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파스의 사생아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초원지대 팜파스에 속한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후아나 이바르구엔은 인근의 농장 주인 후안 두아르테의 정부였다. 에바 페론은 후아나 이바르구엔과 후안 두아르테 사이에 태어난 5명의 아이 중 4번째 사생아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 후아나 이바르구엔과의 사이에 많은 아이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들을 법적인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출생부터 불우했으며 아버지에게서 버림 받은 에바 페론의 어린시절은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현실을 잊기 위해 어린 에바 페론은 대중잡지의 기사를 읽으며 도시로 나가 화려한 배우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연극과 연주회 등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 나이 15살 무렵, 에바 페론은 과감히 가출을 감행했다. 고향 팜파스의 흙먼지를 떨치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것이다.
남자들 품을 전전하는 삼류배우
그러나 가진 것 없는 시골의 소녀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에바 페론은 어린 나이부터 성공을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잔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그녀, 에바 페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것.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몸’이었다.
에바 페론은 자기의 앞길을 이끌어 줄 것 같아 보이는 남자와 스스럼없이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실속이 없으면 가차없이 떠났다. 에바 페론은 여러 명의 남자 품을 전전하며 삼류극단의 삼류 배우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 여러 남자의 품을 떠도는 비애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귀엽고 순진하게 꾸미고 싶어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에비타라고 불렀다. 에비타는 꼬마 에바라는 뜻이다.
성공을 향한 불물을 가리지 않은 노력 덕분에, 그녀는 삼류 연극배우부터 시작해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차츰 영역을 확장해갔다. 그리고 1940년경 마침내 에바 페론은 어느 정도 유명한 연예인으로 그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