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서 몸이 건강하고 힘씀이 넉넉하다면 원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하나 저승길은 멀기만 하고 외로운 넋은 헤맬 수밖에 없다 '어두울 명冥, 길 로路'자로 저승冥 길路은 어둡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둠冥은 어디에서 왔을까 햇빛日의 가림冖에서 온 것이다 하루 여섯六 때時가 어둠이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다 세상은 본디부터 어둠이다 빛이 없어서 어둠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어둠이었다 모태에 착상着床하기 전 본능本能instict에 의존했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칠흑 같은 길을 한걸음에 달려 착상한 곳이 모태였을 뿐 빛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몸이 생길 때부터 어둠이었듯이 죽은 뒤 가는 길도 어둠의 길이다 길이란 말은 길이 들어 길인데 저승길은 길 들어 있지 않다 아무도 간 흔적이 없다 있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본디 어둠이라 알 수가 없다 눈은 빛이 있기에 쓸모가 있을 뿐 처음부터 빛이 없는 곳이라면 눈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어둠의 길인 명로와 달리 상상 밖의 밝은 길이 있는데 무량광 아미타불이 함께 한 길이다 행성行星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항성恒星의 빛이 닿지 않는 별의 반대쪽은 어둠일 뿐이다 무량광불 빛은 지혜智慧의 빛이다 이는 물리적 빛이 아닌 까닭에 장애물을 그대로 투과하며 그 몸 그대로 프리즘이다
망자를 축원하는 축문祝文에 '부답명로不踏冥路 직왕극락세계直往極樂世界 상품상생지대원上品上生之大願' 이라는 기대의 표현이 있다 저승길冥路은 어둠의 길이다 여덟 치咫인 지 한 자尺인 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 어둠의 길이다 라이트가 고장 난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분이다
저승길은 아득하고 멀기만 할까 아득하고 멀다고 하는 것은 거리의 길이가 아니다 이는 시간의 길이다 알고 보면 시간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느낌의 길이이다 옛말에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했다 이승과 저승은 호흡 차이다 호흡이 삶生과 죽음死을 가른다
어둠의 상대 개념이 빛이라면 명로의 상대는 무량광이다 어둠은 빛으로 밝히고 밝음은 장애물로 가리지만 아미타불이 지닌 무량광의 빛은 장애물과는 전혀 무관한 중성자中性子neutron 빛이다 그러므로 저승길을 밟지 않고 극락으로 바로直 가往길 빌祝고 바람願이다
죽음이 어둠이라면 영생永生은 곧 밝음이다 하나 죽음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 때문이다 아무도 없기에 혼자가 아니라 어두워 주위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손을 뻗어 누군가가 만져지더라도 그게 벗인지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저승길은 어둡고 넋은 더없이 외롭다
숨이 멎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심장과 더불어 맥박이 멈추며 몸을 덥히는 혈류도 따라 정지된다 그때부터 몸은 쓸모가 없다 아름다움도 추함도 멋도 없다 몸이 없으니 옷도 필요 없고 이와 입술과 혀가 없으니 말이란 게 쓸모없으며 귀가 없으니 들을 수 없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울까
영화 '신의 한 수'에서는 살았을 때 모습의 연장이지만 실제 죽음이 닥쳐오면 달라진다 살았을 때 몸을 지니더라도 옆이 전혀 보이지 않고 비록 말을 하더라도 같은 나라 망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어둠冥의 길路이고 외로운孤 넋魂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몸은 비록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예 느낌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단말기가 없다고 하여 정보까지 없어진 게 아니듯 다리가 없더라도 저승길을 가고 이와 입과 혀와 위가 없어도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며 배설의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재齋와 제祭를 지내고 시식施食으로 바람願을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