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가 판화로 제시한 ‘참 교회’의 기준/ 권현익
비텐베르크 시장인 루카스 크리나흐(1472-1553)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흑백 판화 한 점으로 표현하였다. 1545년 루카스는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은 카톨릭(로마 카톨릭과 무관함, 보편 교회, 온전한 공회로서의 하나 된 교회)교회를 분리시키고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 오류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판화를 통하여 참 교회의 표지를 나타냈다.(첨부 사진 참조)
첫째, 강대상에 선 루터는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성경을 펼쳐 성경을 근거로 청중의 언어로 그리스도에 관하여 설교하는 반면, 거짓 교회를 대표하는 사제는 대조적으로 성경이 없이 그 자신의 말을 하고 있으며 그 뒤를 사탄이 조종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청중들의 모습을 보면, 참 교회의 성도들은 질서정연하게 설교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거짓 교회의 청중인 한 수도사는 등 뒤로 도박에 사용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무질서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참 교인들이 말씀을 경청한 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헌신과 경건한 삶을 살고 있음을 그리고 있는 반면, 거짓 교회 교인들은 교황이 판매하는 면벌부를 구입하여 그것으로 내세를 준비하려는 모습을 그려 대비시켜 놓았다.
넷째,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인정하는 개혁 교회는 유아의 모습을 통해 생명의 종교임을, 반대편에는 죽음에 임박한 한 병자에게 성사를 행하는 장면과 죽은 성인의 성유물을 들고 거리 기도를 하고 있는 장면을 통해 로마 교회는 생명 없는 죽음의 종교임을 묘사하고 있다.
다섯째, 왼쪽에는 자기를 비워 성부와 동등함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모습을, 오른쪽에는 하나님이신 중보자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인간 중보자를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기에 우레로 표현된 하나님의 진노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벨직 신경(1561년)은 기존의 교회 표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였다. 복음을 ‘온전하게’ 설교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성례가 ‘온전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권면과 징계가 적절히 집행되어 할 것을 추가하였는데,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회복시킴으로 교회의 순결함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선조 개혁자들은 결코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 같은 기준으로 이 땅의 교회를 구분하지 않았고, 참 교회와 거짓 교회로만 구분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은 모든 지상의 교회들은 그 어떤 목표보다 ‘참 교회’ 됨을 지키는 일에 착념해야 한다.
로마 교회 역사관의 영향 때문에 심지어 개신교 신학대학원 논문 제목들조차도 저 개혁 교회의 선조들을 ‘중세의 개혁적 이단’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개혁 교회의 영적 선조들을 당당하게 ‘개혁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 교회사의 근거를 찾기에 혼란스러워할 정도로 로마 교회 역사관은 교회사의 해석과 서술에 이미 너무나 만연해 있다.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클리프가 포함된 그룹을 개혁자들로, 발도인들의 그룹을 이단으로 분리하여 분류함으로써, 두 그룹의 역사적 연관성이나 연속성을 부인하고 각각이 서로 무관한 독립적 집단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결과는 우스꽝스럽게도 발도인들과 알비인들을 영적 선조로 수용하고 이를 선언하고 있는 프랑스 개혁 교회조차 자동적으로 이단 종파의 후손들이 되게 만드는 넌센스를 일으켰다.
기독론 역사관은 필자가 제안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여기는 참 교회를 교회사의 정점과 중심에 두는 교회 역사관이다. 이 역사관을 통해 그리스도의 통치 속에 머물고 있고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만을 유일한 규율로 여기며 따르는 참 교회를 중심으로 한 참다운 교회사가 새롭게 서술될 수 있을 것이다.
루카스 판화에 중앙에 대리석이 세워져 있는 것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거짓 교회가 참 교회로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대부분의 교회사 저자들은 오히려 참 교회인 개혁 교회가 로마 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설명하려는 난센스를 범하고 있다.
참 교회는 사도 교회의 가르침을 계승하면서 그 복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 존재하여 왔다. 거짓 교회가 참 교회의 흔적을 지워 버리려는 반역사적 책동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거짓 교회가 참 교회의 역사를 증명할 증거들을 묻어 버리고, 가능한 모든 문서 자료들과 서적들을 제거해 버려 극히 희귀한 자료들만 남아 있음에도, 여전히 참 교회의 역사는 사라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증언과 기록으로 남아 역사적 진실과 사실들을 토로하고 있다.
불가시적 교회가 전락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지만, 가시적 교회는 언제든지 세상과 타협하여 타락함으로써 거짓 교회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한 개혁자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로 경고하였던 것처럼 개혁의 목표와 내용이 우리의 삶에 체질화가 될 때까지 개혁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반대로 거짓 교회의 구성원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복음에 반응함으로 언제든지 참 교회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사도적 가르침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섬김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선배 개혁자들이 초대 교회로 돌아갈 것을 외친 것은 초대교회가 가장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더 순수한 복음을 소유하였고, 그 복음만이 각 개인들과 지상의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복음을 회복하자!’는 말이 될 것이다.
참 교회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교회를 보호하셨고, 그 교회는 이전 개혁 교회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보존하며, 계대(繼代)하고, 전도(傳道)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어떠한 핍박에서도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pp 5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