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이원록 (李源祿), 후일 이활(李活)로 改名
중국에서 순국 후 火葬되어 본국으로 운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
1960년대에 고향 안동으로 移葬(이장)됨.
任(님)은 1904년 안동에서 출생하여 1944.1월 40세의 젊은 나이로 북경 일본 영사관 감옥(헌병대)에서 순국하신 民族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셨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
청포도,
광야(曠野) 등의 시를 발표하셨고,
또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을 위해서 일본으로 중국으로 다니셨고,
그러다가 체포되어 받은 囚人 번호 264번이 대표적인 이름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이름
李陸史 (이육사)
아직도 우리나라는 未完의 장으로 남겨진 두 가지 사실을 학생들에게 어정쩡하게 가르치고 있다.
첫 번째가
한국사의 始初와 고대사 영역에 대한 남북한이 통일된 史觀을 가지지 못한 점이 그렇고,
(남한 내에서도 소위 강단 史學과 在野 사학 , 일부 종교계의 신앙적인 관점에서의 역사 주장 등이 맞물려 갈등을 빚고 있다)
두 번째가
한국 문화계의( 문학 음악 미술 등) 禁書로서의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월북 ,북한출신 작가 및 사상적으로 좌익적인 인사들의 작품을 무시하거나 언급을 안 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시대적인 격변의 순간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발생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만 할 수도 없고, 또 이 문제는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매듭이 지워져야 할 親日 反逆者의 처리문제와 맛 물려, 현재까지는 뚜렷한 해결책도 없음이 사실이다.
물론 전임 盧 정권 때 시작한 반역자 및 친일 부역자의 人名사전 작성하는 것조차도 ,
본인 또는 後孫들의 조직적인 반대 와 진보니 보수 또는 左派 右派의 이분법적 논리에 떠밀려 본질은 사라지고 주제가 바뀐 체 해결이 어려운 점이 현실이다.
陸史 선생과 함께한 이상화, 윤동주, 신석초, 이병각 같은 民族詩人 또는 문인들이 있는가 하면,
최남선, 이광수, 김활란, 유진오,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채만식, 박종화, 김동인 등 소위 皇國史觀과 징용, 정신대를 찬양하는 친일문학 활동을 한, 그 면면은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또 한국을 대표하는 文人들의 대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사실 문학을 하는 나약한 文人들에게 鬪士的인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잣대라는 생각도 들고, 또 많은 분들의 경우에도 强壓(강압)에 의한 불가피한 사정도 많았으리라 믿어지고 후일에 반성과 자책의 시간을 보낸 분들도 있다.
그러나 차별은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 중 名作이라 생각하였든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
김소운의 목근통신(木槿通信)
조지훈의 승무(僧舞) 가 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후략 ~)
<육사 기념관에서 본 앞 들>
목근통신이란 수필을 쓴 작가 金素雲씨도 학창 시절에 친일문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고는 실망도 하였지만, 이 분은 일본에 남아 한국문학을 소개한 커다란 공로도 있다.
결론으로 나는 이 문제로 작가들이나 작품을 매도하기 보다는, 문학적 관점과 수준에서 교과서나 학교에서 평등하게 다루어지더라도 , 친일 문학을 하였다는 사실 자체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제 우리 사회도 성숙된 의식과 열린사회의 대처 능력으로 월북 또는 북한작가들의 문학 작품도 禁書에서 해제하여 한국문학이란 큰 틀에 넣고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정도는 흡수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이버나 언론에서 每事를 좌우익의 이데오르기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회의 미숙한 세태를 보면, 아직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에 실망감도 찾아 든다
고향집 가까이에 있고, 또 학창 시절에 육사 선생의 장조카 분이신 故 이 동영 선생님에게 국어를 배우는 기회도 있어서 더욱 선생과 인연이 느껴지고 그분의 강렬한 민족정신과 文學 世界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영원히 사는 길이란 힘든 인생 여정의 결과이다.
( 친일문학인 이 외에도 더 있다) 2009/10/15
인간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들을 판단 하는 데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어떤 스님의 글에서>
첫댓글 민족시인과 친일시인의 구분은 명확해야 하며 얄팍한 재주로 올린 친일시인들의 잔재주를 높이 평가해서는 안되며 알리지 말고 보지도 말고 후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해야 합니다. 애국시인들의 글도 얼마든지 더 좋은 글이 있음을 명심합시다. 더 이상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맙시다.
애국지사의 문학상 널리 알리고 친일작가들의 작품 홍보 근절함이 마땅합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의 나의소원中-
기해년 새해를 맞이하여 송암사상선양회 회원 여러분의 건승과 가정과 직장에 행운 깃드시길 기원드리면서 본회의 창립목적인 친일잔재의 청산을 위해 올 한해도 노력하여 친일 근절에 앞장설 것임을 다짐하는 바입니다.