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워필드 [신약 성도들과 똑같이 구약 성도들 마음속에 영원히 내주하신 “같은 믿음의 영”]
사계四季 (2015.07.05.12:37)
제22장
믿음의 영
성경 본문: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했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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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도가 그 구약의 영웅들 귀한 믿음이 성령의 역사로 주신 것으로 본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는 ‘자신이 구약 영웅들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서 더 깊이 바라봅니다. 그들과 교제하는 가운데서 얻는 즐거움의 근거는 바로 그가 그들과 “같은 믿음의 영”ㅡ역자 주: {한글 개역 성경}은 여기의 “영”을 ‘성령’이 아니라 사람의 ‘영’으로 이해해 “같은 믿음의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ㅡ을 가졌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본질적으로 신약 시대의 소유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해 있어서 ‘구약 성도들은 마치 자기들에게 본래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됐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암암리에 생각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음의 영웅들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들이 하나님의 영께서 베푸시는 은혜로운 역사와는 전연 상관없이 그러한 경건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믿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과연 신약 시대에만 사람들이 죄 가운데 죽어 있으며 또한 복음이 완성된 새 언약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영적 죽음의 상태에서 일어나기 위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이러한 사고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를 놓고서는 신약 시대 성령의 역사보다 언급이 적습니다. 그런데 언급이 적다는 것과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경건을 실천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성도들의 거룩한 욕망과 선한 모든 성취들이 전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줄 만큼 충분한 언급이 구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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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도 역시 구약 시대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하심을 인정하는 신약의 수많은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구약 성도들 믿음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신 산물이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약 성도들이 누린 그것을 자신이 똑같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구약 성도들 속에서 역사하셔서 믿음을 갖게 하신 그 동일하신 성령께서 자기에게도 역사하셔서 믿음을 갖게 하신다.’는 사실에 아주 만족하고 있으며 또한 그 일에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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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믿음의 영을 가졌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에게 역사하신 그 동일한 믿음의 영을 자신도 함께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믿음이 완전히 성령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는 그 믿음을 생각하면서 그 근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성령이 없이는 믿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에게서 믿음이란 자기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완전히 오직 하나님 영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선물을 떠나서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의 이러한 생각에 미치지 못해 ‘우리가 먼저 믿어야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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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자민 워필드 {워필드 명설교} 원광연 역 (고양: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2002년 개정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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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8절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은 무시한 채 창세기 6장 3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됐기 때문이며 그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될 것이다.” 하셨다.≫는 말씀만을 내세워 “노아 시대 때부터 성령의 임재 방식은 in에서 upon으로 바뀌었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다시 in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세대주의 신학 영향을 받은 주장임을 2013년 여름에 {개혁주의 마을}에서 라마드 목사님께서 밝히셨습니다. 그때 라마드 목사님께서는 {한글 개역 성경} 고린도후서 4장 13절 오역을 두고 말씀하시며 이 구절 성경 원어 풀이를 전화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워필드 명설교}, 이 책은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돼 산 게 한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자마자 처음으로 읽은 곳이 [제22장: 믿음의 영]이었습니다. 전화로 말씀해 주신 라마드 목사님 가르침을 떠올리게 만들며 성경 원어 실력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 강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