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추자도 기행 내내 걱정하였습니다. 내일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데 어쩌나. 관광 안내 센터의 팸플릿도 기회 있는 대로 찾아보고 나름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택시 기사에게 물어 보기도하고. 제주에서 비 올 때 실내에 갈만한 곳이 어디 없느냐고. 그러나 별 신통한 대답이 없습니다. 결국 저녁 먹으면서까지 결론을 못 내고 여하튼 옷 젖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발이 젖으면 다음날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므로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을 가자고 하였습니다. 민속박물관등은 몇 번씩 가보았으므로. 일기 예보가 틀리길, 비가 오더라도 오후 늦게 오길 빌면서. 그러나 예보는 아침 제주부터 비가 온다 하였으니.
새벽, 내심으론 비가 오더라도 차라리 올레를 걷는게 낫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7시 30분 아침을 먹자고 약속하였기 조금 늦잠을 자 깨어보니 6시 40분. 천천히 씻고 준비하려는데 일행분이 비가 별게 아니니 올레를 하자고 합니다. 흔쾌히 대답합니다. 16코스 할거죠? 그랬더니 20코스 하자고 하지 않았나요? 난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럼 7시에 나가지요 합니다. 난 네 하고 대답하곤 늘 하던 아침 샤워도 생략하고 세수만 하고 부랴부랴 나섭니다. 코스는아침 먹으러 나가면서 결국 16코스를 가기로 합니다. 잘되었습니다. 차례로 14에서 16까지 하니.
터미널 옆 할머니네 식당에서 아침 먹고 7시 30분 702번 버스 승차.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버스 브러쉬가 바쁘게 오갈 때마다 걱정은 늘어 갑니다.
고내리 하차. 비가림 정류소에서 우의 입고 배낭 커버 씌우고 우산 쓰고 고내포구로 향합니다. 고내포구 정자에서 짐을 추스르고 8시 30분 16코스 출발. 비는 계속 내립니다. 올레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생각되는 아름다운 해안 절벽길을 갑니다. 고내포구에서부터 구엄리까지 해안 절벽길, 넓은 바다 조망, 주상절리 형태의 용암 바위 절벽, 곳곳에 정자와 쉼터. 참으로 아름다운 해변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펜션, 리조트, 호텔, 게스트 하우스, 모텔 등 등 숙박시설이 즐비합니다. 너무나 많습니다. 게다가 계속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쓰레기입니다. 14코스 일성 콘도 앞처럼 아주 다양한 온갖 쓰레기가 해안을 덮고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망치고 있습니다. 광령리 마을회관의 아주머니 적개심처럼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곳 사람들의 어구, 어업 쓰레기, 폐건축 자재, 이곳 사람들의 생활쓰레기 등 등, 이 쓰레기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정말 필요합니다. 올레길 전체가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올레꾼이나 관광객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하나도 없다고야 말할 수 없지만 이곳 사람들의 쓰레기가 99%입니다.
이곳 제주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습니다. 설계가 정말 특이한 집들, 네모난 상자 같은 집, 버섯집은 물론이고 창고 같은 집, 아름다운 조형미의 집들에서 거대한 대저택 풍의 집, 정원을 잘 꾸며 놓은 집, 별장, 그리고 동네 안의 자그마한 카페, 그런가하면 옛날의 나지막한 오두막집 등 등.
구엄리 바닷가 돌소금 염전을 끝으로 올레 길은 내륙으로 접어듭니다. 수산봉 오름. 수산봉 정상.10시 10분 수산봉 정상 정자에서 잠시 휴식. 10시 50분 수산봉 내려와 수산 저수지.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441호, 곰솔이 우람한 자태로 서 있습니다.
저수지 뚝방 길을 걸어 무슨 저온 창고 같은 건물이 있는데 나중 알고 보니 펜션이랍니다. 제주물인 줄 알았더니 제주무이라는 카페와 펜션입니다. 미미와 샐러드랍니다. 유명한 곳이랍니다. 난 이해가 잘 안됩니다. 이 궁벽한 곳 까지 굳이 샐러드, 커피 마시러 온다는 게. 서울 청담동에서 내려 왔답니다. 비가 오는 날 우리는 정말 모처럼 근사한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십니다. 아침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십니다. 나는 커피 라떼, 다른 분은 카푸치노. 11시부터 연다는데 10시 50분. 그래서 식사는 안 된답니다. 원래 우리는 식사할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라떼는 맛이 별로 없습니다. 여하튼 폼을 있는 대로 다 잡고 11시 10분 카페를 나섭니다. 올레꾼 하나가 혼자 빗속을 걸어갑니다. 미친 놈이 우리만은 아니구나 안심이 됩니다.
카페를 나서서 비를 맞으며 얼마를 가니 우리 일정에 있던 희망의 다리가 나타납니다 유래는 모르겠으나 아주 작으마한 시멘트 다리에 희망의 다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신기해 하며 그 다리를 건너 계속 진행합니다. 소 목장을 지납니다. 소가 길게 음~메 하고 웁니다. 일행 한 분이 소 도살장 이야기를 꺼내서 불쌍한 동물들의 이야기에 취해 아주 많이 간 모양입니다. 갈래 길이 두어 번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게 그냥 진행하다보니 표지가 없습니다. 그럴 듯한 길로 갑니다. 어디서 나타나겠지 하고. 그때 얼른 되돌아 왔어야 하는데 우리는 무엇에 씌인 듯 갑니다. 너무 많이 왔다 싶어 동네 할머니에게 여쭈어 보니 온 곳으로 한참을 내려 가랍니다. 아무리 되짚어 가도 표시가 없습니다. 이렇게 왜 우리가 무심코 멀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소 목장도 다시 지나쳐 희망의 다리까지 오니 아뿔싸. 희망의 다리를 건너는 게 아니고 거기서 좌회전을 해야 했습니다. 표지도 분명히 있었는데 다리 이름에 팔려 그냥 간 것이었습니다. 근 20~30분은 알바하였습니다. 맥이 다 풀립니다.
비는 한 번도 그친 적이 없고 더 거세어져만 갑니다. 예원 마을회관 비가림 정류장에서 잠시 쉽니다. 다시 추슬러 진행. 빗발이 더욱 굵어져 이 상태로는 진행이 어렵지 않나 생각될 정도입니다. 조금 가다 보니 평화로로 생각되는 아주 큰 길이 나옵니다. 이제 여기서 그만 오늘 진행을 끝내고 싶습니다. 일행 한분도 그런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 분은 계속 가고 싶어 하고. 그런데 큰 길가 좌우 어디에도 버스 정류장이 안보입니다. 할 수 없이 표지 따라 길을 건너고 장수봉 산길로 들어 섭니다. 별 수 없이 올레를 진행 합니다. 장수봉 길을 계속 가다보니 웬 두터운 제방이 나타납니다. 무엇인가 하였는데 항파두리성, 항몽의 토성이었습니다. 얼마를 가니 항몽 유적지입니다.
12시 40분, 항몽 유적지 휴게소. 이 휴게소에서는 술, 담배, 빵, 우유 팔지 않는답니다. 아마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럴 겁니다. 술, 담배는 그렇다 쳐도 빵, 우유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주머니에게 광령초등학교를 물으니 3.5km 정도라면서 그 곳에는 버스, 식당 다 있답니다. 진행해 보니 남은 거리 4km 표지가 있습니다. 이제 비는 좀 가늘어 집니다. 다리가 몹시 아픕니다. 곳곳에 개들이 있고 짖습니다. 풀어 놓은 개들도 많습니다. 올레길의 가장 큰 두 문제는 쓰레기와 개입니다. 아픈 다리를 끌고 별장 지대를 지납니다. 일행 한 분은 점심 먹고 내쳐 17 코스 가자고 나를 놀립니다. 난 도저히 못 갑니다. 13시 40분 광령 초등학교, 이제 다 왔습니다. 13시 50분 광령 1리 사무소. 식당에 들어 갔다가 컴퓨터 출력 좀 한 두장 하자니 앞, 마을 회관에 부탁해 보래서 갔다가 일행 분은 올레꾼에 적개심을 가진 아주머니에게 온갖 욕을 다 먹었다고 하며 농협에 부탁했더니 한마디로 거절하더라면서 광령리의 불친절과 적개심이 도를 넘었다고 합니다. 다시 단언컨대 바닷가 쓰레기는 올레꾼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제주도민들의 육지인에 대한 거부감과 적개심은 아주 뿌리가 깊은 것 같습니다. 밥 먹고 16코스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