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동조론은 한국사의 뿌리를 없애려는 논리로서, 표면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피를 이어 받은 근친관계에 있다는 주장이지만 내면적으로 고대 이래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이론이다.
이 논리를 다룬 책으로는 시게노, 쿠메, 호시노 등의 일본 교수들이 쓴 『국사안(國史眼)』이 있다. 이 책은 출운신화(出雲神話)에 나오는 스사노오미코토가 조선의 지배자가 되고, 이나히노미코토가 신라의 왕이 되며, 그의 아들 아메노히보꼬가 일본에 귀복하며,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치는 등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 책에 따르면 조선은 일본과 조상이 같을 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일본의 지배에 있었기 때문에 일제의 조선지배는 두 민족을 원상상태로 복구시키려는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있었다. 임나일본부설은 광개토태왕비의 비문을 해독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찾아서 자신들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한 학설이다. 광개토태왕비는 1883년경 사코라는 일본의 정보장교가 수집한 후 6년간의 해독 작업을 거쳐 소개되었다. 일본학자들은 전에는 자신들의 사료(史料)인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 등을 인용해서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주장했다. 하지만 광개토태왕 비문을 입수한 이후에는 이 비문의 내용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입증해준다고 주장하면서 비문을 중심으로 과거에 주장했던 내용과 연대들을 수정해 갔다. 하지만 비문의 파손이 심해서 정확한 해독이 어렵고, 일본(日本)이란 국호가 그 시기 보다 후에 정해지며, 파손부분을 석회로 바른 흔적이 보이면서 이진희 등의 한국의 학자들에게 조작의 의혹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학자가 아닌 일본의 정보장교가 비문을 수집했다는 점에서 더욱 조작 의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학설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서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다.
이러한 주장과 역사해석을 통해서 한국은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아래 있었다는 역사상이 일본인에게 심어졌다. 그리고 조선 병합이 이루어지면서 일선동조론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합병 직후에 일본의 학술지 『역사지리』는 당시 일본의 역사학자 대부분을 동원하여 임시 중간 조선호를 냈다. 거기에는 "일천만 백의의 민중은 이제야 제국에 새로이 붙은 신민(臣民)이 되었다."라고 간행사에 씌어 있었으며, 여기에 실린 글들은 모두 일본의 한국 합병을 '양국 조상이 하나라는 설'을 근거로 예찬하였다. 가령 호시노라는 자는 '역사상에서 본 일한동역(日韓同域)의 복고(復古)와 확정(確定)'이라는 글에서 한일 합병은 과거로의 복귀(復歸)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3·1 운동 후에 더욱 강하게 주장되었다. 키다의 '일한양민동원론(日韓兩民族同源論)'은 그 대표적인 논문이다. 여기서는 고고학적 유물 외의 문헌·언어·풍습·신화 등 여러 방면에서 한일 두 민족의 동원(同源)이 상세하게 논해졌으며 동시에 일본의 한국지배의 정당성과 이에 반항하는 민족독립운동의 부당성이 강하게 주장되었다. 더욱이 이 논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선동조론이 규모를 확대하여 단순히 일본인과 한국인과의 동조(同祖)·동원(同源)을 말할 뿐만 아니라, 만주·몽고 민족을 포함한 동조·동원이 주장되고 있는 점이다.
일선동조론은 일본과 한국과의 근친성·일체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두 민족간의 연대와는 전혀 상반되는 의식이다. 거기에는 한국의 독자적인 민족, 혹은 국가로서 존중하는 의식이 전혀 없다.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곳에 연대는 생각할 수가 없다. 동조론이 아무리 친근성을 강조하더라도 한국인으로서는 모욕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독선적인 일선동조론은 단순히 역사가의 한국사관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명치연간을 통하여 한국에 관한 다수의 저작에 광범하게 나타났다. 즉 일본인의 한국 역사에 대한 주요한 틀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일선동조론은 당시의 일본학자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던 논리이다. 그리고 한국의 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일본의 고대문화의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들이었으며, 신공황후가 신라를 치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했던 시기의 일본은 아직 국가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이라는 국호도 훨씬 후대에 정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제가 주장하는 일선동조론은 한마디로 허무맹랑한 소설과 같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일본민족이 한국에서 건너간 민족이라는 학설이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