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 시가 있는 시론 5, 25 멱정 여익구 선생 8주기에 참여하고
멱정 여익구 선생 8주기에 참여하고 1년 전에 참여했던 멱정 여익구 후배들이 참여했다. 1985년 5월 4일에 불교계에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기 위하여 민중불교운동연합을 창립하기에 이른다.
실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창립된 시기에 시대적 상황은 민주통일운동연합 이 창립된 1985년 3월 29일 창립을 하였던 시기로부터 불교계에서도 민주통일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민중불교운동본부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민주통일국민회의 참여한 진관이다. 당시 진관의 직책은 감사였다. 감사라는 직책에 부여한 것은 불교계에서도 동참하게 하려는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의장 문익환
부의장 계훈제 김승훈
고문 함석현 김제준 지학순
지도위원 고영근 유운필 이소선 함세웅 문정현 유강하 신현봉 이돈명 송건호 김병걸
중앙위원장 강희남
민주통일위원장 김승균
사무총장 이창복
사무차장 장기표
감사 호인수, 박진판, 정동익
민생위원 이부영
정책기획실장 임채정
대변인 김종철
총무국 간사 홍성엽, 유옥순
사회국 간사 정선순
사회국 간사 정선순
간사 박계동, 김부겸
제 1시기
1985년 3월 민통련 창립부터 개헌투쟁이 본격화되는 9월 전후 시기1985년 5월 10일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발송하여 항구적인 분단 고착화를 의도한 남북교차승인을 반대하고,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하는 미국이 민주정부수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통일논의와 한반도 평화,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촉구하였다.
1985년 7월 4일 7·4 남북 공동 성명 13주년을 맞아 민족통일 논의에 대한 입장 발표,1985년 9월 20일 민청련, 한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노동선교협의회, 민중불교운동연합,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 부산민주화운동협의회, 충남민주화운동협의회,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서울노동운동연합 등 합류
1985년 9월 20일에 민중불교운동연합이 참여하였다. 85년 초 에는 구체적인 인선작업에 들어가 85년 5월 4일 오후 2시 서울의 광화문에 있는 한글회관에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창립한다 .
민불련은 창립 때부터 수난을 겪었다. 한글회관이 경찰에 의해 봉쇄되고 이를 뚫고 대회를 강행하려는 민불련 회원들과 경찰은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의 봉쇄를 피해 광화문 교보빌딩 뒤 음식점 ‘포석정’으로 자리를 옮겨 비상상태로 창립대회를 갖기로 하 고. 고은, 계훈제, 문익환 목사 등과 여익구, 최연 등 청년불자와 성연 • 현기 • 진관 스님 등 약 150명이 약식 대회를 치렀다. 창립선언문이 낭독되고 만세삼창 순서로 이어질때 경찰이 음식점의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제 2 시기[편집]
개헌투쟁이 본격화되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 냄1985년 11월 20일 민주헌법쟁취위원회 결성하여 5공화국 헌법을 거부하고, 군사독재를 비호하는 외세와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고 이 땅의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할 민주헌법을 쟁취할 것을 결의
1986년 3월 17일 김대중, 김영삼, 이민우, 문익환 등과 함께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라는 반독재 저항 연대조직 결성하고, 군사독재 퇴진과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1986년 3월 31일 정기총회 개최. 의장에 문익환, 부의장에 계훈제, 김승훈, 백기완, 성건호, 이소선, 이창복 선출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 개헌추진 결성대회 개최 (1980년 이후 최대의 가두투쟁,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반외세 투쟁으로 평가) 문익환, 이창복, 장기표, 장영달, 오대영 등 민통련 핵심간부들이 국가보안법, 소요죄, 집시법 등으로 구속되고, 민통련 사무실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장기표가 작성한 민주통일 민중운동론 발각
1986년 5월 20일 문익환은 서울대학교 5월제에서 연설하던 중 이동수 학생의 분신 투신으로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됨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 발표로,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결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국본은 610 투쟁을 선
제 3 시기[편집]
대선투쟁이 마무리되는 1988년 2월까지[1]
1987년 7월 8일 문익환 의장 형집행 정지로 출옥
1987년 10월 3일 민통련과 국본은 연세대에서 개천절 기념행사 및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시국 대강연회 개최
1987년 10월 16일 국본주최 시국토론회 개최, 남북한 올림픽 단일팀
1987년 10월 10일 김영삼의 대통령 후보 공식 출마 선언으로, 민통련 중앙위원회는 10월 12일 야권의 범국민 단일후보로 김대중 추천
1987년 12월 16일 선거결과 민주화 진영이 출신지역 중심으로 분열되어 노태우 후보 승리
1980년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 ·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19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2000년대
6·15 남북 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 ·
한국진보연대(진보연대)
연대 단체
노동자연대(다함께) ·
동아․조선 자유언론실천투쟁위원회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
해직교수협의회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
통일민주당 ·
전국빈민연합(전빈련) ·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
참여연대 ·
민주노동당 ·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2020년 6월 6일
진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