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찌른다.
박 노 해
한평생 땅만 파고 살아오면서
갈수록 적자농사로 빚더미에 눌려도
단하나 희망은 영리한 우리 장남
어떻게든 서울 큰 대학교에 입학시켜 보자고
시큰거리는 허리에도 약 한 재 안 쓰고
골골거리는 애 엄마 병원 한번 못 데려가며
50만원 융자금 얻어다 우시장에 나가
튼실한 종송아지 한마리 골라
이랴 이랴 논둑길로 몰고 오던 날은
종달이도 엉머구리도 내 마음처럼
산들산들 봄바람에 노래 불렀제
아무리 논일 밭일이 바쁘고
한물 간 삭신이 지근거려도
뒷산 농약 안 묻은 꼴을 골라 베어다
읍내에서 사온 사료로 쌋싹 비벼주며
으적으적 먹어대는 누렁이를 볼 때마다
대학뺏지 달은 성남이놈 모습을 그려보며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콧노래가 절로 흘렀제
공부 잘하는 우리 성남이놈
서울 큰 대학교 합격은 따논 당상이라 하니
토실토실 방뎅이에 살이 올라서
큰 눈을 꿈벅이며 움머어 울어대는
우리 희망 누렁이야 많이 먹고 살 많이 찌거라 잉
하루에도 몇번씩 토닥거렸제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이여
2년동안 지성으로 키워 온 우리 소가
복스럽게 살찌워온 우리 희망 누렁이가
본전치기도 안 된다니, 소값이 폭락하여 개값만도 못하다니
지난 세월 썩어 나뒹군 배추 양파 고구마가
악몽으로 어른거려 부드득 이갈리게 몸서리치게 어른거려
동네사람들과 마을 회관으로 모여 들었다.
야무진 꿈으로 융자얻어 스무마리나 길러오던
영농후계자 서군은 끝내 농약 마신 채 자살을 하고
이웃마을 착한 김씨는 야반도주하고 말았다며
뭔가 대책을 세우자고 철수아범이 울부짖고
소값이 폭락한 것은 미국소를 수입해온 놈들 때문이라며
여기 저기서 거치른 목청이 돋아나며
재벌놈들에게 짓밟히고 빚더미에 치이고,
높은 소작료에 저곡가 피땀 말리고
이제 씨팔놈 소발굽에 밟혀죽게 되었다고
이웃마을 최씨도 젊은 조카놈도 너나 없이
핏발선 성토가 쏟아진다.
이젠 더이상 밟혀 살 수 없다고
순박하게 착해빠져 불평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정부대책 속지만 말고 우리농민의
단결된 힘으로 싸워 찾아나서자고
팽팽한 동앗줄로 투지를 모아내어
소값폭락 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
며칠밤을 토론과 싸움준비로 지새우고 나서
마침내 읍내장이 서는 날
비쩍 마른 소들을 앞세우고 경운기에도 태워 싣고
온동네 노인들도 부녀자도 학생들고 어린아이까지
현수막을 치켜들고 머리띠를 동여매고
힘차게 구호를 외쳐가며 서로서로 앞장서서
대열을 지어 읍내로 전진한다.
2년전에 80만원 주고 사오던 날은
희망에 들떠 콧노래 부르며 소르 몰던 내가
42만원으로 폭락한 웬수같은 누렁이를
악다문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끌어
읍사무소를 향하여 휘적휘적 앞장서 치달아간다
이 마을 저 동네에서 몰고 나온
개값이 된 소들이 맥없이 울어대고
소울음보다 더 비통에 찬 분노의 함성으로
'소값폭락 보상하라'
'외국 농축산물 수입 중단하라'
'농가부채 해결하라'
번개처럼 출동하여 앞을 가로막아
최루탄을 터뜨리며 방망이를 내갈기는
소잡고 사람잡는것 저 씨팔새끼들!
할머니가 엎어러지고 김씨가 꼬꾸라지고
우리 성남이 머리통이 깨져나가 피범벅이 되고
일평생 땅만 파며 살아온 우리가
누구하나 악한 짓 한 일 없는 우리가
소값폭락 항의에 나선 이 나라의 농민들이
무참하게 터지며 군화발에 짓밟힌다.
수라장이 된 장터에서
치떨리는 뜨거운 피가 심장을 역류하여
어헉! 미친놈처럼 괴성을 지르며
대장간으로 휘달려가 시퍼런 낫을 들고
분노의 심장에 부들들 갈아세워
큰 눈 꿈벅이는 움머어 우는 누렁이를
우리 잡안의 유일한 희망을
사정없이 찌른다
가차없이 내찌른다
시뻘건 선지피를 콸콸 쏟으며
처참하게 날뛰는 누렁이를 끌어안고
시퍼렇게 미친듯이 함께 날뛰며
소를 찌른다
내 희망을 찌른다
피눈물을 뿌리며 미쳐 찌른다
네놈들을 찌른다
양키소를 수입하여 수백억의 농민의 피땀을
더러운 뱃속에 챙겨먹는 네놈들을,
호텔 연회장에서 부드러운 수입 쇠고기
스테이크를 즐기는 네놈들을
한국 농민의 피땀을 빨아가는
간악한 드라큐라 같은 씨팔놈을,
농민들의 항의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네놈들을
이천만 농민들의 원한서린 낫을 세워
시퍼렇게 미친듯이
찌르고 내찌른다.
희망둥이 누렁이가 우리 누렁이가
움머어- 해맑은 소리 울리며
농지를 농민에게!
땀의 결실을 농민에게!
희망을 가득 싣고 발굽소리 힘차게
황금물결 일렁이는 들판 사이로
너울치며 살아 돌아오는 날까지
소를 찌르고 찌르고
피투성이로 미친듯이 내찌르고
또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