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전 북구의 바다를 누비던 바이킹의 가슴에는 내세의 천국이 살아 있었다. 낮에는 지치도록 칼싸움을 하고, 밤에는 날 새도록 술을 마시는 영생불사의 나날을 그들은 꿈꿨다. 전사(戰士)의 밤을 하얗게 밝히던 백야의 태양은 한여름의 노르웨이를 달뜨게 했다.
잠 못 드는 그들에게 신(神)이 내린 선물이 거대한 협곡 피오르다. 수백만년 전 빙하가 할퀴고 간 골짜기 사이로 바다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가장 길고 깊은 송네 피오르는 길이 204㎞, 깊이 1300m에 달한다. 배를 타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키 큰 폭포수가 우렁차게 인사한다. 송네 피오르가 5악장 교향곡이라면 게이랑에르 피오르는 3악장 소나타다. 악장 사이사이 선율이 넘실대듯 양쪽 계곡 곳곳에서 폭포수가 쏟아진다.
게이랑에르 항구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리면 생수로 유명한 마을 올덴에 닿는다. 지붕 없는 차인 '트롤카'를 타고 사방으로 물보라를 토해내는 다리를 건너면 푸른 꿈을 꾸는 빙하가 길게 몸을 누이고 있다. 해발 2000m까지 뻗어 있는 빙하 아래로 에메랄드빛 강물이 잔잔하다. 빙하가 푸른 것은 얼음이 파란색보다 빨간색이나 노란색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고, 강물이 에메랄드빛인 것은 빙하의 퇴적물 때문이라는 '과학적' 설명이다.
▲ 푸른 브릭스달 빙하 아래로 에메랄드빛 강이 흐른다.
▲ 노르웨이에서 가장 예쁜 마을 올레순. 원형 보존을 위해 외관 변형을 법으로 금지 했다.
▲ 오슬로 인근 보트박물관 천장에 매달린 대구들. 예나 지금이나 대구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연어가 많이 잡히는 인근 마을 라르달은 걸어서 20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다. 현지 가이드는 "물이 하도 깨끗해서 물 반 연어 반이다. 17㎏ 이하 연어는 아예 잡지도 않는다"고 큰소리를 쳤다. 북구에서도 구석에 있는 라르달의 200년 된 호텔은 한국인·중국인·일본인들로 북적였다. 한국어 안내책자도 따로 비치돼 있다.
현재 노르웨이 남성 평균 신장은 180㎝ 정도. 수백년 전 해적질에 나섰던 바이킹도 키가 크고 건장했을까. 사실 그들의 평균 신장은 160㎝도 안 됐다고 한다. 수도 오슬로의 바이킹박물관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바이킹의 침대와 썰매를 볼 수 있다.
붉은 하늘 너머에서 당장이라도 고함 소리가 들릴 듯한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그림 '절규'는 오슬로 시내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다. 미술관에 따로 마련된 뭉크의 방에서는 키스·절규·마돈나 등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림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곳의 절규(1893)가 뭉크가 그린 여러 절규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린 것이다. 미술관을 나와 자동차로 7분 정도 동북쪽으로 가면 뭉크미술관이 나온다. 여기 있는 '절규'는 1910년에 그렸다. 두 '절규' 원화를 비교해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노르웨이 여행만의 선물이다. 뭉크미술관은 사진기를 들고 입장할 수 있다. 많은 관광객이 '절규' 앞에서 한껏 절규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국경? 난 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생각한다고 들었다." 차원이 다른 탐험 정신이 느껴지는 이 말은 1947년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101일 만에 페루에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제도를 건넜던 탐험가 토르 헤위에르달(1914~2002)의 일성(一聲)이다. 그가 탔던 배를 오슬로 인근 콘티키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덥수룩한 수염에 반바지만 입고 수백톤씩 닥치던 파도와 싸우던 그는 남극에 최초로 도달한 로알 아문센(1872~1928), 스키를 타고 그린란드를 건넌 프리드초프 난센(1861~1930)에게 노르웨이의 끓는 피를 물려받았다.
▲ 노르웨이 숲에 살았다는 요정 트롤 인형.
▲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베르겐의 나무집 '브뤼겐'. 14~16세기 독일 상인들이 살던 곳으로, 베르겐이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인근 보트박물관 천장에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보배처럼 떠받들던 것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노르웨이 특산물인 대구다. 소중한 식량이자 수입원이었던 대구를 향한 그들의 심정은 한 줄로 벽에 적혀 있다. "대구(大口·cod)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1970년대 북해 석유 발견으로 세계 2위 부국이 되기 전, 척박한 삶을 헤쳐나가던 노르웨이인의 생(生)에 대한 경외가 절절하다.
오슬로에서 비행기로 50분을 날아가면 송송 구름 아래로 엽서에서나 보던 풍경이 펼쳐진다. 노르웨이인들끼리도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는 올레순이다. 바다에 엎드린 섬 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들이 한눈에 다정도 하다. 반듯한 네모창을 달고, 창가에는 약속이나 한 듯 작은 화분을 꺼내놓은 그림 같은 집에는 일상의 비루함이 탈색돼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한 '대출 인생'을 67세나 돼서야 벗어 던지게 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올레순에서는 아무 곳이나 카메라를 대고 찍으면 작품이다. 이렇게 예쁜 마을은 알고 보면 잿더미에서 탄생했다. 1904년 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15시간 만에 목조 건물 1000개 중 850개가 전소됐다. 하룻밤 새 노숙자 1만명이 생겼다. 통곡이 넘쳐나는 마을로 유럽 각국의 성원이 답지하고 건축 유학생 수십명이 귀국해, 3년 만에 지금의 그림 도시가 솟아났다. 지방 정부에서는 이후 건물 외관을 주인 마음대로 변형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못박았다고 한다.
살인적이라고 악명 높은 노르웨이의 물가 체험은 담대한 관광객에게 권한다. 가이드는 "오이 한개에 5000원, 파마 한 번에 50만원"이라고 겁을 줬다. 혹시나 해서 수퍼마켓에 들어가 보니 0.7L 생수는 5800원부터 시작하고, 500mL 콜라는 6500원 가격표를 여봐란 듯이 달고 있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은 마음을 알 수 없는 연인처럼 수시로 날씨가 바뀐다. 흐렸다가 곧 개고 바로 다시 비가 뿌린다. 굳이 우산을 펴기가 머쓱하다. 도심 한가운데 어시장의 빨간 천막 아래에서는 좌판에 놓인 신선한 해산물이 눈짓한다. 1907년 장례식 당시 베르겐 인구 7만명 중 4만명이 몰려나올 정도로 사랑받았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트롤하우겐' 자택은 100년 전 내부 장식 그대로 주인의 자취가 아련하다.
여행정보_아직까지 노르웨이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핀에어(Finnair)를 타면 헬싱키까지 9시간, 헬싱키에서 오슬로까지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유럽연합(EU)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는다. 현지 화폐는 크로네. 1크로네는 210원쯤. 오슬로에서는 35개 박물관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오슬로 패스가 가장 싸고 편하다. 24시간(약 4만4000원), 48시간, 72시간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