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필리핀은 오는 5월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상·하원, 지자체장 그리고 지방의회 선거로 시끌벅적 합니다. 벌써 선거와 관련한 사건사고가 200여건, 사망자가 40여명이나 발생했다고 지역 언론에서 보도했습니다.
상호비방은 물런이거니와 총기규제가 느슨하다 못해 거의 자유롭다시피 한 이곳 실정에서 정적(政敵)에 대한 테러행위는 어찌 보면 필연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임기 내내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마카파갈 아로요 전 대통령과 실제로 부정부패에 연루된 사실이 발각돼 권좌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무슨 염치인지 지자체장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입니다.
제 상식이 짧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 원로인 전직 대통령이 시장 등에 출마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양식 있는 이곳 지식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부패에 대한 향수’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국민들이 그들을 다시 시장으로 선출한다는 점입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문화 또한 동반성장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통치행위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이들이 아무런 반성 없이 다시 권력을 잡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그들이 지닌 신앙에도, 그리고 다시 이런 이들을 뽑아주는 국민들의 신앙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교인이라 자처했던 전직 대통령들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그 신앙에 걸림이 없이, 그리고 양심에 따라 국정을 운영한다면, 세상은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 우리 앞에 찾아온 봄처럼 화사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