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 모은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은 ’매드맥스‘, ’리쎌웨폰‘, ’브레이브 하트‘ 등을 주연한 멜 깁슨의 감독, 제작, 시나리오의 1인 3역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로마군인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처형당하기까지의 12시간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20대에 찾아온 성공으로 마약과 술, 도박에 빠져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멜 깁슨은 천주교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고, 12년 전부터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제작 때부터 예수의 피 값을 자신들과 후손에게 돌리라는 성경의 증언(마27:25)과 잔혹한 고문으로 피에 굶주린 자처럼 묘사되고 있는 유대인들 때문에 유대인 단체와 마찰이 있었다. 결국 마27:25의 장면은 삭제된 채 영화는 개봉될 수 있었다. 채찍에 살이 뜯겨 나가는 장면 등 고문과 폭력장면을 여과없이 표현한 영화의 잔인성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개봉 당시 영화관람 도중 심장마비로 관객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으며 R등급 영화로 책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 이상으로 개봉되었다.
미국에서는 기독교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호응을 얻었고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홍보를 위한 인터넷 서포터즈들이 생기고 C.C.C.는 대학생 전도용 영화로 주목하고 있고 각 교회와 기독단체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당시 사용되던 아람어와 라틴어를 모든 배우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예수 역을 맡은 짐 카비젤 역시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촬영당시 예수와 나이가 같은 33세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찍는 도중 벼락을 맞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영화촬영 내내 신체적으로도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이 영화에 사재 2500만 달러를 투자한 멜 깁슨은 라틴어 미사만을 고집할 정도로 보수적인 카톨릭 신자이다. 당연히 성경을 복음보다는 천주교 교리에 맞추어 해석하고 천주교의 신앙색깔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카톨릭 묵상의 소재인 십자가에 이르는 12단계를 바탕으로 십자가 여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마리아 숭배사상은 영화의 전편에 흐른다. 예수께서 로마군인들에 잡혀 힘없이 고문을 당할 때 마리아는 그에게“ 내 아들아..” “내가 여기있다”라고 말을 한다. 십자가 고난 중에도 예수에게 “내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마리아는 사실상 이 영화의 영적인 주인공이다. 로마의 병정이 마리아의 알 수 없는 카리스마로 인해 넋 놓고 그녀를 쳐다보는 것이나 그녀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장면이 곳곳에 보여진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양편에 사단과 마리아 두 인물이 쫒아가는 상황을 만듦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보다는 사단과 마리아와의 대결구도로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자상의 모습과 흡사하게 사단이 흉측한 아기를 안은 모습으로 고문당하는 예수에게 나타나 비웃는 장면은 통해 천주교 교리에서 보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사단을 역할을 여배우가 맡고 있는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영화는 사단을 단순한 인격적 존재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영화 내용에서 예수를 죽이기 위해 사단은 로마의 군인조직과 제사장 교권조직, 그리고 헤롯, 빌라도를 통한 정치조직을 이용하고 있음을 본다. 이 조직은 사실상 지금도 정사와 권세를 가지고 공중권세를 잡고서 강력한 세상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 사단은 복음에 반대되는 일에 어느 때든지 이 조직을 이용할 수 있는 영적 실체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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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십자가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영육간에 무기력한 예수를 보여준다. 2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의 대부분이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수난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무덤 속 부활장면은 몇 십 초로 영화는 끝난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고난, 고통에 초점을 두고 복음의 평안함, 구원의 완전성, 승리의 부활보다는 예수가 얼마나 고난을 당했나를 공포와 두려움속에서 지켜보게 하고 있다.
복음으로 보지 못하는 성경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 사단의 실체에 대한 영적 무지로 나타난다. 결국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요19:30)와 해방된 하나님 자녀로서의 신분과 권세를 희석시키고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죄의식 두려움 미안함을 떨칠 수 없는 양심적인(?) 종교인을 생산한다. 아울러 복음을 이해 못한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배가시키고 전 인류를 분열과 갈등구도 속으로 유도한다.
인간 창조 이전에 존재하였던 흑암과 공허, 혼돈은 결국 인간을 하나님 형상을 상실하게 하고 인간회복의 언약(창3:15)조차 이해 못하도록 했다(창4:4-5). 언약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상관없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의 영적문제 근본문제인 죄와 저주, 사단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내셨다.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성삼위의 이름을 세례주시며 이 세상 끝날까지(마24:14) 그의 언약을 성취해가고 계시다. 현재적으로 성취되는 복음을 기준으로 볼 수 없는 성경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15:45-50)
/21세기 민족 · 세계 문제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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