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산내면 서진암(瑞眞庵)
(해학적인 나한신앙을 만나는 도량)
전북 남원시 산내면 서룡산 아래에 나한도량 서진암이 있다. 이 서진암은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암자이다. 특히 백팔대는 전망대 중 전망대로 이곳에 오르면 108번뇌가 사라진다하여 암주 동묵스님(2019년)이 이름을 붙였다.
■ 암자를 찾아서 : 안직수 저(2006.02.25.)에 소개된 서진암
서진암(瑞眞庵)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했다. ‘세상의 먼지를 털어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창건 연대는 1100년대로 추정하는데, 창건 당시의 유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1516년에 조성했다는 명문이 적힌 나한상이 사찰에 모셔져 있어 세월의 무게를 전해준다. 1822년(순조 22)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애영 비구가 다시 중창하고 1917년에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한 이래 구산선문인 실상사의 수행암자로, 또 신도들의 나한기도 도량으로 오랜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의 키 보다 조금 큰 한 평 크기의 칠성각을 둘러보며 그 소박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을 때 스님이 부른다. 어느새 객을 위해 밥상을 차려 놓았다. 대뜸 “아무나 와서 하루 쉬어 갈 수 있냐?”고 물으니 “방송인 전유성씨, 불교학자 전재성씨 등이 몇 달 동안 살다간 적이 있다.”며 혼자 밥해 먹고, 혼자 빨래만 한다면 자기가 있고 싶을 때까지 있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늦은 점심 공양을 마치고 방사에 들르니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름도 모른 채 이런저런 종류의 차를 마시며 소담을 나누는데 인기척이 난다.
“아, 일산 노 보살님 오시나 보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진암을 다녔다는 70이 다 된 노 보살님이 백일기도 회향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밥을 지어먹고 경기도 일산에서 서진암을 찾았단다. 속바지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용돈을 꺼내 불전함에 넣는 지극한 보살님의 모습이 쌀 몇 되 머리에 이고 어린자식 한 손에 잡고 산길을 오르던 우리의 어머니를 보는 듯 정겹다. 저분도 쉽게 오르는 산길인데 왜 나는 힘들기만 했을까.
노 보살님이 전해주는 암자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옛날에 사찰에 두 스님이 기거했단다. 쌀이 떨어져 밥을 굶는 날이 종종 생기자, 주지 스님이 바위에 조그만 구멍을 뚫었다. 그러자 매일 한 사람분의 식량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1인분의 쌀로 둘이 나눠먹자니 항상 부족할 수밖에. 늘 배가 고팠던 한 스님이 ‘구멍이 작아 조금밖에 안 나오니, 두 배로 넓히면 쌀이 2인분이 나올 것이다’며 주지스님이 출타한 틈을 타서 구멍을 더 넓혔다. 그러자 그나마 매일 조금씩 나오던 쌀이 나오지 않아 결국 두 스님은 절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단다.
서진함은 나한도량이다. 나한이란 동양에서 발달한 불교신앙인데, 부처님의 제자들로 수행을 많이 한 고승을 모시는 도량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번성했는데, 현재는 나한을 모신 사찰은 종종 있지만 나한신앙을 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절은 찾기가 어렵다.
“나한이 얼마나 웃긴지 알아요? 서원을 빌면 딱 그 소원만 이뤄줘요. 들어주긴 잘 들어주는데 소원 이상을 안 들어주더라고. 한번은 ‘이놈의 나한!’ 하고 혼을 냈는데 그날따라 기도하고 나오다가 누가 뒤에서 딱 때리는 느낌에 넘어졌지 뭐야. 장난도 무지 심한 게 어린애 같아. 참 근데 나한 이야기는 신문에 쓰지 마라. 누가 와서 영험있다고 집어가면 어쩔려구. ”
거침없는 스님의 입담이 시간의 흐름을 잡아놓는다. ‘이 산골에 까지 와서 그 무거운 나한상을 지고 다시 내려갈 용기가 있다면 한번 해 보라지.’ 하는 마음이 일어 한참을 혼자 웃었다. 그 정성이면 막노동판에서 일을 해도 큰돈을 만지고도 남음이다.
“한번은 한 문화재 도굴범이 나한을 들고 간 적이 있는데, 밤마다 나한이 나타나서 호통을 치는 바람에 어느 날 다시 갖다 놓았다는군.” 나한이 더 이상의 서원을 들어주지 않고, 쌀 욕심을 내던 스님이 결국 조금의 쌀마저 잃었다는 전설은 닮은 부분이 많다.
지극정성으로 수행하고 발원하면 소원을 들어주는데, 욕심을 내면 오히려 화를 부른다는 가르침이다. 욕심을 버리고 항상 수행자의 본분을 지키라는 가르침이 담긴 전설을 들으며 이런저런 소담을 나누는데 하루해가 너무 짧다. 자식을 위해 산길을 마다않고 새벽밥 지어 먹고 경기도에서 이곳까지 온 보살의 정성을, 부모님의 하염없는 은혜를 되새기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 찾아가는 길.
지리산IC – 인월면 – 산내면 매동마을 – 지리산 둘레길 3코스 – 서진암
[출처] 암자를 찾아서 : 안직수 저(2006.02.25.)
<서진암 백팔대에서 바라본 지리산 장쾌한 능선>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거사님~~
감사합니다 ()
지리산에 가면 꼭 한 번 올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