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집필과 전도
북한의 흥남특별노무자수용소에서 옥고를 치르시던 참아버님께서는 6·25전쟁으로 하늘의 보호와 인도하심 속에 극적으로 출감하시게 되었다.
출감 후 남하하신 참아버님은 1951년 1월 27일 제자 김원필 선생과 함께 부산 초량역에 도착하셨다. 이후 곽노필(서울 흑석동 시절 친구) 선생, 엄덕문(일본 유학시절 친구) 선생과 만나 그들 집에서 잠시 유하시다가 제3부두에서 노동을 하시면서 생활하셨다.
4월 하순부터는 흥남감옥 옥중 제자 김원덕 씨 댁에서 20여 일간 머무르셨다. 참아버님은 이곳에서 『원리원본』 집필을 시작하셨다. 5월 중순부터는 김원필 선생과 나가야(長屋, 일제강점기 전기회사의 사택, 범냇골 입구) 로 옮겨 하숙하셨고, 1951년 8월에 범냇골 토담집을 손수 지으셨다. 이곳에서는 1953년 1월, 수정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1년 6개월간 생활하셨다. 참아버님께서는 1952년 5월 10일 『원리원본』 집필을 마치셨고, 이날 토담집으로 찾아온 강현실 전도사를 만나 전도하셨다.
지금 토담집 자리에는 범냇골기념관(범일전, 1976년 12월 23일 개관) 이 세워져 그 시절을 기념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토담집에서 사용하던 램프(진품은 별도 보관), 좌식 책상, 참아버님께서 쓰신 휘호 ‘범일전(凡一殿)’, ‘일도지원 일심일념(一道之源 一心一念)’(1976.12.23.), ‘부원지성도 성도지복음(釜源之聖道 聖徒之福音)’(1965.1.26.) 등이 있다.
한편, 참아버님께서 미국 댄버리 형무소에 수감되신 다음해인 1985년부터 1987년까지는 미국의 성직자 약 7,000명이 범냇골 성지를 순례하며 정성을 들였다.
범냇골기념관에서 도보로 10분가량 오르면 눈물의 바위가 있다. 눈물의 바위 옆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있다. “본 성지, 이곳은 인류구원과 세계평화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하여 문선명 선생께서 눈물로 기 도하셨던 곳으로서 세계 40여 개국의 돌을 가지고 오셔서 묻고 본성지로서 축복하신 자리입니다.”
눈물의 바위에서 조금 더 오르면 참아버님께서 명상하시고 쉬셨던 바위가 있고, 위로 더 가면 제1성지에 오를 수 있다. 제1성지에는 참부모님을 상징하는 두 개의 탑이 있다. 2001년 7월 3일 참어머님께서는 이 산을 ‘천부산’이라고 명명해 주셨다. 비석에는 “천부산 천주 제1성지(天父山 天宙 第 一聖地), 이곳은 문선명 선생께서 1951년 1월 27일 부산에 오시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특별 사명을 수행하시던 중 기도하시던 장소입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pp.131-137
범일동에 있는 범냇골로 올라가 집을 지었습니다. 범냇골은 공동묘지 근처라 돌투성이 골짜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 땅이라고는 가진 게 없으니 산비탈을 비스듬히 다져 집터를 만들었습니다. 삽도 없어 남의 집 부엌에서 부삽을 몰래 꺼내 쓰고는 주인 모르게 가져다 놓았습니다. 김원필과 함께 돌을 쪼개고 땅을 파고 자갈을 날랐습니다.
흙과 짚을 이겨 만든 벽돌로 벽을 쌓고 미군부대에서 얻은 레이션 박스의 네 귀퉁이를 뜯어 지붕을 얹고 방바닥에는 검은 비닐을 깔았습니다. 바윗돌에 기대어 지은 집이라 방 한가운데 바위가 툭 솟아나와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방에서 샘이 솟았습니다. 앉은 자리 밑으로 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아주 낭만적인 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가는 길이었기에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만이 가득했습니다.
김원필이 미군부대에 출근을 할 때면 산 아래까지 따라 나갔습니다. 저녁이 되어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마중을 갔습니다. 그 외의 시간엔 잠도 안 자고 연필을 깍아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원리원본』을 썼습니다. 쌀독에 쌀은 없어도 방 안에 연필은 가득했습니다.
『원리원본』을 탈고하던 날, 나는 연필을 내려놓으며 ‘이제는 전도할 때이니 전도할 성도를 보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린 뒤 우물가로 나갔습니다. 그때 한 젊은 여자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으며 우물가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내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인사를 마친 뒤 집에 들어온 그녀가 누추한 방 안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둘러보더니 앉은뱅이 책상 위를 눈여겨보고 물었습니다. “웬 몽당연필이 저리 많은가요?” “제가 오늘 아침까지 우주의 원리를 밝히는 책을 썼습니다. 그 말씀을 듣게 하려고 하나님이 전도사님을 여기까지 보내신 거지요.”
나는 방석을 내어주며 그녀를 앉으라 하고 나도 앉았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밑으로 샘물이 졸졸 거리며 흘렀습니다. “한국 땅은 앞으로 온 세계의 산봉우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할 때가 올 겁니다.” 내말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은
엘리야가 세례요한으로 나타난 것처럼 육신을 쓰고 한국 땅에 오실 것입니다.”라는 말에 급기야 그녀는 발끈 화를 내며 “예수님이 오실 데가 없어서 이 비참한 한국에 오신단 말이에요.” 하며 대들었습니다.
강현실은 신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성경구절을 줄줄이 외며 나를 공격했습니다. 얼마나 야무지게 대드는지 나도 기차 화통 같은 소리로 일일이 응대하기 바빴습니다. 토론이 길어지고 밖이 어두워지자 내가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반찬이라야 시어빠진 김치뿐이었지만 물소리가 졸졸 나는 방에 앉아 그 밥을 둘이 다 먹고 또다시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또 다음날도 계속 올라와 나와 토론을 벌이더니 강현실은 마침내 범천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오시는 길
● 주 소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4동 1513번지
● 문 의 : 범일전 051-642-8839 | 박남욱 부산교구 사무국장 010-2594-2431
《교통편》
● 버 스
_ 김해공항에서 좌석버스 201번을 타고 부산역 앞에서 내려서 부산역 또는 서면방향으로 다시 87 번 시내버스를 타고 안창마을 입구에서 하차한다
_ 마을 버스: 범냇골 지하철역에서 내린 다음 마을버스 정류장 출구로 나와서 안창마을행 마을버 스를 이용해 범일전으로 간다.
● 승용차
_ 부산 교통부(통일회관 앞) 앞에서 좁은 도로를 따라서 수정산 쪽으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