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신학교의 종말은 새로운 설립의 새로운 시작을 나타낸다/메이첸
다른 사람들은 나약해졌을지도 모르고 타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이첸은 승산에 개의치 않고, 또한 그 투쟁이 희망 없어 보이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굿꿋이 자기 길을 계속 갔다. 그는 역경에 부닥칠 때마다 임기 응변의 조처를 취하기보다는 불굴의 의지로 그 역경을 헤쳐 나갔다. 위대한 대의에의 깊은 헌신감에서 그는 끝까지 자신의 올곧은 행로를 계속해서 갔다.
메이첸은 예측하기를 “프린스턴 신학교의 종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교회사에서의 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복음적인 기관들이 설립되어야 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나타낸다”고 했다. 만약 프린스턴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을 대신할 참으로 복음적인 신학교가 절실히 필요할 터인데, 그 신학교는 건전한 목회자 공급원이 될 것이다.
메이첸은 사정을 두지 않고, 이루어질 것 같은 사태 진전의 책임을 단호히 그 신학교의 유서 깊은 입장에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돌렸다.
“복음적인 체하는 교회에서는 한 신학교가 바로 지금 성공의 절정에 있는 것- 전 세계에서 학생들 대다수를 끌어들이고, 그 학교의 입장과는 더할 나위 없이 강하게 의견이 다른 사람들한테서까지 존경을 받으며, 많은 교단과 많은 땅의 복음적인 사람들이 거의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히 기대를 거는- 이 언뜻 보아서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학교가 공격을 하기 위해 선정된 학교라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프린스턴은 그 학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성공 때문에 공격을 받고 있다. 따사롭고 생기가 넘치는 기독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인기가 있을 때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세계에도 아랑곳없이 복음을 전한다. 그런 유형의 기독교는 고국에서든 선교지에서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모더니즘과 협력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런 유형의 기독교는 구주의 속량하는 사랑에 마음과 삶을 완전히 버리고서 응답하며,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열정이 있으며, 성경을 일부분은 참되고 일부분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모두 참되고 복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따사롭고 생기가 넘치는 유형의 기독교는, 그것이 예컨대 복음주의 학생 동맹에서 나타났듯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는 당황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나오는 프린스턴 신학교는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기 없는 복음을 전하는 권세를 우리 자신의 지혜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복된 지면들에서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성경이 담고 있는 이 복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대학과 대학교와 신학교들이 예전에는 복음적이었지만, 이제는 전에 그들이 지녔던 것에 적대적이 되었거나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들은 정통론의 많은 주장들에 대해 그렇게 하기 일쑤이며, 참된 복음적 의도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기존의 프린스턴이 사라지면, 자신들의 삶에서 빛도 꺼져 버렸다고 생각할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한테서 그 빛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스톤하우스, 「메이첸의 생애와 사상」, PP 567-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