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다
김누리 저 | 해냄 | 2020년 03월 06일
이 책을 읽은 독자의 글,
YES24에서 퍼온 글입니다.
왜 우리의 젊은이들은 신흥종교 ‘신천지’로 향했을까?
YES마니아 : 로얄 gyocham | 2020-04-07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12320494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몇 가지 민낯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종교의 모습이다. 특히 ‘신천지’라는 신흥종교는 이번 일로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천지에 젊은 2,30대들이 유독 많다는 점에서 새삼 놀랐다.
요즘 시민, 사회, 노동 운동 단체에는 2,30대 젊은이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40대 중,후반이나 50대 초반이 막내 노릇하는 경우가 많다. 30년 전 막내가 아직도 막내인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신천지에 그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우리 젊은이들을 신천지라는 종교에 몰리게 하였을까
이 책 속에서 그 의문을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정치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장치가 마비된 사회에서 그 많은 사회적 좌절과 절망을 어디에서 출구를 찾을까요? 이런 절망적인 사회에서 번성하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190쪽
우리 정치는 보수-수구의 과두 체제로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야수적 자본주의가 낳는 실업과 불평등 이에 따르는 빈곤과 불안을 방치한 채 기득권자들의 권익만을 보호해 왔다. 그 결과 상당수 젊은이들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까?
그리고 이들이 받은 교육은 산업화시대의 권위주의적 교육체제 속에서 무한 경쟁 교육으로 치달아 차별과 배제를 통한 모멸감, 자괴감, 열등감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내면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은 그들로 하여금 주체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강한 자아가 아닌 권력과 권위에 무기력한 약한 자아를 형성하게 했다.
이 두 가지가 결국은 젊은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신천지의 구원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바탕이 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누리 교수는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강연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책의 내용도 그 강연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체제를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촛불 혁명 등을 통해 세계가 인정하는 정치적 민주주의는 이루었으나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가 되지 않아 국민 개개인에게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차별적 의식에 벗어나지 못한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체제인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 에 나오는 ‘정상성의 병리성’이라는 용어를 인용하여 ‘한국인의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지 못한다. 억압의 문화, 부조리의 상황을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상성의 병리성’이다.’라고 진단한다.(17쪽)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가 집으로 가면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를 부리고, 직장에 가면 부하 직원에 갑질하며, 성의 상품화를 당연히 여기고, 차별적 경제구조에 눈감으며, 자식들에게는 우월한 학벌을 강요하며 주체적 삶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울러 노동자이면서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 또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하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체제는 언제든지 정치적 민주주의마저도 퇴행할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시기의 민주주의 퇴행이 그 증거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이런 허약한 민주주의 체제가 된 원인으로 두 가지를 든다. 전 세계가 영향을 받은 68혁명 운동이 우리나라에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이며, 남북 분단으로 인한 냉전체제의 지속이 또 하나이다.
물론 이 둘은 서로 연결된다. 68혁명의 운동 영향을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남북 간의 적대적 관계를 심화시켜서 필사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68혁명의 핵심적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지만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현실을 변화시켰다. 저자는 68혁명이 변화시킨 독일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68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습니다. 반공 전선의 첨병이던 냉전 국가는 유럽의 평화를 이끄는 탈냉전 국가가 되었고, 경제성장에 치중하던 성장 국가가 사회적 분배를 중시하는 복지국가로 변했으며, 나치의 유산이 썩어가던 ’청산되지 않는 과거‘의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과거청산 국가‘로 바뀐 것입니이다.’ - 79
저자는 독문학자로서 독일 유학시절 독일에서 본 우리 현실을 ‘병든 사회에서 거울보기’라는 용어로 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막상 독일에서 만난 것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건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내가 바라보던 하늘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중략) 우리가 당연시한 많은 것이 여기서는 잘못된 것, 부조리한 것,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많은 것들이, 그러나 우리가 마치 ‘자연의 이치’인 양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었던 것들이, 독일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의 경쟁도, 등수도 없었고, 죽도록 매달리는 대학 입학시험도, 학비도, 서열도 없었습니다. -16쪽
우리 나라의 이러한 현실은 68혁명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분단 냉전체제가 지속되면서 비정상이 일상화 된 것이다.
작년 조국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논란이 한참 일어났다. 학벌이 계급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부모의 스펙’이 자식에게 학벌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현실에서 많은 이들이 분노하기도 하고 개탄하였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조국 사태가 보다 나은 사회로 진전하기 위한 계기가 되었어야 했다.
1969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정부는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만 해도 되는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일하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정의’에 맞지 않다고 하여 독일 대학생 생활비 지원 제도인 ‘바푁’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였다.(대학 등록금은 그전부터 없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회적 정의이다. 조국을 규탄하며 사회적 정의를 외친 많은 이들이 우리 또한 사회적 정의를 위해 독일의 ‘바푁’과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대학 등록금을 없애자고 주장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 책은 우리가 직면한 몇 가지 문제들을 매우 쉽고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그야말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몇 가지를 들어본다.
그 중 하나는 제대로 된 ‘성교육’이 민주주의교육의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성은 윤리와 아무 상관없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성이라는 것은 생명과 관계되고 인권과 관련된 중요하고 예민한 영역이므로, 성과 관련하여 충분한 책임 의식을 갖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을 악마화해서 아이들의 내면에 죄의식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 113
성적본능이라는 내 안에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을 악이라고 공격하면, 인간의 자아는 죄의식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일종의 ‘성 정치학’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이라는 성적, 심리적 문제가 권위주의라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죠. 이를 요약하면 인간의 성을 억압하면 할수록, 그 개인은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116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우리 사회를 건강한 민주사회로 가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문화는 민주사회의 토대임을 알 수 있다.
독일의 68세대와 비교하여 우리 86세대의 한계성을 주장한 부분도 충분한 공감을 준다.
저자는 우리의 86세대는 정치 게임에 능한 반면 사회개혁에는 무능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입니다.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다. 도덕적 하자가 너무나도 분명한 수구 보수 세력하고만 경쟁해 왔기 때문에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105
자기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진영과 싸워본 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내면에 뿌리내린 깊은 도덕적 우월감은 그들을 무능하게 했습니다.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했던 진보 세력과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을 놓고 경쟁했다면 그들도 지금처럼 무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106
결국 독일에 비해 우리 사회는 현저하게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86세대들이 그저 그 반사적 이익만을 누리면서 우리 사회의 이상적 모습을 꿈꾸고 실현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일 통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남북한 통일의 방향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이란 100년 동안 있었던 다양한 사회주의 실험 중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와, 지난 세기의 수많은 자본주의 사례 중에서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합쳐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이 자신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37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인간화할 것인가. 이 두 개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통일 사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 243
70여년의 분단체제 지속과 이를 이용하여 오랜 기간 유지한 권위주의 파시즘 정부의 유산은 불행하게도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남긴 말처럼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일상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여전히 내 안의 파시즘과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