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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설은 카톨릭이 만들어 내었는가?
죄와 죄들, 원죄와 자범죄, 사망과 죄들, 죄의 몸, 사망의 몸에 관한 가르침은 성경에서 충분히 분별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은 끊임없는 논쟁으로 이어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교훈들은 성경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은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다른 책들이나 전승이나, 학설이론에서 가져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원죄 개념이 어거스틴에게서 나왔다고 뒤집어 씌우는 듯한 글들을 보기 때문에 간단히 적습니다.
원죄 개념이 어거스틴에게서 나왔다거나, 그것이 유아세례를 옹호하기 위해서 나왔다는 주장은 카톨릭의 주장에 말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아세례 반대하는 사람인 저도 그 개념을 성경만에서 충분히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이전에 죄와 원죄 문제들을 다룬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들면 리옹감독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이 그렇습니다. 이레니우스 또한 성직자제도의 교리에 많이 물들은 사람이지만 터툴리안의 경우는 그렇게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들뿐이기 때문이지만, 그외에 어떤 문헌적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더 있었더라면 그들중에는 무수히 성경적 분별을 기록했을 것이며 그들은 성경에서 죄와 죄들이 구분되고 사망이 사람들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는 진리를 믿은 사람들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단지 오늘날 그 이전의 사람들의 사상들을 담은 기록들이 무수히 카톨릭들에 의해서 혹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 증거들을 제시할 수 없을 뿐입니다.
우리는 유아세례 뿐만 아니라, 예정론, 연옥설 등을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죄와 죄들이든지, 죄의 다음 세대 전이, 그것이 유전이라고 불리우든 원죄의 이전이라 불리우든, 그것을 인정한다 하여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예정론과 유아세례를 주장한다고 뒤집어 씌우는 것은 카톨릭이 써먹던 수법입니다.
실제로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터툴리안은 영혼이란 육체와 함께 형성되어 영혼의 죄악됨은 육체를 통해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는 트라두씨안이즘 (http://en.wikipedia.org/wiki/Traducian)에서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여 세대 전이됨을 믿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Tertullian
터툴리안은 카톨릭의 어거스틴보다 200년 앞선 사람이며 카톨릭의 형성기를 콘스탄틴 공인시기인 313년 이전, 배도자 코르넬리우스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하던 251년경 노바티안이 나간 시점으로 보면, 그보다도 터툴리안은 카톨릭 이전의 사람으로서 그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터툴리안만 그런 주장을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마도 고대 그리스도인들 중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문제를 다루었을 것이며, 수많은 반기독교 비방들에 대항하여 진리를 세우며 가르쳤을 것입니다.
터툴리안이 반기독교인들이 흔히 비방했던, 성만찬에서 어린이를 죽여 피를 마신다는 주장, 기독교인들은 근친상간을 일삼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박하였고, 황제숭배를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 기록이 있습니다. 또 그는 순교자의 피가 천국의 씨앗이라며 고문과 살육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터툴리안은 어거스틴이 주장한 원죄라든가, 용어들을 달리했지만 죄가 세대에서 세대로 전이되는 것을 육체를 통한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원죄개념이 카톨릭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카톨릭이 자랑하는 그 자랑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며, 카톨릭 교리를 들여오는 것입니다. 원죄 개념이든 죄와 죄들의 구분 개념이든, 사망의 개념이든 죄가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 것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터툴리안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경건주의 신앙을 가졌으며 그들을 몬타누스파로 불리웠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기록이 어거스틴의 입장만을 기록한 것들이 남아있고, 펠라기우스가 직접 주장한 기록들은 남겨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카톨릭이 이단으로 정죄한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도인들의 주장들에게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 펠라기우스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는 어거스틴이나 제롬의 문헌들을 통해서 그가 무엇을 주장했을까를 상상해보며 행간의 의미들을 유추하기도 하고 상상해보는 방법만이 남아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펠라기우스는 자유의지를 강조한 반면, 어거스틴은 예정론을 주장하였고 은혜와 성례를 통한 구원을 주장하며, 유아세례를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펠라기우스는 자유의지와 금욕주의를 가르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펠라기우스는 주장하지도 않은 것을 뒤집어 쓰고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펠라기우스는 억울한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보이며 그는 실제 경건한 삶을 살은 것으로 분별되며 오히려 어거스틴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인 다운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지에 관해서는 너무 치우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예정론은 수많은 모순에 부딪히거니와 성경과 일반적으로 모순되는 반면, 겨우 몇몇 구절에서 근거의 일부를 찾아볼 수 있고 자유의지가 대부분의 구절들에서는 요구되고 있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알미니우스가 ( Jacobus Arminius- Jakob Harmenszoon)예지론을 주장한 것은 자유의지론보다 훨씬 정교한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한편,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 책임을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 결과 각자는 자기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택할지를 미리 아셨을 뿐입니다.
예지론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결코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역사하심에 순종하여 인간이 살아갈 때에는 신인협력 (神人協力) 관계를 이룰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예지론에 바탕을 둔 신인협력설은 가장 성경적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알미니우스와 알미니안들은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에 비하여 훨씬 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았다고 판단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알미니안들을 엄청나게 박해하고, 살육한 적도 있습니다. John van Oldenbarnvelt가 참수되었고, 200명의 알미니안 목회자들이 출교된 것,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추방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칼빈주의자들이 자행한 일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칼빈주의자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알미니안주의자들도 인간은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인간은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원죄개념을 부정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1610년 1월 알미니안 구다 협의회 결의사항 5개항중 셋째 항이었습니다.
다음은 데이브 헌트의 What Love is this? 에 요약된 알미니안주의입니다.
1. God from eternity past determined to save all who believe in Jesus and to leave the incorrigible and unbelieving in sin and under wrath.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모든 사람들로 예수를 믿도록 결정하셨으며 완강히 교정불가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죄가운데와 진노하심가운데 남겨두도록 결정하셨다.
2. Christ died for and obtained redemption and forgiveness for all, but these benefits are effective only for those who believe in Christ.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과 죄사함을 얻도록 죽으셨으며 이러한 혜택(은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만 유효하다.
3. Man cannot think, will or do anything that is truly good, and that includes the saving faith, but must be regenerated.
사람은 진정으로 선한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의도하거나 행할 수 없으며 그것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포함하는데 그러므로 거듭나야 한다.
4. God’s grace is absolutely essential for salvation, but that it may be resisted.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으로 구원에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저항될 수 있다.(거부될 수 있다)
5. Those truly saved through the faith in Christ are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to resist sin, but whether they could fall away from the faith must be particularly
determined out of the Holy Scripture, before we ourselves can teach it with full persuasion of our minds.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성령에 의해서 죄에 저항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 여부는, 우리가 그것을 우리 마음들을 충분한 설득력으로 가르칠 수 있기 전에, 성경으로부터 꼼꼼히 특정적으로 판정되어야 한다.
다음은 위키에서 말하는 알미니안주의의 5요점과 여러 요소들입니다.
Classical Arminianism (sometimes titled Reformed Arminianism or Reformation Arminianism) is the theological system that was presented by Jacobus Arminius and maintained by some of the Remonstrants;[11] its influence serves as the foundation for all Arminian systems. A list of beliefs is given below:
http://en.wikipedia.org/wiki/Arminianism
저는 이런 사정들을 알고 있으며 일부 칼빈주의자들이나 카톨릭의 어거스틴 추종자들이 원죄 개념을 주장하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도 주장하였으며, 지옥의 존재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한 예수님의 신성이나, 지옥과 천국 주장은 카톨릭의 주장들로서 잘못된 것일까요? 그들이 그 진리를 개발해냈습니까? 그들이 존재하기도 전에 그 진리는 있었습니다!그 진리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경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할 때 인류 모두는 그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히 7장10절) 우리는 그때에 모두 범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와 죄들, 혹은 원죄와 자범죄의 개념은 카톨릭이 개발해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던 바이며 터툴리안 이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믿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성직자제도의 강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지만 그는 폴리캅의 제자였으며,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하나만으로 중요한 가르침 모두를 파악할 수 있으며 성경이 말하지 않는 바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의로 교육하기에 필요한 모든 말씀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당연히 죄문제와 그 해법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글들에서는 이 진리가 어디에서 왔다는 것을 성경밖에서 제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주장 또한 비성경적인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기 때문이며 끝없는 허공을 치는 논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장
2 그가 무지한 자들과 미혹되어진 자들에게 동정적일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도 연약함에 둘러싸여 있음이라.
예수님이 연약에 둘러싸여 있다 하여 그것이 예수님도 죄있는 육체를 가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몸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예수님도 인간들처럼 무지하고 미혹을 받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식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2010 1. 11 하토브
첫댓글 죄와 죄들``은, 성경에 있는 용어이고 개념입니다....그러나, 원죄``라는 것은 성경에 없는 용어이자, 잘못된 개념이지요....
저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문제는 바로 죄가 세대를 넘어 전이되는 한 그것이 원죄라는 것입니다.
죄가 세대를 넘어 전이되는 것이 아니고...죄가 아담이후 모든 세대..인간의 육신안에서 왕노릇, 남편노릇을 하는 것이지요...왕노릇하는 죄`라는 실체가 따로있고, 아담의 최초범죄행위--원죄``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죄들에 관해서는 서로 이견들이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단수의 죄를 설명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질문하기에 앞서서, 지난 글들의 대화중, 질문받으신것을 먼저 답변하시는 것이, 대화의 순서입니다..답변부터 해주시지요..
하토브님~~ 이전 질문을 다시한번 옮겨옵니다..
하토브님은, 아담의 최초육신처럼..죄(단수)는 없지만 연약한 몸을,, 예수님께서 입으셨다고 생각하시는 데...
하토브님~~~아담의 최초육신=예수님의 육신이 어떤 면에서 연약합니까?? 무엇이 연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이전 질문도 다시 올림니다...
하토브님~적당히 얼버무리지 마십시요~~...단수로서의 실체--죄`는 죄고, 아담이 최초로 지은 원죄``는 원죄입니다...죄들은 죄들이구요...죄`가 바로 원죄`라니요??@@@ 이 무슨 말씀인지요???
하토브님~~아담의 최초범죄행위(원죄)를, 발생시킨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답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미 여러차례 설명을 했거니와, 다시 위의 마지막 글 밑에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