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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극권을 알기 전까지 다양한 수련과 무술을 접해보았다. 이들의 진의를 깨친 것은 없으나,
태극권을 만나고는 그 매력에 반하여 그 뒤로는 오직 이 길이다. 주변 사람들이 태극권이 뭐냐고 물을 때마다
너무 할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늘 말문이 막혔다. 이에 바다의 물맛을 컵에라도 담아보고자, 건신과정의 출범을
기하여 단견이나마 정리해 본다.
태극권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데 있다. 건강을 원하는 사람은 건강을,
아름다움을 원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취미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은 기예를, 무술 수행자는 무술을,
기수련을 추구하는 사람은 강력한 내기를, 깨달음을 희구하는 수행자는 명상의 방편을 태극권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 대부분의 운동이나 요법, 수련, 취미들은 많은 경우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얻음 가운데 한 개, 많으면
두어 개를 충족시키는 데 그친다. 건강을 위해 조깅을 하는 사람은 평생 그냥 뛸 뿐이며, 무술에 인생의
승부를 건 사람은 무술만을 이룩하고 (그 와중에 신체를 망가뜨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신적 상승을
추구하는 사람의 몸은 여기저기 통증으로 가득한 경우도 있다.
2.
태극권은 기를 소모하기보다는 축적하고, 약이나 단기적 요법에 의존하기보다 체질과 신체의 구성을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변화시킨다. 일반적 운동도 기혈을 원활히 하여 건강에 유익함은 틀림없으나,
지나칠 경우 활성산소가 생성되어 세포를 해치는 위험이 있고, 근력에 의존할수록 나이가 들면 즐기기
힘들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기를 기른다'는 사람들 중에는 특정한 호흡법이나 명상법에만 몰두하지만 그 육체는 한심할 정도로
허약한 경우가 있는데, 태극권은 기를 기르는 동시에 신체를 강건히 한다. 태극권을 연습하면 특히 하체가
매우 견실해지는데, 보통 웨이트로 근육을 키워 얻는 힘과는 질적으로 다른 힘이 생기게 된다(신체를
지표면에 안정적으로 달라붙게 만드는 류의 힘이다). 바르게 수련하면 다리에 힘이 넘쳐나는 상태가 되는데
거기서 무한한 체력이 샘솟는다.
태극권은 의학에서 치료목적으로 추구하는 허리의 상태를 저절로 만들어준다. 엉덩이를 안으로 넣고
허리를 펴줌으로써 척추의 만곡을 직선으로 만드는데, 뻣뻣하게 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하로 팽창되는
듯한 상태가 된다. 디스크가 허리의 압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임을 생각하면,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척추를 펴주는 길을 택한 태극권의 선택은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신기한 사실은 척추를 펴는 것이
건강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태극권의 무술적 목적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는 점이다)
3.
요가 붐이 일면서 유연성이 건강의 모든 것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를 보았다. (요가를 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님) 얼마나 더 잘 비틀고, 더 잘 찢느냐에 따라 수련의 고하를 평가할 수는 없다. 또 그것이 요가
의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유연성은 단순히 관절의 가동범위만으로 국한할 개념이 아니며, 관절이 얼마나
부드럽게 작동하는가, 근육이 얼마나 부드럽고 탄력있게 움직여주는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관절의
가동범위는 넓더라도 실제 그 관절을 '사용할 때' 뻣뻣하게 굳는다면 그건 유연성이 아니다.
근육과 인대가 충분히 늘어나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때' 탄성을 잃으면 역시 유연성이 아니다.
물론 현대인들은 평소 신체운동을 너무도 등한시하여 근육과 관절을 펴주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유연성만을 추구하면 신체의 '강화' 측면은 소홀히 할 수 있다. 태극권이 추구하는 유연성을 얻게 되면
신체는 전혀 다른 운동방식을 취하게 된다. 관절은 부드럽게 가동하고 근육은 나긋나긋하게 굴신한다.
유연성은 태극권으로 생성된 힘과 결부되어 신체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효율을 발휘한다.
동작이 기민하고 원활해지고 신체의 전부가 통합적으로 움직인다. 의식의 동작 장악력이 높아져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도 오히려 태연하게 반응한다.
4.
현대인에게는 '미용'도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다. 미용은 단지 여성만의 취향이 아니며, 웨이트로 보기 좋은
근육을 만들려는 남자도 넓은 의미의 미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태극권은 어떤 미용을 달성하는가?
태극권은 내장의 활동을 원활히 하고, 피를 맑게 해주며, 피부를 깨끗하게 해주고, 변비나 소화불량을
제거하며, 입냄새와 신체악취를 없애준다. 태극권은 동양 의학의 원리를 무술 동작 속에 구현하여
정체된 경락을 소통시키며, 내장의 불균형을 회복시킨다. 체질을 강화시키며, 질병을 예방한다.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심장 혈관 등 순환기 계통을 강화시켜 혈압을 정상화시키고, 수족이 따뜻해지며,
피부가 고와진다. 호흡기 계통을 강화시켜 전신의 산소 대사율을 높여 집중력을 높이고 머리가 맑아지게 한다.
간담 계통을 강화시켜 소화 해독 작용을 높이고 지구력을 향상시킨다. 신장 및 방광 경락 계통을 강화시켜
정력이 좋아지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소화 흡수 및 배설 작용을 조절하여 비만과 저체중을 개선시키고,
신체의 내적 균형을 이루게 한다. 대뇌 피층 및 중추 신경 계통을 강화시켜 집중력을 높이고 정서를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근육과 뼈대를 강화시켜 체력이 향상되며 견비통과 요통 및 골다공증 등에
유익하다. 심신을 조화시키며 원기를 왕성하게 한다. 신체의 자연치유력과 원기를 왕성하게 만들고,
정화와 교정효과가 있다.
살과의 전쟁이 선포된 시대에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여성이 없을 정도인데, 다이어트는 자칫 불균형된
식사와 무리한 방법론으로 몸을 해치기 쉽다. 태극권의 하체 움직임을 익혀보면, 이것을 제대로 수련할 경우
다리와 허리 군살이 쭉쭉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음을 알 것이다.
태극권은 골격의 이상을 바로잡음으로써 가장 보기 좋은 (또한 건강에 좋은) 형태를 만들어준다. 척추가
반듯하게 펴지므로 오리 궁둥이와 볼록한 배가 들어가며, 고개를 세움으로써 턱이 앞으로 빠진 '무기력형'과
턱을 너무 당긴 '경직형'을 고쳐준다. 이른바 무기력형-고개가 숙고 턱이 앞으로 쳐진 사람들이-이
매우 많이 눈에 띠는데, 이들은 거의 반드시 등이 낙타처럼 튀어나오고 어깨가 안으로 움츠려 든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나쁜 자세야말로 미용의 가장 큰 적인 동시에 대외적 인상을 나쁘게 심어주므로 운명의 적
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지고의 아름다움은 '건강'이라고 본다. 태극권을 수련한다고 해서 성형수술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올 수는 없다.
하지만 건강을 얻게 된다면, 사회적으로 조작된 미의 기준에 내가 얼마나 부합하느냐와는 별개로
내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을 되찾고 가꾸어나갈 수 있다.
5.
운동을 선택함에는 몇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좌우의 균형이 적절한가. 둘째,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가. 셋째, 세월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새롭게 발전하는가.
좌우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나 이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을 통해 오른쪽만 더욱 발달하게 되면
신체는 계속 균형을 잃는다. 한쪽 방향 움직임만 반복하는 것은 신체의 편향성을 습관화하며 이는 고장이나
질병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태극권은 좌우 균형이 완벽하다. 실전적 이유에서 공격 동작들은 오른쪽에
치중하는 경향은 있으나 이때에도 반드시 왼쪽의 힘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예컨대, '엄수굉권'에서
오른 주먹이 나갈 때 왼 팔꿈치가 반대방향으로 작용함). 또한 우측 동작도 별도로 왼쪽을 연습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덧붙여, 태극권은 좌우 외에도 상하, 내외, 경중, 허실, 심신의 균형도
이루고 있다)
나이의 문제도 중요하다. 젊었을 때는 근력이 강하고 상해에 대한 회복력도 빠르기 때문에 격렬한 운동을
좋아할 수 있으나, 늙으면 아예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 경지가 원숙해지며, 꾸준한 발전이
있으며, 뭔가 끝없이 개척되는 새로운 맛을 주는 그런 기예를 택하는 것이 좋다. 서예나 바둑도 심오한
경지가 끝없이 새로 열리기 때문에 무수한 애호자를 갖게 된 것이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몸은 늙고 사회에서는 소외되어 가는데, 즐길 수 있는 기예라도 하나 없으면
더없이 서글프다. 그런 기예는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갈고 닦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노후에 대한 가장 현명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6.
태극권은 그 본질은 무술이다. 무술로서 만들어졌고 무술로서 발전하였는데 알고 보니 다른 효과가
탁월하여 여러 분야로 응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효과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고
궁극적으로 통합되어 태극권의 완성이라는 단일한 목표에 도움을 준다.
혹자는 태극권이 느린 것을 보고 어떻게 무술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느림'과 '빠름'의 이분법이
무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적정한 속도'만이 가장 유용하다. 가장 적정한 속도는 무엇인가?
상대방 움직임에 대하여 순조로운 것이다. 또 혹자는 태극권이 부드러운 것을 보고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강함을 더 큰 강함으로 이기는 것은 어느 운동이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법을 가르친다면 비로소 고급무예라 할 수 있다.
태극권은 선천적인 힘에 의존하지 않고 수련을 통하여 새로 형성되는 힘을 사용한다. 동작과 실전의 원리가
일반적 스포츠 또는 선천적 근력을 사용하는 무술과 전혀 다르다. 태극권이 해결하고자 한 화두는
"어떻게 하면 더 적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가?" "어떻게 하면 나이가 들어도 쇠퇴하지 않는 힘을 보유하는가?"
등과 같은, 일반상식에 역행하는 질문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더 강해지는가?"를 묻지만,
태극권은 그 대신 "어떻게 더 약해지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극한적 부드러움
이라면 내부적으로는 후천적 진강(극도의 강함)의 힘이 형성된다.
태극권의 느림은 빠름에 의해 보완되고, 부드러움은 내적 강함으로 뒷받침된다. 느림과 부드러움만
존재하면 그것은 이미 효용이 사라진 동작이다. 느림과 부드러움을 선택하는 것은 수련의 방편일 뿐이며,
빠르고자 하면 질풍 같은 권과 각이 쏘아져 나가고, 강하고자 하면 태산보다 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누를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자면, 태극권이 느리고 부드럽다 하여 노인들에게나 적합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큰 오산이다. 태극권은 유산소운동이고 운동강도의 조절이 자유롭기 때문에 노인이 산책하듯 편하게
즐길 수 있지만, 만일 강도를 끌어올리면 20대의 팔팔한 젊은이가 10분도 안 지나서 온몸이 후들후들 떨릴 만큼 할 수도 있다.
7.
수련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초능력, 특이기공 또는 기수련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허황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황당한 목표와 욕망을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교주에
대한 종교적 맹신, 전통에 대한 국수주의적 자부심, 터무니없는 이론체계로써 혹세무민하는 등으로 인하여
자신의 심신을 망치고 타인을 잘못된 길로 이끌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기를 수련한다고 하지만
허상을 추구하고 있으며, 견성(見性)을 희구한다고 하지만 욕망을 충족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태극권 외에도 훌륭한 수련방법이 대단히 많으며 바른 길로 가면 얼마든지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길을 눈앞에 두고서 자꾸 곁길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함이며,
있지도 않은 길을 상상으로 만들어 내어 자기만족을 얻음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특히 정신적 영역의 수련을
추구하는 사람들일수록 수련에 많은 위험(魔)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을 정좌하였지만 그 많은 시간을
잡념으로 허송하고 신체는 더없이 허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태극권은 명상적 몰입상태가 만들어지지 않을 수 없게끔 짜여져 있고, 이른바 축기와 운기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만들고자 하지 않으나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을 추구한다. 기는 저절로 쌓이고, 신체는 더없이
강해지며, 정신은 한없이 맑아진다.
8.
요즘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하며,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일정한
정신적ㆍ정서적 불만과 불안정을 안고 있다. 스트레스와 콤플렉스와 불안정성도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
본질적으로 허구이지만 집착할수록 스스로 발전하며 점점 더 하나의 '실체'가 되어버린다.
결국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믿고, 스스로 불길을 일으키면서 불타들어가는 고통을 호소한다.
허상이 완전한 실상이 되는 것을 일컬어 드디어 '미쳤다'고 한다.
심원의마(心猿意魔)라 하여, 마음은 원숭이처럼 변덕스럽고, 뜻은 걷잡을 수 없이 달린다고 하였다.
마음이란 것이 원래 기쁘기도 슬프기도 우울하기도 가볍기도 한 것이 자연스러운 작용이지만, 그것은
원숭이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다니는 것처럼 허무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이라는 기분이 들다가도
가지를 하나 옮기면 희망이 솟아나지 않던가. 곰곰이 돌아보면, 평생을 살아오며 마음이 고요하고 정신은 차분하여
'내면을 비추어보는 상태'를 몇 시간이나 유지해보았을까?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켜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만들어야 내적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원숭이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 즉 심원의마를 잠재우고 잡념에 놀아나지 않는
평정심을 획득하는 것이 태극권의 역할이자 또 하나의 목표이다. 설쳐대던 마음은 비로소 침착함을 되찾고,
분주하던 정신은 비로소 자신을 비추어 본다. 수련이 깊으면 소위 말하는 심신합일의 삼매경과 '깨달음'도
얻을 것이나 그것이 너무 머나먼 얘기라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은 초보자라도 쉽게 얻을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 첫째 관문은 '직시'라고 본다. 스스로의 마음작용을 관찰하고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모습까지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스스로
번뇌에 빠졌으나 빠진 줄도 모르고, 마음이 장난쳐서 만들어낸 허구적 관념과 감정들을 실체로 믿으면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마음의 작용과 관련하여 하나 더 덧붙이면, 마음이란 원래 육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마음도 편하다. 마음공부'만' 하는 것은 하나의 날개로 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다. 태극권은
신체를 강건하게 단련시키고 풍부한 내기와 정력을 바탕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심지를 굳게 만든다.
9.
태극권의 '느림'은 놀라운 현상을 수반한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의식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정신없이' 하는 것이 가능하나,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정신을 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느린 동작에 의식이 일치되는 것에서 태극권의 정신수양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몰입상태는
참선이나 명상, 위빠사나 등에서 추구하는 의식상태와 동일하므로, 태극권의 별명이 '동선'(動禪)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태극권을 통해서도 여러 정신수양에서 말하는 '입정'(일종의 몰아적 평화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태극권 수련이 깊을수록 마음은 맑아지고 정신은 밝아진다. 종국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도 태극권
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며 오히려 매우 효율적인 방편이라고 본다. 태극권은 몰입과 집중을 '자동적으로',
즉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비극은 이토록 효율적인 방편을 만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태극권적 몰입이 가져다 주는
고요를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 정신과 뜻은 소란하고 항시 시끄럽게 떠들고 있어서, 천방지축 바깥세상에서
뛰어다니던 정신을 붙잡아 내부로 향하게 하면 도저히 그 고요함을 감당하지 못한다. 금방 줄을 끊고 또
야생으로 치달아야만 편해지는 원숭이와 같아서, 평생토록 이 잡념에서 저 잡념으로, 이 번뇌에서 저 번뇌로
옮겨 다니다가 죽는다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
10.
태극권을 최대한 집약적이고 온전하게 설명하고자 하였으나, 나의 수련이 부족하여 그 일각도 드러내지 못한 것 같다.
사부님의 가르침은 또한 바다처럼 넓고 깊으니, 내 수준에서 쓰는 글은 개울물과 같아 바다로 흘러들면
다행이다. 나는 원래 근기도 하찮고 재능도 보잘것없다. 앞서 말한 유형-정좌하여 수련하고자 하나 평생을
잡념에만 허비했을 인간-이 바로 나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다. 비로소 태극권을 만나 아주 작지만 하나 둘
성취와 변화를 얻기 시작하니 그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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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권 서울지역 천진수련회 건신과정 3기 공개설명회 자료(2005.3.27)
태극권 천진수련회 박재홍 총교련
첫댓글 글이 좋은것 같아 퍼 갑니다.
겸손하신 말씀이시네요
충분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