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죄함이 없는 성령의 사람 ]
( 로마서 8장 1절 - 11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를 시작하기 앞서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 로마서 8장은 ] 반지에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 8장이 은혜스러운 말씀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말씀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1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처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앞에 말한 내용이 뒤에 말하는 사실의 원인·조건·근거가 됨을 나타내는 접속 부사라고 합니다. 따라서 로마서 7장까지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은혜로 1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7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정죄함을 받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정죄받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항상 함께 계셔서 우리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없는지 있는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특별히 육신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새 생명을 얻었음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안에서 있으면 우리는 육체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입니다. 또한 모든 죄의 정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으로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대신 성령 안에 거하여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 육신에 거하지 않는다 >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은 죄로 인해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몸도 다시 살리신다는 사실입니다.
9절과 10절 말씀을 주의 깊게 보면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본체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체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위의 말씀과 같이 성령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도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본체를 말씀 그래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살아 계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날마다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고 충만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 2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 이라.”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 >시키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말씀입니까?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사랑하셔서 썩어져가는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닌 영에 속한 자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려고 그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법입니다. 우리가 그가 주신 선한 법을 지키고 살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육신의 부패성과 연약성 때문에 선한 법을 지키며 산다해도 율법의 요구대로 살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에서 받은 율법의 모든 저주를 근거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의 < 삶을 새롭게 >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앞장에서 우리의 신분이 변화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6:6)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힐 때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며 이제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 있었습니다. 이 일을 우리에게 일어나도록 해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다시는 죄의 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해방시키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죄인이라고 고소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함으로써 > 우리가 정죄를 당치 않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지심으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육신을 좇아 육신의 일을 하지 않고, 그 영을 좇아 영의 생각을 하며 영의 일을 행하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육신에 속하여 사느냐 아니면 영에 속하여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육신을 좇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육신을 좇는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이 육신의 생각에 몰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과 같이 육체를 좇아 사는 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좇아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며 살 수 밖에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의 원하는 것만 추구하면 < 마귀가 > 이끄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자기 중심적이어서 하나님의 < 말씀에 순종 할 수 없기 >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 < 모든 삶이 변하게 >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마음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기 때문이니라 성령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느니라. 성령은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생각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마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가면 마음이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좇는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으로 생각하고 지배 받는 삶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뜻합니다. 이것은 < 거룩한 삶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내가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받들면 그것이 성결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께 향한 마음이 있다면 율법의 요구대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율법이 요구하는 <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 자리까지 이르게 됩니다. 또한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에게는 평안과 축복이 따릅니다.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행동하고 행하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께 <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 >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어 정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도 우리를 보시고 죄인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강해 - 내가 얻은 황홀한 구원 (옥한흠 목사 저)에서 요약
[출처]
http://m.cafe.daum.net/kpfirst/Gndl/1428?q=%EB%A1%9C%EB%A7%88%EC%84%9C+8%EC%9E%A5&re=1
[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한다. ]
( 로마서 8장 12절 - 17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시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성경의 구약시대를 보면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자에게만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구약시대 인물 중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야 하는 지도자가 된 모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자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뿐만 아니라 삼백만에 가까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성령을 받아서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의 꿈이며 소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의 뜻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삶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 차별이 없이 예수님을 부르기만 하면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모신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 육신대로 살 수 없습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라고 하는 말은 앞 부분에서 설명한 내용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 결코 정죄함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꿔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에게 져서 < 육신대로 살지 말아야 > 합니다. 우리는 이제 육신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에 빚진 자로서 우리의 삶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 삶을 살아야 할 책임 >이 있습니다.
만약 성령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 여전히 육신대로 살면 그 결과를 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합니다. ‘너희’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씀으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 엄한 경고가 담겨 있음 >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까? 물으면 모든 사람들이 ‘아멘’이라 대답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면 육신대로 사는 세상 사람처럼 행세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죽는다는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로마서 11장 20절에도 비슷한 경고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 육신대로 살았을 때 징계 > 하신 것처럼 모든 믿는 사람들도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 살기 때문에 육신대로 살지 않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기 때문에 < 행동으로도 입증할 수 있어야 >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은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육신에 맡겨 놓지 않고 항상 성령의 손에 맡겨 놓고 삽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가고 멈추는 삶이 < 성령을 따르는 사람의 실제적인 생활 > 입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성령으로 자기 몸의 행실을 죽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악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육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죄성이 있어서 때때로 죄의 본성대로 육체적인 생각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죄성을 죽이는 반복 행위를 해야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욕심에 끌려 잘못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약점입니다.
우리가 < 욕심대로 살게 되면 > 죄라는 몸의 행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몸의 행실은 < 죄를 가리키는 것 >으로 단순한 행동만을 따지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모든 언행 심사 전체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몸의 행실을 죽이려면 하나님께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는 것이 우리 < 몸의 행실을 죽이는 > 것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 죄악에 끌려 들어가지 못하도록 > 막는 성령의 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성령님을 믿는 만큼 성령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우리 마음 속에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사실에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안에 있는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께서도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의 증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성령의 말을 듣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 하시는 성령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66권의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이 살아 움직일 때 주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이며, 빛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늘 말씀하시고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분명한 신분 의식과 < 예수님처럼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는 주체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 몸의 행실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직접 우리를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보혜사, 즉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 행동하도록 > 힘을 주시고 격려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점으로 사단은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두 가지는 다 있습니다. 이 약점을 이용해 죄를 합리화시키며 자신의 악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유혹이 가까이 올 때 항상 단호하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말씀하시고, 분명하게 해야겠다는 <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고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께 < 순종하지 아니하면 > 성령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오면 < 우리 스스로 >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 몸의 행실을 죽이는 > 일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우리의 몸의 < 행실을 깨끗게 하기 위해서는 > 주의 말씀을 우리 안에 깊이 묵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묵상은 묵묵히 마음속으로 말씀을 생각하는 것으로 말씀에 잠긴다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이 항상 마음속에서 생각나며 그 말씀 안에 잠겨 유혹 앞에서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할 때 <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게 >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할 때 그 말씀을 칼처럼 사용하십니다.
성령으로 < 몸의 행실을 죽이기 > 위해서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심을 믿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유혹이 나가올지라도 < 유혹 앞에서 단호한 태도 >를 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묵상하고 간직해야 함을 기억해야합니다.
성령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에게는 큰 기쁨과 평안, 그리고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너희는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받는 자녀들이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즐거워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은 기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행복해서 부르는 이름이요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 특권과 행복을 > 느끼고 누리게 하십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 몸의 행실을 죽입니다. > 왜냐하면 성령을 모시고 사는 행복은 바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에게 빚지고 사는 사람들로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복된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강해 - 내가 얻은 황홀한 구원 (옥한흠 목사 저)에서 요약
[출처]
http://cafe.daum.net/kpfirst/Gndl/1429?q=%B7%CE%B8%B6%BC%AD%208%C0%E5&re=1
[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 로마서 8장 28 - 30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이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과 놀라운 기쁨을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절대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본문 2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우리 모든 것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구절을 읽을 때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29절에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 본받게 하기 위해서 > 미리 정하심으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는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맏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이며,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위치를 혈통적인 의미로 바꾸어 설명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 빌립보서 2장 9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가장 큰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끊고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높은 이름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계 모든 족속으로부터 세세 무궁토록 < 영광 받으시도록 >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가장 큰 목적을 알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데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모든 족속에게 전하는 것은 바로 그 분은 통해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에 우리는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 >에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를 <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본받다’라는 말은 ‘같은 모양을 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닮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가지고 그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자녀로 만드시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구원의 단계입니다.
< 미리 아심 >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셨다고 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미리 아셨다고 하는 것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조건으로 나의 선이나 공로가 될만한 무엇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구원은 아무 조건 없이 무상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에게 있는 선이나 공로로 구원을 얻었다면 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나의 공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예수님은 절대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벌써 우리 개개인을 미리 아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미리 정하심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미리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너는 내 자녀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세상에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은혜의 선택이며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입니다.
< 부르심 >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들 또한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 우리가 > 예수님을 믿으려고 해서 < 믿은 것이 아니라 > 하나님께서 믿게 하셨습니다.
< 의롭다 하심 >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주신 은혜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 영화롭게 하심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 > 마지막 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그분을 직접 보며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의 < 썩은 몸은 새 몸을 입고 부활하여 우리 영혼과 결합하게 > 됩니다. 우리 몸이 구속을 받게 되면 우리 자신은 완전 무결한 새 인격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새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되며 영화롭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단계는 우리가 구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진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반드시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그 누구도 방해 할 수 없으며 설혹 방해가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대로 이루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구원 계획을 확실히 이루시는 분입니다.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헬라어 원문을 보면 29, 30절에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전지 전능하시고, 영존 하시는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다섯 개의 동사가 전부 과거 동사로 쓰여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셨다’, ‘정하셨다’, ‘부르셨다’, ‘의롭게 하셨다’, ‘영화롭게 하셨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성사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정도로 확실하게 해 놓으신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5가지 단계 가운데서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은 <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해 놓으신 일 >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곧 완성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말씀하는 선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영화롭게 하는 것, 즉 < 완전한 구원 >을 받는 것이 선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자리까지 이르도록 도움이 되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과 경험의 결과를 선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전적으로 <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작업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말은 단순히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 순종하는 중생의 변화 >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 부르심을 받으면 < 사람의 근본부터 바뀌게 > 되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믿습니다. 28절 말씀에 나와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우리의 감정, 지식, 행동, 이 밖에도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참 믿음은 <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그에게 < 기쁨으로 순종 >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그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직접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기가 미리 알고 택하신 자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놓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 강제로 >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 선을 이루게 하시는 >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아 영화롭게 되는 날까지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 선을 이루시는 것 >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을 우연한 일로, 무의미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얻기까지 이처럼 의미 있게 다루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구원 계획을 보면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강해 - 내가 얻은 황홀한 구원 (옥한흠 목사 저)에서 요약
[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