 생존 독립운동가를 포함하여 거의 6천명에 가까운 회원들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항일운동’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가진 조직으로서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런데 이런 고결한 뜻으로 모인 광복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직 내부는 너무나도 비민주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단적인 예로 아직도 광복회장은 직선제가 아닌 겨우 20명이모여 선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밖에 광복회 자체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취약한 역사적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1 9 6 5년 급조된 조직이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천황의 충성스런 군인이던 박정희는 이와모토 쇼이치(岩本正一)라는이름으로 일제 밀정 노릇을 한 이갑성을 초대 광복회장으로 앉혔다. 지금도 초대 광복회장이라는 이유로 광복회 사무실에는 이갑성의 사진이 버젓이 걸려있다.
이러한 광복회의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박정희 이후 역대 정권의 학정에 대해 국민들의 입장에서 참다운 목소리를 낸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마 단 한 번도 없다고 여겨진다. 광복회가 단순히 생존 독립운동가들과 그 유족들의 친목단체 정도에 머물지 않고 급기야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친일청산 중단 운운하는 지경까지 왔으니 이제는 ‘광복회 자체의 광복운동’을 해야할 때인지도 모를 일이다.
광복회 자체의 광복운동이 필요하다
장철씨는 친일청산보다도 생존 독립운동가와 유족들의 복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하며 광복회원들을 현혹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복지도 중요하고 그들에게 국가가 더 많은 예우와 연금혜택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시대 포졸보다도 몇 백배는 더 잔인하고 무서운 일제 헌병과 군인들을 상대로 싸운 사람들이다. 예우나 복지문제와 친일청산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굳이 지금보다 더 나은 예우와 복지혜택을 받고 싶다면 한 가지 지름길이 있다. 그것은 생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지금이라도 당장 친일청산운동과 함께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한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된다.
독립운동가 사회에서는 ‘선친일(先親日) 후반일(後反日)’은 용납이 되도 ‘선반일(先反日) 후친일(後親日)’은 절대 용납되지 않고 있듯이 광복회와 그 회원들 모두는 선대의 항일운동을 이어받아 친일청산운동에 나서는 것만이 역사 앞에 떳떳한 길인 것이다.
글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