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적중률 하락이수를 뿌리내린 독보적 달인/ 서정기
주역을 근간으로 한 ‘하락이수’(河洛理數)는 역술인들사이에서는 이미 고도(高度)의 학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일반인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하락이수에 대해 조금이나마 일반인들이 눈을 뜨게 된 것은, 필자가 서정기(徐廷起,66) 고명주역철학원 원장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하락이수의 깊고 심오한 철학과 서 원장의 학문적 깊이에 공감하여 지상(紙上)에 알리면서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서정기 원장은 역술인이기에 앞서 주역을 철저하게 연구한 주역학자라고 해도 크게 틀림이 없다. 그가 사용하는 주역책은 닳고 닳아 겉표지를 여러번 바꿔 달았으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곳에는 연필로, 더 중요한 곳에는 붉은 글씨로 밑줄이 쳐져 있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달아놓은 것도 부지기수.
주역책은 그에게 있어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수양의 고향이며 그 속에서 성찰(省察)을 하고 사색을 하며 또 그 속에 자신의 철학이 있다.
지난 ‘94년 1월 19일, 서울방송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과연 사주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느냐‘에 대한 내용이 방송된 적이 있다.
거지의 사주를 내놓고 과연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아맞히는 내용이었는데 이 대목에서 거지사주임을 정확히 알아맞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역술인이 바로 서 원장이며 사람들은 그가 단지 사주를 풀이하는 사람인줄만 알았지 역술에 있어서 고도의 학문이라는 하락이수에 대한 내용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이 프로가 방송된 이후로 서 원장은 일약 역술계의 스타로 발돋움했는데 이 프로에 출연하고 안 하고와는 상관없이 그는 소리소문 없이 ‘주역으로 사람의 운명을 기가 막히게 정확히 알아맞히는 역술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똑같은 사주를 놓고, 똑같은 명리학으로 사주를 판별한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같아야 하는데 왜 다른 결과가 나올까. 또 그는 주역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 정확히 거지의 사주인지 알 수 있었을까.
철저한 학구파로 수십년간 주역연구
독자들은 이제 궁금할 것이다. 조금 안다 하는 사람도 ‘주역으로는 점을 칠 수 있을지언정 사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주역절중(周易折中)의 강령(綱領) 제 2(第二)를 보면‘대저 역지위서, 본인복서 이작고, 필근어상수(大抵 易之爲書 本因卜筮 而作故 必根於象數)’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역의 글이 만들어진 것은 근본 원인이 복서로 지어졌으므로 반드시 상수에 근본을 둔 것이다’는 말이지요.
주역의 ‘계사전(繫辭傳)’은 공자가 쓴 것인데 이것은 점을 칠 목적으로 씌어진 것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오묘한 이치가 모두 들어 있는 주역으로 사람의 운명을 알아본다면 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역절중은 중국 청나라시대 강희황제 때 국가적으로 50여 명의 관료들이 주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작한 책으로 우리 나라의 집현전에서 훈민정음을 제작할 때처럼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여 만든 책.
진시황이 유명한 ‘분서갱유’를 통해서 ‘불온한 사상을 담은 책은 모두 태워버리라’고 명령하였을 때 유독 주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시에는 ‘주역책이 복서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서정기 원장은 그러나 점복(占卜)이라는 것이 천하다는 일반인의 인식과 ‘운명학에 치우치면 대의(大儀)에 어긋난다’는 것 때문에 주역이 철학서로만 알려져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주역 자체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이의학(理義學)이고 다른 하나는 상수학(象數學)이라는 것.
이의학이 주역의 철학이라면 상수학은 주역의 64괘(卦), 384효(爻)가 모두 상(象), 그러니까 이미지(Image)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이 이미지를 놓고 비교하는 것이 곧 운명학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의 철학자인 정자가 ‘이의학이 있은 연후에 상이 있고 상수학이 있은 연후에 의가 있다’하여 이 둘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옛부터 주역을 배우려면 인격을 먼저 갖추어야 했는데 점술은 천시하였으니까 당연히 상수학은 꺼려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상수학을 하지 않았느냐하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원, 형, 이, 정(元亨利貞)을 찾았겠지만 혼자 있을 때는 나름대로 상수학을 보았다는 얘기지요. 한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주역의 상수학을 체계화하여 내놓은 책이 바로 진희이(陣希荑)와 소강절(邵康節)이 지은 ‘하락이수’. 사주를 기본으로, 이를 수로 바꾸고 그 숫자를 다시 괘를 뽑아 주역의 원문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그는 동양에서도 이 하락이수를 연구하는 학자는 많이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책이 연구의 대상이 되고 일반인의 관심이 많아지면 나라를 불문하고 이의 해석이나 새로운 연구를 가미한 방서(芳書)가 출현할 터인데 아직까지 그런 책을 보지 못했다는 것.
또한 작괘(作卦-사주를 보고 괘를 만드는 것)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되더라도 하락이수 원전(原典)을 충실히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사람으로 이 원전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해석하려면 거의 평생에 가까운 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괘를 가지고도 한문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하락이수란 것은 또한 아무나 다루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주역의 상수학 ‘하락이수’로 운명을 꿰뚫다
그렇다면 이 하락이수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것을 또한 얼마나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일까.
“하락이수대로 설명을 해주면 부인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은 맞는다는 얘기겠지요. 나는 주역의 심오한 철학이 결코 틀릴 수 없다고 봅니다.”
서정기 원장은 율곡 이이 선생의 일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리학자 이이 선생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임진왜란의 발발을 꿰뚫어 보고 10만대군 양병설을 주장한 분 아닙니까. 그런데 그 분이 어떻게 그 사실을 미리 알았을까요. 일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공부를 워낙에 많이 하신 분이라 알았을까요.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으로는 그가 바로 주역을 통해서 앞날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율곡 선생이 하루는 ‘오늘은 인운(人運)이 불길하니 집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명했다.
어른의 말씀인지라 온 가족과 하인에 이르기까지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바로 이웃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이웃집 아이가 몰래 집에 들어와 집안의 아이들과 함께 놀았고 이 아이는 감을 따기 위해서 나무레 올라갔다.
그런데 이 소년이 감을 따는 순간 방문 여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이 소리에 놀란 아니는 그 자리에 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아이를 잃은 이웃집의 부모는 졸지에 당한 일이라 너무 놀랐지만 대학자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 쉬쉬하는 가운데 아이의 장례까지 끝내게 되었다.
이 일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고민하던 이이는 그의 아들에게 석함(石函)을 주며 ‘앞으로 내가 죽고 7대손에 위험이 미치면 이 함을 열어 보라’고 유언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7대손이 죄를 지어 포도청에 끌려가게 되었다. 워낙에 놀란 그 자손은 7대조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석함을 들고 나섰다.
원님 앞에 꿇어 앉은 7대손이 석함을 개봉하려 하자 원님이 그것이 뭐냐고 묻길래 이이 선생이 가보로 물려준 것이라 답하였는데 원님은 ‘그렇게 고면하신 분의 유물이라면 내가 한번 열어보겠다’하여 7대손의 손에서 원님의 손으로 석함이 옮겨지려는 순간, 그 7대손이 이르기를 ‘아무리 내가 죄인으로 이곳에 꿇어 앉아 있다고 하지만 7대조 할아버지의 유물이니 원님은 일어서서 받으시오’라고 말했다.
원님이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일어나서 7대손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려는 순간 원님이 앉아 있던 대들보가 무너지고 말았다.
원님이 그 석함을 열어본 즉 그곳에서 나온 문서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내가 너의 목숨을 살려 주니 너도 나의 7대손을 살려주기 바란다.-
율곡 이이는 집안 사람들에게 화(禍)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가족으로 하여금 다니지 못하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자 7대손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 것을 알고 그것을 미리 예방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율곡 선생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영통(靈通)했기 때문에? 천만에. 그는 주역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의 주역이 바로 서정기 원장이 말하는 상수학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 일화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율곡 선생이 임진왜란의 발발을 미리 예견한 것이나 사람들을 통해 화석정(火石亭)을 짓게 하여 임금의 피난을 도왔다는 것 등은 모두 주역의 심오한 철학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출생시를 정확히 아는 데는 하락이수만한 것이 없어
하락이수는 어떻게 보는가.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사주는 기본이 된다. 사주를 적어놓고 천간(天干), 지지(地支)별로 선천수와 후천수를 추출해낸다. 이것을 작괘(作卦)라고 한다.
괘는 일년에 두 개가 나타나고 평생에는 한 개가 나타난다.
괘를 얻은 다음에는 하락이수에서 그 내용을 찾아 적고 정확한 해석을 하면 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작괘를 얻는 과정이 쉽지 않고 또한 괘를 정확히 얻었더라도 정확한 해석을 해야 제대로 된 하락이수를 구사한다고 할 것이다.
서정기 원장은 하락이수에 정확성과 다양성을 기하기 위해서 일종이 보조학문으로 천금부(千金腑)를 함께 사용한다. ‘천금부’는 중국 한나라 때의 사람 ‘경방’이 지은 복서. 여기에다가 육효(六爻)까지 사용하게 되면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는 것.
그는 또 기을림(奇乙壬) 삼수라고 해서 역술의 고수들이 사용하는 기문(奇問), 태을(太乙), 육임(六壬)에 대해 ‘수준이 높은 학문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핵심적인 내용은 역시 하락이수만 못하다’고 지적한다.
주역은 복희씨로부터 시작해서 계사전을 쓴 공자에 이르기까지 2천5백년을 내려온 학문인데 비하여 기을림 삼수 같은 것은 거의 1세대에 만들어진 학문이라는 것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
서 원장은 하락이수로 필자의 사주를 판별해 주었는데 출생시가 정확히 잡힌다는 것이 우선 특기할만하고 내용이 정확한 것이 특징인데 그 옛날 만들어놓은 주역의 내용이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맞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필자로서도 숙제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락이수는 그러나 육친운(六親運), 곧 부모, 형제, 자손 등에 대한 내용이 일반 명리학에 비해 미약하고 내용 자체도 세밀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시 인생에 있어서의 커다란 줄거리에서는 거의 틀리는 법이 없다고 한다.
많은 역술인들이 이 하락이수의 정확성을 알고 배우고자 하지만, 까다로운 작괘법을 통해 얻을 수 있을지언정 그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하락이수를 정확히 구사하고 있는 역술인은 정말로 손꼽을 정도인 것이다.
거지사주 알아맞히고 스타덤에...
서 원장은 철저하게 이론을 중시하는 역술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본 사주를 모두 기록하고 진행과정을 체크하여 확률을 검증하고 있다. 필자에게 보여준 서 원장의 노트에는 대통령의 사주를 비롯해서 유명 정치인과 사회 저명인사들의 사주와 하락이수로 본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도 하락이수를 보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그는 13대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인근에서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주역대로의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보았다고 한다. 물론 하락이수의 내용으로 김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
그는 서울방송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출연 경위와 사주감정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93년 그믐께였는데 출연제의가 왔어요. 그런데 내가 망설인 이유는 모든 학문에는 양론이 공존하는데 더욱이 역학이라는 학문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어서 부정적 견해가 심한 편이지요. 그러나 이런 기회에 미력이나마 소신껏 학문의 사실을 그대로 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응하게 되었지요.”
화제가 되었던 거지의 사주는 정유년, 임인월, 을해일, 정축시, 하락이수로 작괘하여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