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루마니아 역사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는 유일한 라틴계 민족으로 로마인의 후손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근대까지 특별한 나라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하다가 1859년 몰다비아와 왈라키아 두 공국 사이에 공동 군주를 선출하므로 루마니아가 탄생되었습니다.1866년 독일계의 카롤 1세가 루마니아공에 추대되어 초대 왕이 되었는데 그 때가 가장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2차 대전 후 발칸반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소련에 의한 공산화가 되어 1947년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이 탄생되었습니다. 1965년 차우세스쿠(Ceausescu)가 집권을 하면서 처음엔 인민을 위한 정책을 펼쳤고 소련의 노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서방 나라들은 차우세스쿠를 적극 지지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독재 정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발칸반도 국가들은 소련의 가스와 물자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루마니아는 자체 유전과 가스가 풍부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차우세스쿠는 73년 북한을 방문하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습니다.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에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와 루마니아식 주체사상을 심고자 합니다. 거주지를 아파트 식으로 바꾸어 통제를 원활하게 하였고 2000만 인구에 300만개 이상의 감시망을 통해 가정에서 조차 비판의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철권통치를 감행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자신의 궁전 건설이었는데 그 면적이 세계에서 미국 펜타곤 다음이었습니다. 84년부터 89년까지 5년 동안 24시간 가동으로 지었습니다.(진작 자신은 완성을 못보고 죽음) 그런데 이것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궁을 보고 은혜를 받아 지은 것이라 하니 김일성의 악영향은 멀리 이곳까지 미쳤습니다.
89년 동유럽 전역이 공산당 일당독재 집권을 포기했지만 차우세스쿠는 끝까지 자신의 정책을 고수합니다. 그해 12월 22일 그의 연설에 모인 시민들의 야유가 터지더니 드디어 군중들이 시위대로 변합니다. 이에 군대를 동원 발포 명령을 하지만 군대의 탱크는 방향을 시민에게서 차우세우쿠로 돌립니다. 차우세스쿠에겐 강력한 친위대가 있었기 때문에 군부와 친위대가 총격전으로 천여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급작스런 상황에 차우세스쿠는 헬기를 타고 도망치려 했으나 헬기 조종사가 대공포로 위험하다고 거짓말하여 다시 내렸고 지나가던 택시를 타고 도망하였으나 택시 기사는 차우세스쿠인줄 알고 농가에 집에 내려 주었고 농가 주인이 고발하여 차우세스쿠 부부는 혁명 정부에 잡히게 됩니다. 혁명정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데 변호를 맡았던 자가 오히려 검사로 돌변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은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가 변호를 하여도 사형을 막을 수 없고 죽어 마땅한 자라 고발하게 됩니다. 12월 25일 성탄절. 루마니아도 정교회가 국교기 때문에 성탄절에는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친위대가 아직 존재하고 더 많은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형을 집행하고 그 상황을 전 세계에 전송합니다. 이는 차우세스쿠의 죽음을 공표함으로 친위대의 반란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차우세스쿠 총살에 나선자가 무려 100여명이 넘었고 8명으로 선별하였다가 다시 3명이 집행하였는데 그들이 차우세스쿠와 그의 부인에게 쏜 총알 수 가 무려 각각 90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컷는가를 알 수 있고 또 다시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를 보게 됩니다. 한편 북한 김정은의 미래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북한에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6. 축복받은 땅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평야, 산, 강, 바다, 유전 등 없는 것이 없는 땅입니다. 로마에서 부쿠레스트까지 비행 중 무려 한 시간 내내 내려다보이는 아래는 온통 평야뿐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마치 수천개의 거대한 축구장이 널려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쪽으로 가니 가르파티아 산맥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쿠레스트 도시 곁에 아름다운 호수들이 널려 있고 큰 유전지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땅 밑에는 유전뿐만 아니라 1년 내내 물이 가득차있어 건기에도 농사 짓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90년대를 방불하고 있으며 국민소득도 10000불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카를 1세 왕 여름 궁전(루마니아 국보 1호)
양도 많지만 소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소가 이렇게 귀엽게 생겼습니다.
산도 있고 (가르파티아 산맥)
호수도 많고
차우세스쿠 궁전 측면
혁명 광장
차우세스쿠가 마지막으로 이곳 건물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탈출 시도함
탱크를 시민에게서 차우세수쿠로 돌린 군부
친위대와 총격으로 건물엔 수많은 총탄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중앙 공원
7. 후기
저는 루마니아를 떠나오며 요한복음 4:35절 말씀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마치셨을 때 먹을 것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음식을 드립니다. 몹시 시장하셨던 예수님이 맛있게 드실 줄 알았는데 음식은 거들떠 보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반문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저는 이 말씀이 바로 주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넉 달은 추수할 상황을 가르킵니다. 봄에 내가 심은 것은 넉 달이 되어야 추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추수할 때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이 추수할 때라 말씀하십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믿음의 눈을 들어 밭을 보면 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36절에 보면 이는 내가 뿌린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뿌려놓은 것이란 것입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다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어 보내셨으니 다른 사람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다 하십니다.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게 함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루마니아 아가페 교회를 보며 같은 라틴계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교회에 한사람이 없을까 반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같은 유럽 선교라 해도 밭이 다름을 강조하였습니다. 독일은 루터 종교개혁이후 50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국민의 반 이상이 복음교회에 접해본 사람들에 비해 이태리는 가톨릭이 지금까지 거대한 산처럼 지켜왔고 복음교인 수가 전체 국민에 0.1%에 불과하다는 상황을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유럽 선교는 선교사들이 무시당하는 선진국 선교에 비해 동유럽 선교는 선교사들에게 몰려오는 후진국 선교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넉 달이 지나야” 라는 핑계에 불과하였습니다. 상황을 바라보기보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였습니다. 내가 뿌린 것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남이 뿌려놓은 것을 거두는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더 나가 우리는 나중 우리 후손들이 거둘 수 있도록 뿌려 놓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닭았습니다.
루마니아는 범브란트 같은 목사를 배출한 나라입니다. 공산 정권의 박해 속해 목숨을 내 놓으며 믿음을 지켜온 땅이기도 합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씨를 뿌려놓은 땅입니다.
로마도 초대 교회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뿌렸습니다. 현재 상황은 추수할 때가 아니지만 믿음의 눈을 들면 믿음의 선진들이 뿌려 놓은 곡식들이 희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저는 김 다윗 선교사님을 보며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제가 볼 때 김 다윗 선교사님은 열정이 탁월한 분은 아닌 듯 합니다. 오히려 몹시 내성적이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루마니아 역사를 잘 드러내지 않아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에 대한 순수하고 잔잔한 마음이 있습니다. 진실된 마음이 있습니다. 단지 이것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께서 받으신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열정보다 진심의 믿음을 더 기뻐 받으신 듯 합니다.
떠나는 날 아침 일찍 화장실에 왔다가 김 다윗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새벽 기도를 감당하기 위해 나온 듯 하였습니다. 저는 몹시 피곤하여 다시 침실로 돌아가 잠들었는데 멀리서 기도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도 홀로 기도하는 듯 하였습니다. 아마도 1시간 넘게 기도하신 듯 하였습니다.
루마니아 역사가 김 다윗 선교사님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면 저는 크게 감동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주님 앞에 진실된 믿음과 기도의 열매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시금 주님께 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25년 선교 역사에 남은 것이 없다 해도 우리의 후손을 위해 계속하여 씨 뿌리기를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끝으로 시내 관광을 안내해 주신 루마니아에 유일한 동역 선교사인 신 이삭 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금방 친숙해 질 수 있었던 분이셨습니다. 저녁을 대접해 주신 그의 아내 신 리디아 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웃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너무나 해맑으셨습니다. 우남식 목사님과 저를 1박 2일로 여행을 섬겨주신 레베카 선교사님께 진심으로 큰 감사 올립니다. 선교사님으로 인해 너무나 즐겁고 기억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015년 6월 15일 로마에서 권 여호수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