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은 50년대 말, 등산과 관광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부터 곧바로 전국민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산입니다.
하지만 당시 모습을 살펴볼 자료는 의외로 극히 빈약합니다.
1967년 문희와 신성일 주연의 "원점"이 설악산 올로케로 찍었습니다.
어느정도는 영화적으로 설악을 재구성했겠지만, 전체적으로 당시 설악산의 디테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가 제공한 영화 도중에 중요한 장면을 모셔오겠습니다.
덧보탤 이야기는 따로 다시 올리도록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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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가 설악으로 떠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문희 옆으로 '오늘도 무사히'가 있습니다.
그녀 옆으로 버들강아지가 있습니다. 덧없는 희망을 뜻하는 복선이겠죠.
나중에 설악에서 버들강아지는 다시 등장합니다.
설악관광호텔 표지판입니다.
Sorak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제작된 자막에는 Seorak으로 되어 있고요.
70년대까지는 설악의 영어 표기가 Sorak이 대세입니다.
한편 호텔이면서도 롯지(Lodge 산장)라고 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관광호텔은 나중에 나오겠지만, 산장식으로 지어진 초미니 호텔이죠.
대국민 선전용으로는 '호텔'로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조금 쪽팔리니^^ 롯지라고 했을 것 같네요.
이들은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걸려 강릉비행장으로 와서는 관광버스를 갈아탔습니다.
속초비행장은 1967년 8월 7일 민간항로가 처음으로 개설 운항이 시작되었습니다.
요금은 1인 2천 4백원으로 역시 1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앞부분에 꽃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관광호텔 저 밑으로는 건물들이 쭈욱 펼쳐져 있습니다.
74년 설악동이 재편되기 전의 모습입니다.
플랭카드에는 동계 설악산 특별 관광단' 1967년 2월 7일~10일로 적혀 있습니다.
유려한 붓글씨입니다.
뒷문이 열리고 관광호텔 라운지 입구에 내립니다.
준비하고 있던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이 관광팀은 한겨울에 그것도 비행기로 올 정도로 나름^^ 유복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가에 앉아 있는 두 주인공.
그들 사이에 있는 재떨이는 사기로 만들어졌을 테고, '설악관광호텔'이 적혀 있겠죠. 하나 갖고 싶습니다.
저멀리 잡지와 설악산 등산, 관광 코스 등이 담겨 있을 가판대 모습입니다.
1967년 등산 관광 자료 보고 싶군요...(->
디테일의 힘....오른쪽에 시계에 3시. 달력에는 7일이 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환영 다과회를 연 다음. 라운지 뒤에 있는 산장형 호텔로 투숙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성일.
급히 설악산으로 피신오면서도 '키슬링' 배낭을 준비합니다. 오빠 멋져.
그리고 티롤 모자에다가 전형적인 등산의류인 아노락을 매고 있습니다
내일은 하얀색으로 갈아 입습니다. 역시 헛된 희망을 상징하겠죠.
밤에는 호텔 바로 앞 마당에서 기타리스트와 함께 모닥불 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호텔 앞 마당에서 말이죠~~~
의자 형태입니다.
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많이 붙인 형식이죠 (->
108호. 그들이 투숙한 호텔 룸은 하필이면 불교식인 108호입니다. 이승에서는 이루지 못할 사랑.
사진에서처럼 창문밖으로 천하에 둘도 없을 절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조식이 끝난 후 가이드의 말이 있습니다.
2박 3일인데 둘째밤은 야영입니다.
이들은 모두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신흥사쪽으로 향합니다.
다리는 사람들이 겨우 다닐 정도로 약한 모습인데...( ->
하얀 옷으로 갈아 있읍네요.
아노락의 가슴 주머니에는 돈을 넣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곧이어 절앞에 도착합니다.
지금시간 9시 20분. 앞으로 자유행동하고 5시까지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며 저녁에는 캠핑을 할 거라는데..
아마 이 대본이 봄이나 여름에 씌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2월 7일이니 오전 9시도 이르고, 오후 5시는 해가 너무 늦습니다.
그리고 캠핑은 아무래도 불가능했겠죠. 추워서.
신흥사 안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저멀리 설악산 신흥사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신흥사의 신이 新이 아니라 神입니다.
언제 바뀌었을까요?
맨왼쪽 문희와 신성일에게 뭔가 나누어주고 있는 젊은 가이드.
점심 도시락이 아니라 설악산 관광 사진첩입니다.
이들이 오늘 어디어디를 다녀오면 좋을까라는 게 사진과 함께 적혀 있는 (->
책을 펼쳐 보고 있는 모습이네요.
저렇게 나무하나 덩그라니 걸쳐져 있던 때도 있었나 봅니다.
정말로 나무 한그루이군요.
이날 특별 산행객 중에는 로프를 들고 온 전문 산군도 있습니다.
어머나..
처음에 제가 말했듯이. 그들은 산간계곡에서 철이른 버들강아지를 발견. 영어로 Catkin이라 하는가 봅니다.
이들은 저멀리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산을 오르고 싶어 합니다.
어느 산일까요?
문희는 '그동안 항상 남들을 올려다 보고 살아왔다. 오늘은 저곳에 올라 세상을 내려보고 싶다'라는 말을 합니다.
당시 신흥사에서 비선대로가는 길이 이정도 였나 봅니다.
1955년 처음으로 서울 외부인들 맞이할 때는 신흥사조차 찌그러 반쯤 가라 앉았던 상태였다죠.
1958년경인가 고려대 팀은 신흥사에서 하룻밤 자고, 비선대 지나 양폭가기전에 다시 하룻밤을 자야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