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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블랙박스를 찾아서
 
 
 
카페 게시글
삼국사(고구려) 덕흥리고분(유주자사 진)의 피장자는 누구?
정성일 추천 0 조회 284 10.10.24 17:07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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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10.24 21:33

    첫댓글 전실서벽에 그려져 있는 13명의 태수이외에 두 사람이 무릅을 꿇고 있는데 이 사람이 통사리(通事吏)라는 벼슬을 하는데 해석해 보면 통역을 하는 벼슬아치로 생각된다.
    13명의 태수와 피장자가 대화를 함에 통역관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이 무덤은 기유년인 409년 2월 2일에 통로를 막았으니 모두 그 이전의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내조를 온 13군의 태수 또는 관리가 유주에 속해 있고 주의 치소가 광계 지금은 계薊이며, 연국(후연)의 치소라고 하였다.

  • 작성자 10.10.24 21:53

    그렇다면 전연 혹은 후연이 드나들던 나라는 어디일까?
    드나드는 이유가 하례와 유주의 일에 서로 논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장자는 전연 혹은 후연과 매우 친했다는 것이다.
    만약 고구려라면 주로 전연 혹은 후연과의 전쟁성과에 대한 기록을 주로 하였을 것이다.
    물론 고구려와 연나라가 잠시 화친을 한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잠시 휴전을 한 것이지, 화목했던 것이 아니다.
    즉 이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인으로 77세까지 살았을 법한 인물은 근초고왕밖에 없다.
    전연이 멸망하고 후연이 성립하기 전에 힘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바로 그 시간을 말함이다.

  • 10.10.25 11:29

    自冀州徙信都 更名缺 後以讖改垂

    讖이 무슨 뜻인가요?

    해석이 이상하군요.

  • 작성자 10.10.25 20:03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모용수의 본래이름은 모용패인데, 말을 타다가 넘어져 이가 빠져 모용수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의 기록에 의하면 이가 빠져 개명한 이름은 모용결이고, 다시 후에 참언(예언)에 의하여 모용수로 개명했다는 뜻이로 풀이됩니다.

  • 10.11.01 19:48

    尙書令覇 自冀州徙信都 更名缺 後以讖改垂
    = 尙書令상서령 覇패는 冀州기주로부터 信都신도로 옮겨 와서, 이름을 고치는 것이 빠졌고(이름을 고치지 아니하고), 후에 讖(참)으로서 垂(수)로 고쳤다.

    무당에게나 참언서를 통해서.. 개명하라고 조언을 받았나 보군요.

    ㉠예언(豫言)
    ㉡참서(讖書: 미래의 일에 대한 주술적 예언을 기록한 책)
    ㉢조짐(兆朕)
    ㉣뉘우치다(=懺)


    ㉠이지러지다
    ㉡없다
    ㉢없어지다
    ㉣모자라다
    ㉤부족하다(不足--)
    ㉥(할 일을) 빠뜨리다
    ㉦비다
    ㉧아니 하다
    ㉨나오지 않다
    ㉩빠지다
    ⓐ머리띠 (규)

  • 10.11.01 19:55

    /更名/缺= 이름을 고치지 아니하고, 이름을 고치는 것이 빠졌고,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군요. 정정했습니다.

  • 10.10.25 11:42

    使良葬送之 後富及七世子孫
    = 좋은 장사로 하여금 그를 보내니, 후에 富가 7세 자손까지 미쳤다.
    = 좋게 장례를 치루어 그를 보내니, 후에 부유함이 7세 자손에까지 미쳤다.

    이때 及= 미치다. 라는 동사입니다.
    及이란 글자는 보통 주어로 물건을 받으니까, 이때 주어는 富가 되는거죠.

    이런 뜻입니다.

  • 10.10.25 11:38

    永樂十八年 문구가 나와 있으므로, 논리적으로도 저 인물은 백제인이 될 수 없는거죠. 백제인이 될려면..백제연호가 나와야 정상입니다. 그러니..님의 주장은 다른 사람에게 어필이 되지 못 하는거죠.

  • 10.10.25 13:53

    우리가 할 일은 저 사람이 속했던 시대를 보다 더 깊이 조감해 보고 느끼는데 있는거죠. 異說을 주장할 대상이 아닙니다.

  • 작성자 10.10.25 20:19

    371년 백제본기 기사를 보면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켰다고 나옵니다.
    - 여기까지는 삼국사기와 남당유고가 동일 -
    그런데 이 군사가 백제를 침입해 올 것처럼 삼국사기에는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은 (전)연의 잔당을 공격하기 위해 서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군사였습니다.
    이말이 합당한 이유가 고국원왕은 전연에게 미천왕릉을 도굴과 어머니가 잡혀갔었는데, 원한이라면 백제보다는 연나라였겠죠.
    더더군다나 370년에 전연이 전진의 부견에게 망했죠.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였다고 나오지만, 남당유고에는 반대로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 작성자 10.10.25 20:32

    당시의 북방의 패자인 전진이 무서워 고구려가 전연을 공격하지 못했다는 말도 일리가 없죠.
    370년에 전연이 멸망하자 모용평이 망명을 오는데, 고구려가 모용평을 붙잡아서 전진에게 바칩니다.
    또한 소수림왕기에도 보면 전진의 부견이 순도를 통하여 불경과 불상을 보내줍니다.
    멸망한 전연의 땅은 먼저 가지는 것이 임자여서, 전진의 승락하에 전연의 침공을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고국원왕이 군사를 막 일으키자 백제가 불의에 급습을 합니다.
    13군태수 하례도라는 것을 보면 유주에 소속되며 주의 치소가 광계(계)이며 지금 연(당시 북연)의 치소라고 되어있습니다.

  • 작성자 10.10.25 20:57

    13군태수는 연나라의 소속으로 보이며, 고구려나 백제에 소속되었다면, 사신 옆에 무릅을 꿇은 통사리(통역관)이 보이지 않아야 맞는 일이죠. 그러므로 피장자는 연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덕흥리 고분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이해하여야 할 것이
    1. 영락이라는 연호 2. 통사리(통역관) 3. 춘추77세 4. 피장되었을 당시 408-409년의 상황이죠
    한가지 덧붙이자면 13군태수가 하례이외의 목적, 유주에 관한 논의하러 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고구려라면 짧은 화해와 긴 반목이기 때문에 주로 전쟁기사 또는 전투신이 벽화에 남아야 합니다.

  • 10.10.26 09:31

    백제와 고구려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조사해 봐야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나 무리하게 저 피장자가 백제인일 거라는 생각은 무리입니다.

    어디에 묻히는 가는 변수가 많아요.

    저 피장자가 연나라출신으로 고구려에 망명 온 사람일 수도 있고,
    고구려 출신이면서..연나라에 속해서..고향땅 고구려에 묻힐 수도 있고.. 변수가 많습니다.

    저 사람의 관직이 國小大兄이라 나와 잇기에 고구려에 녹을 먹은 사람입니다.

    현재 님이 직접 해석한 것 같은데.. 해석이 부실해요.

    太歲= 太歲(태세)라고 원문을 살려서 해석해야지..간지라고 해석하면 안 되요.

  • 작성자 10.10.26 20:10

    일단은 하나하나 가능하는 것부터 천천히 접근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해석부분도 고쳐야 할 부분이 있고, 전연 - 후연 - 북연으로 변동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특히 전연과 후연사이의 공백기에 요동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3군태수가 누구의 소속이냐, 통사리(통역관)은 왜 유주자사와 소속의 태수사이에 앉아 있는 것인가, 백제는 영락이라는 연호를 동진의 연호대신에 사용한 적이 있는가라는 여러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 10.10.29 20:48

    요즘 다시 백제의 요서경략설이 화제가 되더군요. 제대로 할려면 을불대왕전, 미천대제기, 자치통감 3개를 동시에 보면서 해야하는거죠. 모두 다 대작업입니다. 마음만 있을 뿐이죠. 비슷한 수준에 있는 3명이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같이 해야 해요. 그래야 성과가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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