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 1967
내가 뉴포트뉴스에 근무 할 때의 일이다. 훈병 딱지는 뗀 상태이므로, 수송학교 다닐때는 BAQ(BBQ가 아님-부대밖 체류비용)을 받아 부대에서 차로 약 10분 떨어진 곳에서 하숙을 한적이 있다. 그때 하숙집 주인아저씨는 Mr. Meade이고 부인은 당연히 Mrs. Meade 이었는데 Mrs. Meade는 한국아줌마 이었다. 그리고 그 집엔 7살, 11살 그리고 14살 정도의 딸들이 있었고….
겨울에 눈이 그렇게 기록적으론 오지 않던 곳이었는데, 웬지 하느님이 내게 시련을 주시려고 작정을 했던 것인지, 하루는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얼마나 내리고 있었는지 앞이 안보이는 것이었다. 그날 따라 난 훈련속도를 높이기 위해 그 다음날의 과제까지 앞당겨 하고 있는데….부대의 선임하사가 각 훈련장을 돌며 눈이 많이 오고 있으니 기본 훈련을 끝마친 사람은 일찍 가도 좋다고 훈령을 내릴 때, 잠깐 난 스스로 물었다. 적어도 난 4계절이 있는 한국 출신이 아니냐? 그까짓 눈이 내리면 내렸지 얼마나 온다구? 하며 무시하고 앞당긴 과제를 끝냈다.
젠장, 벌써 쌓여가는 눈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무릎 정도 쌓인 눈에서 부대를 나온 나는 걸어서 한 30분 정도 걸리던 길이 한 시간 이면 될 줄 알았다. ‘이런 병신’, 내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까? 겨우 20살 먹은 넘이 말이다…. 참으로 가면 갈수록 거세지는 눈발에 나는 거의 길을 잃고 방향을 잃을 정도 이었다. 거의 수영을 하는 자세로 새벽 1시 정도까지 헤매던 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Mr. Meade는 발견 했다.
얼마나 반가운지? 만약 거기에서 Mr. Meade 의 차를 타지 못했다면 나의 하숙집 귀가시간은 새벽 3~4시가 될 뻔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새벽 시간 다시 부대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난 고민했다. 지금 다시 출발해야 6시에 아침을 먹고 7시 점호시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잠시 후 Mrs. Meade가 내게 와서 하시는 말씀, Mr. Sung, go to your room and take a short sleep. You look so tired. I’ll ask my husband to give you a ride to compound in the morning. So, don’t you worry so much, ok?
아! 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이렇게 친절함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적어도 그 때 까진, 정말 다시 보고 싶은 Mr. and Mrs. Meade씨 가족. 지금은 그 딸래미 들도 결혼하고 가족을 일구었겠지?
몇 일 후, 그렇게 많이 내린 눈이 모두 녹아 없어져 버린 어느 청명한 날, 그날 난 과제를 너무 앞 당겨 해버린 탓에 할 일이 없어져, 일찍 귀가길을 서둘러 하숙집에 왔다. 그리고 집앞 보이는 정경…. Mr. Meade 가 집 앞 드라이브웨이에서 오래된 캐딜락을 고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Mr. Meade 는 차밑에서 나와 내게 도와 달라고 한다. 지금 거의 다 수리를 끝냈는데, 이 놈의 트랜스밋션이 엔진과 맞질 않네…하며,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될 것 같아 한다. Mr. Meade 가 시키는데로 난 캐딜락 밑으로 기어 들어가 트랜스밋션과 엔진의 접합조립을 도왔다. 움매~, Mr. Meade는 잠깐 들어올린 트랜스밋션을 내려가지 않도록 잡고만 있으라는데도, 거의 죽음 수준의 무게가 단 몇 분만에 나를 체력의 한계로…몰고 간다, 쩝! Mr. Meade 왈, 다른 차들은 이놈의 dowel이 3개 인데, 이놈의 캐딜락은 dowel이 4개라 맞추기가 참 어렵네…한다.
그리고 수리 완성, 참으로 거대한 차이다. 1967년형 캐딜락 세단드빌(4도어). 시동을 걸어보고 수리된 부분의 성능을 확인한 Mr. Meade 는 그 거대한 캐딜락의 열쇠를 내민다. 그래서 의아해진 나~
“Hey~, this stuff is for you!, 내 아내가 눈이 올 때마다 나를 잠 못 자게 괴롭힐 것 같아 너를 위해 준비 했으니, 여기 있는 동안에 타고 다니게! 그러며 슬쩍 윙크를 한다.
난 미국엘 갈 때, 미국사람의 성격이 대체로 개인주의가 꽉 찬 사람 들이란 소릴 수없이 들었고, 이민 가자마자 뉴욕에선 그것을 느낄만한 시간도 없었고, 하여 미국사람들에 대해선 일반적인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건(?)은 나의 모든 생각을 바꿔 놓았다. 인간적인 매력이 충만한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차가 생긴 나는 그때부터 바빠지기 시작 했다. 공사가 다망해진 나는 부대일이 끝나면 주변을 돌아 다니기 시작 했다. 시골 같은 뉴포트뉴스 바로 아래 남쪽에 붙어있는 사우스햄프튼의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술집을 기웃거리기 시작 한다.
사우스햄프튼의 끄트머리에는 전에 이야기 한 해군조선소가 있는데, 그곳은 워낙 큰 조선소이라 지나가며 물위에 뜬 채로 건조 중인 케네디와 아이젠하워 항공모함이 부두 옆에 나란히 있고 조선소의 입구가 약 40여 개란 이야기만 들었다. 하루는 초저녁, 술을 마시고 술집 앞에서 술집접대부와 놀고 있는데 땅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땅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라 표현 할길 없는 저주파 진동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새파랗게 질리는 나의 얼굴을 보며 그 접대부는 비웃는 웃음을 흘린다. What’s matter with you, stupid! You looks like a cow before the butcher’s knife - 소잡이 칼 앞에 선 소, Is your pants are clean? – 똥 안쌌어? 이런 ㅆㅂ년!
그리고 점점 가까워 오는 저음과 진동, 와~!! Holy Shit~!!! That’s damn bike gang convoy~!!!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조선소가 끝나고 퇴근하는 일단의 할리데이빗슨 무리이었다. 한대, 두대, 에이 안돼겠다. 대강 한 10대씩 세어야지! 거의 150여대의 할리데이빗슨이 지나가는 동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할수 없었다. 퍼레이드를 펼치듯 지나가는 할리데이빗슨 무리의 장관은 약 20여분 걸려서 끝난다. 갓뎀~잇! 나도 저런 것 하나 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