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 정법 (正法) - (1)
임제(臨濟)가 세상을 뜰 때에, 삼성(三聖)이 원주(院主)로
있었는데 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말하였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멸망
되지 않게 하라."
삼성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화상의 정법안장을 멸망하게 하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하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물으면 그대는 무엇이라 하겠는가?"
삼성이 할을 하거늘 선사가 말하였다.
"누가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에게 멸망될 줄을 알
았으리요?"
장산천(蔣山泉)이 송했다.
정법안장을 누구에게 전할 수 있을까?
할을 할 때, 넓은 바다가 바닥까지 말랐다.
이로부터 눈먼 나귀 찾을 곳 없으니
무쇠 산 돌아오는 길이 캄캄하도다.
황룡남(黃龍南)이 송했다.
열반에 들고자 이별을 고할 때
정법안장 잘 지니라 당부하였네.
할 소리에 진흙 길이 열리지 않으니
눈먼 나귀, 이로부터 타는 이 없네.
해인신(海印信)이 송했다.
정법안장 부탁한 일, 헛되지 않건만
떠날 때 범의 수염, 잡아 뽑은 일 우습기도 하여라.
일찍이 화산(華山)의 도적(圖籍) 18)에도 바쳤던 일인데
반랑(潘閬)이 나귀를 거꾸로 탄 일을 더 보탠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했다.
신표의 옷, 밤중에 노능(盧能 : 六祖)에게 전하니
황매산(黃梅山)의 7백 승려 술렁거렸다.
임제의 한 가닥 정법안장을
눈먼 나귀가 멸망시키니 사람들의 미움을 샀네.
마음과 마음이 마주 맞았고
조사와 조사가 등불을 전한다.
바다와 산악을 평탄케 하고
곤어와 붕새가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한 명성을 견주기 어려우니
대체적인 수단을 옮겨 쓸 줄 아노라.
불타손(佛陀遜)이 송했다.
떠날 때 바른 법을 전해 주려 하니
당장 친소(親踈)가 생겼다.
첫머리의 한 할을 아는 이 없으니
떼를 모아 눈먼 나귀를 뒤쫓는구나.
보녕용(保寧勇)이 송했다.
문을 나서자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하니
가끔 일이란 간곡한 데서 생긴다.
길은 멀고 밤은 기니 불을 켜지 말아라.
모두들 어둠 속의 길을 가려 떠난다.
동림총(東林摠)이 송했다.
간곡한 바른 법을 떠날 때 전하니
한 할의 현묘한 관문 통과하지 못한다.
이로부터 눈먼 나귀 찾을 길 없으니
얼마나 많은 강에서 어부에게 물었던가.
영원청(靈源淸)이 송했다.
임제의 완전한 기틀을 어떻게 지적할꼬.
눈먼 나귀, 뜻 아는 이 만나니 가장 기뻐하도다.
종풍(宗風)을 오래도록 멸하지 않으려면
흐르는 물, 높은 산의 뜻이 더욱 깊도다.
불인청(佛印淸)이 송했다.
삼성의 한 할을
포착하는 이 적도다.
비록 죽은 뱀이기는 하나
놀려서 살릴 줄 안다.
썩은 고기에 모이는 파리는 굳세게 빨아들이고
그물을 벗어난 잉어는 살아서 펄펄 뛴다.
임제의 눈먼 나귀여,
군자라야 여덟 가지에 능하니라. 19)
삽계익(霅溪益)이 송했다.
옥동(玉洞)과 현관(玄關)에 길은 멀어도
복사꽃은 공연히 꽃다운 것 아니니라.
깊이 감춰 사람들 못 보게 하는 뜻은
봄바람에 향기가 누설될까 걱정함이니라.
취암종(翠巖宗)이 송했다.
만 길 봉우리에서 손을 쥘 때에
맑은 노래, 한 곡조를 아는 이가 드물구나.
눈먼 나귀, 우주를 놀라게 하는 것만 보았고
법안을 누구에게 전했는지는 모른다.
숭승공(崇勝珙)이 송했다.
정법안장이 멸했는가, 안 멸했는가.
죽을 적에 대중들에게 알리는 시절일세.
삼성이 나서면서 한 번 할하니
가엾은 나귀가 이로부터 눈이 멀었다.
나귀 눈먼 줄은 몇이나 알까?
눈 오는 밤, 원숭이 울다가 흐느끼네.
돌이켜 생각건대 벙어리가 꿈을 꿀 때에
두 손 벌려 누구에게 말하랴.
불감근(佛鑑勤)이 송했다.
눈먼 나귀가 정법안장을 멸하고
자손을 생산하여 천하에 가득하다.
믿어다오. 끝없는 노을과 파도 속에
분명히 따로 생각할 바 있도다.
운문고(雲門杲)가 송했다.
눈먼 나귀 한 번 뛸 때 대중이 다 놀라니
정법안장을 누구에게 전할 수 있으랴.
3요(要)와 3현(玄)이 모두 다 멸했으니
당당히 손을 털고 겹겹의 성을 나선다.
죽암규(竹庵珪)가 송했다.
늙도록 한 번도 이야기를 않더니
떠날 때엔 고개 돌려 당부하누나.
깊고 깊은 바다 밑이 얕다고 여겨
곧바로 금강제(金剛際)의 바다를 찾아간다.
백운병(白雲昺)이 송했다.
만 가닥 모이는 곳, 위세가 끝없으니
고기와 용, 들고 나며 마음대로 부침(浮沈)한다.
눈먼 나귀, 정법안장을 멸해 버리니
황하(黃河)의 강물이 거꾸로 흐른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했다.
부처도 마귀도 도망할 곳 없게 할을 하니
천지를 움켜쥐어 일시에 울게 한다.
떠날 때에 스스로 우레 만나 죽으니
잔재주로 무엇을 이룬 적 있던가.
개암붕(介庵朋)이 송했다.
손을 잡고 길에 나서 새벽 내내 걸으니
걸음걸이 안 바쁜 줄을 누가 알리요.
날이 새자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서
눈먼 나귀 남겨 두어 재앙이 되게 했네.
남원(南院)이 풍혈(風穴)에게 물었다.
"그대는 임제가 떠날 때에 하던 말을 들었는가?"
풍혈이 말하였다.
"들었습니다."
남원이 다시 말하였다.
"임제가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에 의해 멸해 버릴 줄 누가 알았
으리요?' 했으니, 그가 평생에 사자와 같아서 사람을 보기만 하면 죽이더
니, 죽음에 임하여는 어찌하여 저렇듯 무릎을 꿇고 꼬리를 사릴까?"
풍혈이 말하였다.
"죽을 적에 비밀히 전하매 완전한 주인이 곧 멸하는 것입니다."
남원이 다시 물었다.
"삼성은 또 어째서 말이 없었던가?"
풍혈이 말하였다.
"직접 방에 들어가게 된 진짜 아들은 문 밖에서 오가는 사람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자 남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위수(大潙秀)가 염하였다.
"옛사람이 죽음을 참고 기다렸다가 어째서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에
의해 멸한다' 고 했을까? 임제는 계획을 실행하되 너무 빨랐고, 삼성은 또
너무 서둘렀다. 이 부자(父子)가 너무 무정했기 때문에 마침내 후인들을
실망시켰다. 만일 개울의 흐름이 아니었다면 물은 거의가 딴 산을 통과했
으리라."
향산량(香山良)이 방 안에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말해 보라. 임제가 삼성에게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에 의
해 멸망할 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대답이 없었는
가?"
대신 말하였다.
"임제는 원래 다른 사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 말하였다.
"멸해도 다 멸하지는 않습니다."
설봉료(雪峰了)가 이 이야기에서 "멸망될 줄을 알았으리요?" 라고
한 데까지와, 임제가 송하기를 "급한 흐름 멈추지 않을 때, 어찌하려
느냐? 참된 광채 끝없음을 이야기하노라. 이름도 모습도 없어 사람
들 묻지 않으니, 취모검(吹毛劍)을 쓴 뒤에는 다시 갈아라" 하고, 말을
마치자 앉아서 입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철저히 못을 씹고 무쇠를 씹는 이는 역시 그 노장이라야 되겠도다."
깔깔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정법안장이 저 눈먼 나귀에 의해 멸망한다는 것은 그만두고, 어째서 취
모검을 쓴 뒤엔 다시 갈아야 되는가?"
양구했다가 말하였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
지해청(智海淸)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에서 "멸망될 줄을 알았으리요?"
한 데까지와, 삼성이 임제의 대를 계승했다고 한 것을 들어 말하였다.
"파리(頗梨) 보배 거울의 맑은 광명은 갈아서 이룬 것이 아니요, 염부단
금의 순수하고 깨끗한 것은 제련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계합하고 고금의 도가 같도다. 훤하기가 단청(丹靑)과 같고,
밝기가 해와 같으니, 보았는가? 다시 짤막한 게송 하나를 들어라."
다음과 같이 송했다.
구름과 산이 창창(蒼蒼)하고
넓은 바다가 탕탕(湯湯)하다.
산마루에 파도가 일고
바다에서 먼지가 난다.
삼성은 비단옷을 입고 낮에 고국으로 돌아갔고,
임제는 장사(長沙)를 생각하여
억울하게 소상강에 빠졌도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영취산 봉우리에는 모두가 용상(龍象)이었거늘
유독 연꽃 눈을 깜박여서 음광(飮光)에게 전했네.
뿌리도 꼭지도 왜 이리 깊은가?
천고(千古) 만고(萬古)에 끝없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말하였다.
"여러 선덕들아, 만약 안다면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멸하기도 하고
멸하지 않기도 할 것이요, 모르면 저 눈먼 나귀가 멋대로 헤아린다."
18) 지도(地圖)를 말한다.
19) 군자가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 · 효(孝) · 제(弟) · 충(忠) ·
신(信) 여덟가지를 잘 실천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