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Open Your Eyes
그림으로 와인의 맛, X-Ray로 꽃의 아름다움을 파헤친다
구하갤러리, 유용상 그림 및 정태섭 사진전 4.30-5.20
눈을 뜨면 보인다. 달리 보면 새롭게 보인다. 가능한 한 주관을 개입시키지않고, 있는 그대로를 파고들어가는 작품세계. 그 속에서 우리가 평소 보지못하던 사실의 진정한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예술경향을 우리는 하이퍼리얼리즘, 즉, 극사실주의라고 정의한다.
신사동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구하갤러리(대표 박현숙)에서는 4월 30일부터 5월 20일까지 ‘Open Your Eyes (너의 눈을 떠라)’라는 제목으로 극사실주의 작가인 유용상과 정태섭 작가의 그림 및 사진을 전시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미술경향이다.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표현방법인 추상주의에 대한 역설적 작품기법이라고나 할까.
유용상 작가는 진부해진 일상의 세계에 대해 주관을 최대한 억제하고 카메라의 시각처럼 중립적이고 객관적 입장에서 사물을 대하면서도, 사물에 대해 자신의 내면적 정서와 철학적 고민들에 대해 사물이 놓여진 위치나 사물의 상태에 의해서 읽어내도록 만드는 하나의 언어적 방식으로 극사실적 환영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림이 아니라 사진 같다. 도저히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평론가는 유용상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그가 주로 사용하는 채움과 비움 혹은 흔들림과 정지됨과 같은 시각적 장치 역시 인간 내면의 고민들을 적절히 그리고 함축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내면세계에 대한 상징적 언어체계가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조형작업은 단순히 사실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부터 인간의 존재에 깊은 이야기에 대한 실마리들을 던져주는데 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고 평한다.
유용상 작가의 근래 작업들은 그 스케일이나 그가 다루는 소재에 대한 사유방식에 있어서 몇 가지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승훈 평론가는 “초기에 작가는 종이컵 속의 음료수가 만들어내는 거품이나 빈잔 혹은 반쯤 채워진 와인 잔 등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이 존재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은유하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종이컵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는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같은 순간적 사랑이야기를 다루었고, 채워지거나 비워진 와인 잔에서는 인간의 소유에 대한 명상적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의 작업에서는 와이너리의 저장고 모습이나 유명한 고급 브랜드의 상표가 선명하게 새겨진 와인 병들을 모아서 그려내기도 하고 와인 잔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작은 와인 병 등을 등장시키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이에 대해서 유용상 작가는 “외형의 크기나 상표처럼 외형상의 표시에 의해 신분이나 계급이 나뉘어지는 현대사회의 양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작업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힌다.
2012년 11월 독일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독일의 비스바데너 탁블랏 신문은 유용상 작가에 대해 “유용상처럼 일관성 있고 성공적으로 와인과 예술을 접목시켜 작품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갤러리스트인 페터 빈터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게오르크-뮐러-슈티프퉁 와이너리 갤러리에 그를 초대하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와이너리의 아트 셀러를 위해 유용상은 자신이 즐겨 마시는 와인을 소재로 한 작품 두 점을 그렸다. 그 외에도 와인 잔을 소재로 한 극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낯선 작품 10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로 그는 아주 유명하게 되었다. 1973년 남원에서 출생한 유용상은 전주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3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당시에는 일회용 종이컵과 액체가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8년 전부터 그는 와인 잔을 유화로 그리고 있다.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는 유용상의 작품은 예술작품 수집으로 잘 알려진 삼성과 국립현대미술관, 포르투갈, 헝가리, 우루과이 대사관이 소장하고 있다. (중략). 아트셀러 갤러리에 영원히 남게 될 두 개의 작품을 빈터의 의뢰에 의해 유용상이 즐겨 마시는 와인의 병과 이 와인이 담긴 와인 잔을 오크통 위에 놓고 그렸는데 이를 통해서 2008년 빈티지의 피노 누아와 하텐하이머 하셀이라는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2009년 빈티지의 피노 누아 와인을 영원화시켰다“고 장문의 기사를 실은 바 있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 함께 작품을 출품한 정태섭 작가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의사이다. 엑스레이 전문가인 의사가 영상기기를 예술과 접목시킨 특이한 작가로, 소위 ‘엑스레이 아트’ 분야를 최초로 개척한 파이오니어로 평가된다.
생각해 보면, 일반카메라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엑스레이는 겉으로는 보이지않는 내면을 찍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영상기기의 기능 자체는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술과 사진, 과학과 예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요즘, 정태섭 교수는 그 난간에서 과감히 발상의 전환을 하여 ‘과학의 예술화’를 실현시킨 것이다.
정태섭 교수의 책상 앞에는 가족 해골사진이 붙어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섬찟할 것 같기도 한 이 사진에 대해 그는 공연전문인터넷신문사 NEWSTAGE의 ‘예술을 처방한 의사들’이라는 시리즈 인터뷰기사에서 “1995년 미국에서 돌아온 후 매일 논문에 매달리던 때였지요. 제가 논문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가족들이 저에 대해 격리감을 느낀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을 병원으로 불러 해골가족사진을 찍었죠. 해골가족사진에는 저의 전공과 취미, 가족의 구성애 등 많은 감성과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해골가족사진은 단순한 엑스레이 사진을 넘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정태섭 교수의 작품을 보면 하나 하나가 충격적일 뿐 아니라 비전문가 입장에서 봐도 놀랄만큼 예술로 승화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음악가의 해골사진은 물론, 꽃 내면의 아름다움을 파헤친 듯한 작품들은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그의 작품 은 2010년 발행한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의 연구실 벽면은 그동안 작업해 온 작품들이 붙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아파서 찾는 차가운 공간으로 인식한다. 정태섭 교수는 병원이 차가움을 제거하고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구실은 물론 병원 로비에도 그의 작품을 기증했다. 그이 작품을 본 환자들의 표정은 점점 부드러워져 갔다.
“처음에는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병원에서 진찰할 때 쓰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엑스레이가 예술로 다시 태어나서 신기하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요즘 와서는 엑스레이 미술에 많이 친숙해진 것 같아요.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하고 하시고 따라하겠다는 분들도 계세요”
그에게 엑스레이는 우리의 감성을 깨울 수 있는 새로운 빛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빛이라고 하면 가시광선 만 생각하기 싶다. 가시광선은 물체에 닿아 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에 물체의 표면 만 볼 수 있다. 그러나 빛의 일종인 엑스레이는 물질을 투과해서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는 이 내면의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물도 내부의 골조가 미적으로 구성되어야 건물의 외벽이 아름다워요. 성형수술에서 내부의 뼈를 깎아내는 것이 외부의 아름다움과 직결되잖아요.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을 밝혀내고 알려주는 게 아름다움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태섭 교수는 엑스레이는 아날로그로 디지털 영상에 비해 부드럽고 감성을 표현하기 좋다고 말한다. 여기에 그는 색을 추가해 예술작품을 만든다.
“휴대폰을 찍은 엑스레이에 파란 색을 넣으면 문자를 기다리는 차분한 마음이 표현돼요. 허지만 여기에 붉은 색을 넣으면 문자를 보낼 때의 들뜬 마음이 표현되지요. 그렇게 우리의 감성을 추가해 넣는 거예요”
정 태섭 교수는 엑스레이로 사람 신체, 손, 꽃, 고양이, 강아지, 휴대폰 등 다양한 사물들을 찍는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소재는 꽃이다. 그는 장미와 튤립을 많이 찍는데 이를 위해 일부러 양재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그의 미술을 병원 환자
들의 마음에서 일반인들의 생활에도 젖어들기를 바란다고 한다. “제 미술이 거실의 액자로, 벽지의 문양으로, 혹은 가구의 문양으로 생활의 한 구성요소가 되길 바래요. 그래서 엑스레이미술로 사람들 마음에 따뜻함을 주고 싶어요”라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유용상, 정태섭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게 된 배경에 대해 구하갤러리 박현숙 관장은 “두 분은 우리 삶에서 일상적이지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엑스레이와 와인 잔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작품은 보통과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Open Your Eyes’전이 우리에게 익은 재료들을 다르게 만든 두 분의 작품을 보며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정리/임윤식)
*구하갤러리- 강남구 논현동 12번지 만나빌딩 1층(전화 02-3448-5005). 신사역 1번 출구-국민연금회관빌딩 주차장 맞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