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님이 사자를 보내어 사람에게 궁에 들어올 것을 명하였다. 그 사람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 친구는 매우 귀하게 여기어왔던 터라 절친한 사이라 생각하였다. 두 번째 친구도 사랑하였지만 첫 번째 친구만큼 귀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세 번째도 친구라고는 생각하였지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자가 왔을 때 그는 무언가 잘못한 일을 행했으므로 그 죄 값을 받으려나 보다 생각되어진지라 어쩐지 두려워 임금님 앞에 혼자 나갈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그는 생각 끝에 가장 귀중히 여기고 있던 친한 친구를 찾아가 함께 동행해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 친구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거절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가 부탁을 했더니 “대궐문까지는 가지만 더 이상은 어렵네.” 라고 했다. 이에 행여 하는 마음에 세 번째 친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였더니 그 친구는 “그러세, 자네는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서워할 것 없네, 내가 동행하여 임금님께 그러하다고 아뢸걸세” 라고 했다. 여기서 첫 번째 친구는 재산이요, 두 번째 친구는 친척, 세 번째 친구는 선행으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무리 아끼고 사랑해도 재산을 사후까지 가지고 갈 수 없다. 내 혈육인 친척도 장지까지는 따라 간다지만 매장 후에는 그를 두고 되돌아 가버린다. 그러나 선행은 죽은 뒤에도 줄곧 그와 함께 기억된다.
요즘 들어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이기주의적 가치관만이 팽배한 세상이다.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가 앞서며, 공공의 안녕이나 질서보다는 나만의 편의와 이익을 앞세운다. 서로를 배려하는 인심은 찾아보기 어렵고 삼강오륜의 윤리의식마저 무너진 지 오래다. 청소년들의 일탈 현장을 목격하고도 올바로 지적하지 못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기성세대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갖은 장소에서 옳지 못한 행위들을 무의식적으로 자행하며, 나를 돌아보기는커녕 마냥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왜 그리 잘도 찾아내는지. 바로서는 사회, 올바른 사회의 수혜자는 곧 우리이며, 우리의 후손들일진대 그릇된 사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위법, 탈법을 자행하며, 나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 행위에만 눈과 귀가 멀어 있음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지 되돌아보며 살아가야 한다.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의 희생도 때로는 감수하면서 올바른 질서와 통제에도 익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선행이 특별한 자들만의 행위인가. 나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고 나보다 약한 자의 편에서 생각하며, 그들의 입장에 눈높이를 맞춰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선행의 시작 아닌가. 이젠 우리의 가치관도 올바르게 깨어나야 한다. 나 중심이 아닌 우리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며, 내 형제, 내 자식만이 아닌 우리 형제, 우리들의 자식이라는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질 때 진정한 인간성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웃 간, 동료 간 서로를 사랑하고, 부족함 속에서도 아끼고 나누며, 웃어른과 아래 사람들 간 예의범절이 몸에서 절로 묻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계층,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행실이 옳아야 한다.
잘못된 행위는 사랑으로 지적해주고 올바른 충고는 긍정적, 발전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열린사회, 교통질서가 잘 지켜지는 아름답고 여유로운 사회는 결코 우리에게 멀리만 있는 것일까.
우린 우리 마음속에 선행의 그래프를 그려 나아가야 한다. 매일 매일 나를 부끄럽게 한 행위는 없었는지. 나의 행동이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나의 조그마한 봉사와 희생으로 남들에게 작으나마 행복은 주었는지.
즐겁고 보람된 사회,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나의 몫은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고 묵묵히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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