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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12장25~33절
제목 : 자기 마음대로
솔로몬의 영화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10장을 보면, 세금을 1년에 666달란트를 거두어 드리고, 금으로 큰방패 200개, 작은 방패 300개를 만들고, 화려한 상아 보좌와 무역과 조공으로 얻은 진귀품이 쌓여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컷습니다.
뿐만아니라 병거 1,400대, 마병 12,000명을 두었고, 왕이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 뽕나무 같이 많았습니다.
11장에서 솔로몬은 패방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방 나라와의 졍략결혼은 결국 우상숭배로 이어졌고, 돌이킬 수 없는 패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는 후궁 7,000명, 첩 300명을 두었고,
그들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두 번이나 경고를 하였음에도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법도를 지키지 않으므로 결국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11절)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는 하닷과 르손을 이르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하고,
내적으로는 솔로몬의 신하인 여로보암의 반란을 통하여 솔로몬의 징계와 이스라엘의 분열을 예고합니다.
그런 가운데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 하여 왕이 됩니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솔로몬이 부과한 고역과 세금을 가볍게 해주면 왕을 섬기겠다”고 청원을 합니다.
르호보안은 3일동안 시간을 얻어 먼저 원로들의 의견을 청취합니다
원로들은 두가지를 건의합니다. 7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원로의 말을 듣지 않고 젊은 측근들의 어리석은 조언을 듣습니다.
그들의 조언은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하소서”
르호보암이 요구를 거절하자, 북쪽 지파들은 남쪽 유다 지파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합니다.
르호보암은 전쟁으로 나라를 되돌리려 하지만 하나님이 이를 막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이 세겜을 수도로 정하고, 벧엘과 단에 산당을 세우며, 종교 체제도 바꾸어 보았지만, 여전히 불안을 달래지 못하고 심판을 자초합니다.
1. 약속에 대한 불신앙(25~27절)
1)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부느엘을 건축합니다(25절).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세겜을 건축하고. – 새로이 수립된 북왕국의 체제 정비에 있어 여로보암이 첫 번째로 한 일은 수도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Dentan).
그리하여 그 수도는 북쪽 지파들의 정치. 종교적 중심지인 세겜(Shechem)으로 결정되었습니다(1절).
본절은 이제 이와 관련 여로보암이 수도 세겜의 방비를 강화하는 등의 건설 작업을 수행하였음을 보여줍니다. 1절 주석 참조.
부느엘을 건축하고. - 한글 개역 성경에 '브누엘'(Penuel, 삿 8:8)로도 번역되어 있는 '부느엘'은 '브니엘'(Peniel)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세겜 맞은 편, 그리고 요단 강 동편 얍복 강가에 위치하였는데 야곱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창 32:30).
아마도 여로보암은 수도인 세겜의 동쪽 방어를 위해 이곳에 요새를 세웠을 것입니다.
2) 다윗 이래로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예루살렘 종교적 기능을 말합니다(26절).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 비록 세겜을 정치적 구심점으로 삼았지만 여로보암의 마음을 불안하게하는 것이 하나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 이래로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잡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기능 때문이었습니다(27절;삼하 6장).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 참조.
그러므로 여로보암에게는 남 왕국과의 철저한 분리를 위해서도
어떤 종교적 구심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 우상 숭배(28-33절)의 발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로보암의 우상숭배 정책은 경건한 신앙인들에게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왔으니 그들 중 상당수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대탈출을 시도하였습니다(대하 11:13-16).
3) 만일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그들의 마음이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자기를 죽일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27절).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올라가면. – 북이스라엘 지역에서 볼 때 예루살렘이 실지로는 아랫쪽 남방임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다'(알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변두리가 중심 지역에 대해 갖는 관계성 때문일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의 예루살렘의 지위와 중요성을 암시해 줍니다.
다시 말해 솔로몬의 성전건축 이후 예루살렘은 북쪽 지파들에게도 명실상부한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것입니다(6-8장).
그들의 주 르호보암. - 문자대로라면, 여로보암도 르호보암이 정통성을 지닌 왕임을 내 심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Wordsworth).
왜냐하면 르호보암의 앞에 '주'(아돈)라는 호칭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다를 옹호하는 본서 저자가 여로보암의 행동 동기를 설명하는 가운데 사용한 호칭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Hammond).
따라서 본절의 표현 그대로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을 정통 왕으로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2. 금송아지 숭배(28~33절)
1)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합니다(28절).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이에 계획하고. - 여기서 '이에'는 26, 27절의 음습(陰濕)한 동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로 26, 27절은 28-33절의 원인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계획하고'(이와아츠)는 '의논하다'는 뜻입니다.
즉 여로보암은 그가 염려하는 문제를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의논한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 이처럼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의도는 물론 북왕국 백성들을 차단하여 예루살렘 성전 순례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단순히 본절의 금송아지를 이방의 우상 숭배와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성전 순례를 원하는 백성들은 그야말로 여호와 신앙에 투철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만일 여로보암이 우상 숭배를 강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멸(自滅)의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금송아지는 적어도 시초에는 오히려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과 관련된 그 무엇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는 여호와의 발등상으로서의 상징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됩니다(Gray).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이러한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1) 소의 형상은 여호와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전통적 상징이었다는 점(Dentan).
(2) 비록 중심적인 지위는 갖지 못했어도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소의 형상은 발견된다는 점(7:25).
(3) 예후, 엘리야 등이 바알제의를 공격할 때에도 금송아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Cobern).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 형상은 과거 모세 당시처럼 우상으로 사용될 위험성을 충분히 안고 있습니다(출20:4-6).
그러기에 이스라엘 역사상 금송아지 형상은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우상화된 적이 종종 있습니다(호8:5이하;12:11;13:2).
본절에서의 여로보암의 행위 역시 결과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어지럽히는 이방 종교와의 혼합을 낳았습니다.
더구나 본문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참된 제사의 동기를 갖지 않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인물로 낙인찍히고 만 것입니다(15:30,34;16:2,19,26).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
이는 출 32:4에서 언급된 말로서,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언약 자체를 거부하게 하려는 의도가 은연중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과거 시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로서의 모세를 인정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나타내신 여호와의 언약도 거부하였습니다(출32:1-6).
그런데도 본절에서 여로보암은 모세 당시의 패역했던 상황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킴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거부하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 말기의 부패상과 르호보암의 폭정 등을 경험하였던 백성들 중 대다수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라 주장한 여로보암의 궤사(詭詐)한 말이 그럴듯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전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마저 팔아버리는 행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마 26:14-16;27:3-10).-8).
2)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29절)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처럼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예배 중심지로서 특별히 벧엘(Beth-el)과 단(Dan)을 택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이 두 장소는 전통적으로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즉 벧엘은 과거 아브라함과 야곱이 단을 쌓은 곳이며(창 12:8;13:3, 4;28:11-19;31:13;35:1) 사사 시대에는 언약궤가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습니다(삿 20:26).
그리고 단은 그 자체의 신당과 제사장을 소유했던 곳으로서,
그 제사장직이 모세의 후손들에 의해 계속 이어졌었습니다(삿 18:30, 31).
(2)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남방 경계 지역에(수 18:13),
단은 북방 경계지역에 위치하였는바(수 19:47)
북이스라엘의 전 백성들에게 거리상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로(shiloh)대신 단이 선정된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즉 실로는 여러 면에서 단보다 더 예배 중심지로 적합하였으나(수 18:1;삿 21:19;삼상 1:11) 벧엘과 마찬가지로 남방 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피택되지 않은 것입니다.
벧엘. -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창 12:8).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0km 가량 떨어진, 현재의 베이틴(Beitin)입니다.
본래 지명은 루스(Luz)로서(창 28:19)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선상이면서 동시에 남북 왕국의 경계선상이기도 한 능선에 위치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좋은 샘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B.C 3500년경?) 성읍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오랜 예배 중심지이기도 합니다(Jamieson).
단 - '단'은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팔레스틴 최북단의 도시로서 두로와 다메섹을 있는 무역로를 굽어 보며 서있습니다.
이러한 단이 벧엘과 더불어 제2의 성소로 선정된 이유는 북 왕국에서도 북쪽에 거주하는 백성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Hammond).
그런데 바알 숭배의 본산지인 두로와 잦은 교류를 하는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 형상은 아무래도 위험했습니다(White).
3)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경배함입니다(30절)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 '이 일'이 지칭하는 바는 여로로암이 금송아지 형상을 벧엘과 단에 둔 일입니다(29절).
그런데 이 일이 죄로 판단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이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출 20:4).
(2) 이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소(예루살렘)를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신 12:5).
(3) 그 결과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Pulpit Commentary).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 본절의 해석에 대하여선 학자들마다 제각기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백성들이 '하나같이' 숭배했다"로 보는 입장(Ewald).
(2) "백성들이 '한 무리는 벧엘로 한 무리는 단으로' 숭배하러 갔다"로 보는 입장(Rawlinson 등).
한편 이와 유사한 설명으로 "백성들이 두 곳으로 갔는데, 그 먼 단에까지 숭배하러 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Bahr).
(3) 초기에는 백성들이 단으로만 숭배하러 갔다고 보는 입장(Hammond).
이상의 세견해 중 비교적 타당한 것은 두 번째 견해인데 이와 관련하여 카일(Keil)은 "단에까지 이르는 전백성이 숭배하였다"는 신축성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 그가 또 산당들을 지시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31절).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신당을 짓고. - 예루살렘 성전이 갖는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훼방하기 위해 여로보암이 취한 조처 중 하나입니다.
즉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백성들이 주로 산당에서 예배하였는바(3:2;삼상 9:12) 이제 여로보암은 다시금 백성들로 하여금 그 같은 산당에서 예배하도록 획책(劃策)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산당들은 성전과 달리 언약의 법궤도 임재의 보증도 없는 곳입니다(Keil).
이러한 산당에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 의식과 결합할 가능성 및 유혹이 늘 상 있어 왔습니다.
이에 관하여선 삼상 9:12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보통 백성. - 우리말에서 '보통'이 갖는 순한 어감(語感)과 달리 원문의 '미크초트'는 '황폐하다'는 뜻으로 좀 냉소적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보통'이란 말은 '아무나 마구 되는 대로' 정도의 비웃음 띤 표현입니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레위인들 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출 28:1-4).
그런데도 여로보암이 레위 사람들 대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은 결과 레위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대거 남 왕국으로 남하하고 말았습니다 (대하 11:13-17).
이러한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율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의 고유사명이 여로보암에 의해 훼손된 점입니다(Hanke). 민 35:1-8 주석 참조.
따라서 이는 여로보암의 불법성을 두드러지게 증거해 줍니다.
5) 여덟째 달 열 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였습니다(32,33절)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 솔로몬 성전의 절기는 7월15일(유대력)이었습니다(8:2). 창세기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이 절기는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로서 한 해의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의 절기입니다(8:2,65;9:25).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참조.
그런데 여로보암이 이 절기의 날짜를 8월 15일로 잡은 것은 자의(恣意)대로 한 것이 아니고 북쪽 전통의 복원(復元)입니다.
즉 북쪽은 원래 남쪽에 비해 수확이 한 달 가량 늦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진정한 목적은 절기의 자연성을 회복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는 백성들이 7월의 장막절에 예루살렘을 방문치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여로보암은 이로써 체제경쟁에 있어 나름의 종교적 정통성을 구색(具色) 갖추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기를 7월로 통일되게 지키도록 한 율법과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레23:34).
따라서 이 역시 죄악 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이와 같은 절기의 분열은 곧 통일 왕국의 정치적 분열에 이어 종교적 분열도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와 같이 행하여. - 이는 곧 남 왕국 유다에서 행하는 것과 비슷하게 제사 의식을 흉내 냈음을 말합니다.
즉 절기 때의 제의(祭儀)는 단지 한 장소(벧엘)에서, 왕이 친히 집전(執典)한 것입니다(Hammond, 8:62-66;9:25).
자기 마음대로 정한. - 원문은 "그의 마음(레브)에서 궁리해 낸(바다)"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바다'는 나쁜 의미에서 무엇을 궁리한다는 부정적 어감이 실린 단어입니다.
분향(焚香)하였더라. - 원래 '분향하다'에 해당하는 '카타르'는 분향 뿐 아
니라 모든 번제를 지칭할 수 있는 전문적 용어입니다.
그러나 그 문맥상 부정적인 이교 제사와 연결되는 경우에는 대개 '분향하다'로 번역되고 있습니다(대하 25:14;28:4;렘 1:16;18:15;44:17;호 2:13등). 그 대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주로 '불사르다'로 번역됩니다(출 29:18;레 1:15;3:16;4:19등).
그런데 본절에서 여로보암의 제사는 그 부정적 의미가 채택되어 '분향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여로보암에 대한 열왕기의 부정적 시각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15:30, 34;16:2등).
*15:30,34 “[30]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34]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여로보암은 왕위에 오르자 세겜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그것을 요새화합니다(25절).
그리고 외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요단 동편 브누엘에 방어성을 쌓습니다.
이후에 그는 수도를 세겜에서 디르사로 옮깁니다(14:17, 16:23).
수도를 이전하고 개축하는 등의 건축 공사로 막대한 세금과 부역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북쪽 지파들이 과중한 노역과 세금에 불만을 품고 다윗 왕가를 거부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일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 줍니다.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만을 위한 이기적인 왕이 되도록 기대한다면,
나는 언제든 배약(背約)하고 배반할 수 있는 왕을 섬기는 자일뿐입니다.
2) 여로보암은 왕위에 오르고도 여전히 불안했습니다(25~29절).
“아직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왕으로서 왕권을 잃거나 암살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는 한, 체제 안정을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대신 북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두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절기를 지키지 못하도록 유도합니다.
왕위와 왕국의 유지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충성에 달려 있다는 예언(11:38)을 금세 잊은 것입니다.
*11: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그의 첫 결정은 왕국 분열을 영속화하고, 백성을 죄의 올무에 빠뜨렸습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음에서 돌아서서’말씀에 순종했지만(24절),
여로보암은 ‘어리석음으로 돌아서서’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3) 여로보암은 율법에서 금지한 형상을 만들고, 중앙 성소를 벗어나 제사를 드리며, 레위 자손이 아닌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고, 임의로 초막절 날짜까지 바꿉니다(28~33절).
다윗의 길을 따라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는데도,
자신은 물론 백성까지 미혹하여 혼합 종교의 신봉자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으로 나라가 흥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여로보암으로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회피하려고(26절) 시작한 일입니다.
세상이 무섭고 미래가 너무 두려워, 보이는 권력이나 돈과 사람을 의지한다면 우리도 언제든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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